지난 6월19일. 서울 장안동에 있는 한 용역회사(인재파견업)의 노조위원장인 K씨는 때이른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자보호원 YMCA 통상산업부 등에 열심히 다이얼을 돌렸다. 「도대체 피라미드판매가 뭐길래」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다단계판매인지 피라미드판매인지 모르는 K씨가 이런 의문을 갖게된 것은 조합원들이 판매원을 한다고 하나 둘씩 퇴직하면서부터.『한달전 한 친구로부터 FTC(미국 국제전화카드판매업자)가 파는전화카드 판매사업을 해 목돈을 벌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그냥 잊고 지냈는데 최근들어 조합원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찾아 직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뭔가 조직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그러나 그의 이날 노력은 그다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누구나알 수 있는 「피라미드판매는 무엇인가」라는 법적인 설명외에 그가 알고 싶어했던 「어떻게 하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피해를당했을 때는 어떻게 보상받느냐」는 것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얻지못했다. 피라미드판매의 실상은 이런 것이어서 가봐야 손해만 본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 조합원에게 전달하려던 그는 답답하기만 했다고 털어놓는다. K씨의 이같은 답답함은 아직 구체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7월부터 다단계판매가 법적으로 인정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피라미드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피해는 경제적 손실외에 폭력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지난 1월10일 서울 은평경찰서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합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된 정모씨(24)가 대표적인 예다. 정씨는 대학후배인 권모양(23·D대 4학년)에게 일본계 회사인 히타치에 취직시켜주겠다고 속인 뒤 자석요 판매회사인 B사(서울 양재동 소재)로 데려가 교육을 시키던 중 권씨가 그만두려 하자 회사 교양숙소(성남시 소재)로 끌고가 84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다.지난해 10월 남자친구 권유로 서울 신사동에 있는 모판매업체에 들어갔던 유모양(22·K대 2년)은 한달만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대인기피증에시달리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유씨는 1주일만에 그만두겠다며 가입비 3백만원을 돌려달라고 하자 회사가 이를 거부하고남자친구마저 외면해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전도 요란·불나비처럼 빠져들기도지난 4월 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씨(24·H대2년)는 고등학교 친구인 오모씨로부터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닷새 동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함께 하자」는 제의였다. 김씨는 번역사무실이 있다는 서울 포이동에 있는P빌딩에 들러서야 비로소 피라미드판매회사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오씨는 「친구 부탁인데 닷새도 못있느냐」며 사실상 감금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간신히 도망쳤다는게 김씨의 설명이다.구모씨(24·S대 3년휴학)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참여해 폭력행위 등의 피해는 없었으나 경제적 손실을 입은 사례다. 그는 지난3월 물품 구입비로 3백만원을 내고 피라미드판매회사에 들어갔다.회사는 구씨의 능력을 높이 사 이사로 키워주겠다며 회사가 관리하던 하부조직의 몫까지 구씨의 실적으로 만들어 줬다. 이게 아닌데하며 회의를 느끼고 3개월 뒤 그만뒀을 때 구씨는 물품구입비를 포함해 5백만원의 손해를 입고 있었다. 하부조직 관리비가 수입을 넘어서 버린 것이다.피라미드판매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MLM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조직원들의 지속적인 확대다. 끊임없는 자기번식을 해야만 늦게 들어온 조직원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러나이같은 조건은 충족되기가 불가능하다. 어느정도까지는 확대될 수있어도 인구구성상 추가 확대는 어렵기 마련이다. 또 피해사실이점차 알려지면서 성장속도도 둔화되게 되면 부작용들이 한꺼번에드러나게 된다. 피라미드판매회사들이 초기엔 벌떼처럼 성장했다가1∼2년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이렇게 피해를 입을게 뻔한데도 소비자들이 「불나비」처럼 뛰어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마디로 일확천금으로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꿈과 이들 회사의 현란한 선전의 합작품이라고 할수 있다.이는 위의 피해사례들이 대부분 휴학생이거나 복학준비생 및 실업자나 불완전 취업자들이라는 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의 답답한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단시간」안에 「목돈」을 거머쥘수 있다는 「미끼」를 물기 쉽기 때문이다. 피라미드판매회사가 판매원들을 교육시킬 때 「욕심이 많고 진취적인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인간사냥의 제1원칙」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선전도 요란하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도 세미나에서 사람들의 화려한 성공담을 들으면 대개가 흔들린다. 『세미나나 사업설명회가종교단체의 부흥회와 비슷하다. 냉철한 이성보다 군중심리의 열기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기 쉽다』(소보원 C부장)는 지적이다.이 세상에는 「공짜점심」은 없다. 무엇이든 대가가 필수적이다.『희망과 꿈만 있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없다. 일단 시작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할 뿐 실례를 들어보라고 하면 아무런 설명도하지 못한다』(S기업 노조위원장). 피라미드판매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는 것만이 피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