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자본금 5천만원으로 법인 등록, 창립 3개월만인 그 해 9월 국내 최초로 국제·시외 전화 품질 측정기 LQMS 개발, 동년 11월 전화선을 이용해 데이터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VDM 국내최초 개발, 94년 7월 국내 최초 28.8K bps(v.34) 고속 모뎀 개발,동년 10월 768K bps 초고속 모뎀 국내 최초 개발, 동년 동월 국내최초로 단말전화선에 2명 또는 4명의 가입자를 동시 수용할 수 있는 PAIR GAIN 개발, 95년 7월 28.8K bps 다이얼 백업 모뎀 국내 최초 개발, 96년 6월 역시 국내 최초로 10M(메가) bps 케이블 모뎀개발, 동년 동월 33.6K bps 초고속 모뎀 첫 개발….지난 6월로 회사 설립 만 3년을 맞는 통신용 하드웨어 제조업체 「C&C 엔지니어링 (대표 김만덕)」의 주요 기술개발 연혁이다. 수백수천명의 연구 인력을 거느린 대기업도 아니고 불과 10여명의 연구원만으로, 그것도 그토록 짧은 기간내에 그처럼 많은 첨단 기술 장비를 개발해 낸 것은 「경이(驚異)」에 가깝다.◆ VDM개발로 ‘채팅시 전화불통’은 옛말될 듯특히 몇가지는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상식을 깬 제품으로서 당장이라도 실용화가 가능하다. 예컨대 VDM은 하나의 전화선으로 PC통신과 전화 통화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통신 채팅시에는 전화가 불통되는」불편은 이제 먼 옛날 얘기로 묻힐 운명에 처했다. 또 현재 케이블 TV선에 이용되는 동축 케이블로는 쌍방향 통신을 할 수 없는 것(TV가 일방적 통신이듯이)처럼 생각하기 쉬우나실제는 PC통신회사와 일반 유저(user)간에 동축 케이블이 설치되고케이블 모뎀을 PC에 연결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10M bps 속도의 초고속통신 세계가 펼쳐진다. C&C가 개발한 「국내 최초」들은 개인 기업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할 대목은 C&C가 내놓은 제품 분야가 바로 통신 하드웨어라는 점이다. 잘알려져 있다시피 통신 장비는 국내외 기술 수준의 격차가 가장 큰분야다. 기술발전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가 전문화되어 있어 한 번뒤지면 좀체 따라잡기가 힘들다. 게다가 복잡하고 광범하며 어려워서 지원 인력도 적고 따라서 축적된 전문인력이 매우 적은 대표적인 산업이기도 하다.얼마 전에 있었던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시 한국 굴지의 기업들이모두 한 다리씩 걸치고자 했지만 대부분이 서비스업이고 제조업은일부 업체에 불과했다. 결국 통신장비나 부품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신장비 제조에 특화하고 있는 C&C는 수입대체 기업으로서의 역할을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기술 개발 이력에 걸맞게 매출규모의 성장세도 화려하다. 94년 9억7천만원, 95년 22억5천만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1백2억5천만원을예상하고 있다. 내년은 2백2억원이 목표며 98년은 3백30억원, 99년은 4백60억원이다. 그나마 이 수치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는게 김사장의 설명이다. 또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무려 17%에이른다.창립 이래 「국내 최초 개발」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김사장의 「한 우물 파기」 이력 외에 별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79년 ROTC로 임관한 김사장은 전공(전자공학)으로인해 통신병과에서 2년간 복무한다. 즉 전화기 무전기 전화선로 등을 다루는 통신장교 출신으로 통신 전문가로서의 잔뼈는 여기서 굵어졌다. 81년 전역한 뒤에는 금성전기에 입사해 통신사업부, 그 중에서도 모뎀 개발팀을 맡아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400bps 모뎀을 개발하는 개가를 올린다. 「국내 최초」시리즈의 시발탄이었던셈이다.87년에는 역시 통신장비 제조 회사인 G사 시스템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92년 뜻한 바 있어 독립했다. 통신 분야에서는 기술집약형 기업구조가 절대 관건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령탑이 기술에 밝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프리랜서 시절에도 그는 수천만원대의 장비 몇가지를 개발, 대기업에 납품했다. 이렇게 해서 자본금이 마련되자 그는 드디어 함께 일하던 동료 5명과함께 C&C 엔지니어링의 간판을 단다.김사장의 전공은 모뎀이다. 모뎀은 음성 등의 아날로그 신호를 전기적인 디지털 신호로 변환(또는 그 반대)시켜주는 장치로 전체 이름은 변조·복조기(Modulator-Demodulator). 일반 전화선이나 동축케이블 광케이블 등 유선은 물론 PCS, TRS, 더 나아가 인공위성 등을 이용한 무선에 이르기까지 통신을 하는데 있어 모뎀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다. 요즘 회자되는 이른바 정보고속도로도 모뎀이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통신 시장이 팽창하면 팽창할수록 모뎀의 수요는 그에 상응해 증가하기 마련이다. 김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TV 정도의 수요가 예상되는데 TV보다는 훨씬 고도의기술을 요구하므로 남보다 앞서가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진다』고봤다는 것이다.◆ 통신시장 팽창할수록 모뎀수요도 증가김사장은 외국 기술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리버스 엔지니어링(완제품을 분해해 기계적 구성요소를 연구하는 방법)을 채택하는 한편단계별 제품 개발 계획을 세웠다. 아이템별 개발 기간은 3∼6개월정도로 비교적 짧았다. 「속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비슷한 기술이적용되는 제품끼리 묶어 계열로 만든 뒤(이른바 기술 나무) 이들을동시에 개발하는 방식(모듈화)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원의 경력이 풍부해 개발용 S/W에 익숙해 있던 것도 기간 단축 및 개발 품목의 다양화에 큰 기여가 됐다.C&C의 향후 중점 사업계획은 모뎀이라든가 PC 오디오 등이 하나로통합되는 추세에 발맞춰 시스템 분야를 강화하는데 모아지고있다.네트워크 설계는 단말기와 달리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으나국내의 기술수준이 크게 못미쳐 외국기업에의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PC나 화상전화 TV 등이 모두 광케이블 모뎀에 연결될 것이므로 이에 소용되는 컨버터 장비를 개발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시장의 규모는 3∼5년내로수조원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C&C는 외국기업으로부터 이 커다란 국내 시장을 지켜야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걸머지고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니 인터뷰 / 김만덕 사장▶ 연구 인력이 의외로 적은듯한 느낌인데요.제품 개발하는데 꼭 많은 인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핵심두뇌는 5명 정도면 충분하고 나머지 인력들이 손발을 어떻게 맞춰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현재 저희는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급이 3명, 5년 이상이 3명입니다. 또 저는 학력을 묻지않습니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고졸자들도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실제 고졸 연구원도 있는데, 능력은 개발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C&C의 기술자립도는 어느정도입니까.설계는 1백% 우리 기술로 합니다. 그러나 모뎀 칩은 아직 기술수준이 못 따라가 수입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중소기업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금 문제가 가장 크겠죠. 특히 고속성장을 할 경우 자금이 더욱 필요해진다고 보면 될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덕산 그룹 부도사태때 그 파문이 덕산과 관련이있던 나우콤에까지 미치면서 5억원가량이 수금되지 않아 어려움을겪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잘 해결됐죠.▶ 사업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조금 일하다보면 싫증을 내는 젊은 사람들이 있는데, 긴 안목을 갖고 단련해야 도사가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 남의 떡을크게 보지말고 자기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할 것을 권고합니다. 저는 직원 채용시 끈질긴 면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곧 정보통신 유망업체로 구성된 협의회가 발족합니다. 이를 통해정부에 건의사항을 제기하는 등 공통의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약력 : 56년 서울생. 연세대 전자과 졸업. 금성전기 주임 연구원.가족 : 부인과 1녀1남 . 취미 : 클래식 기타연주. 최근 읽은책 :없음(신문 볼 시간도 없음). 좌우명 : 최선 다하라. 건강유지비결: 마인드컨트롤. 술 : 애주가. 담배 : 1년전 끊었음. 혈액형 : A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