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에 대한 삽화는 지금까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처럼 빌 게이츠가 어느날 전세계 컴퓨터 모니터 앞에 화사한 모습으로 등장해 『여러분 이제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나왔어요』라고 한마디만 던지면모든 컴퓨터사용자들은 코를 땅에 박고 그에게 복종을 맹세한다.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 8월 윈도95를 내놓았을 때전세계 컴퓨터시장의 모습은 이런 삽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망라한 컴퓨터업계와 대부분의 컴퓨터사용자들에게 빌 게이츠의 말은 곧 교시이자 지침이었다.20세기 후반을 정보통신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그는 이제 겨우 마흔줄에 들어섰을 뿐인데다 그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창립20주년을 겨우 넘긴 신생기업이다. 그러나 이런 짧은역사에도 불구하고 그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살아있는 신화」로 대접하는데 주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유재산 1백50억달러(한화약12조원)로 미국 최고의 갑부로 꼽혀서가 아니다. 짧은 세월에 그가 이뤄낸 일이 신화다.미국의 애플이 최초로 개인용컴퓨터(PC)를 만들어낸지 20년만에 이제 컴퓨터는 우리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었다. 게다가PC는 지난 20년동안 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빌 게이츠를 평가할 때 컴퓨터가 지닌 이런 현실파급력과 막강한 잠재력까지 감안한다면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인물이자 동시에 21세기의 설계자로 지목되어야 한다. 이제 채 3년반밖에 남지 않은 21세기의 징후는 빌 게이츠의 행동 하나하나에서나온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사업가 기질 돋보여 주목그는 컴퓨터 발명자도 아니고 PC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도 아니다.하지만 그는 컴퓨터산업 분야의 황제다. 거기에는 시류를 정확히읽어내는 탁월한 안목과 한번 마음먹은 일이면 며칠밤을 새우면서까지 매달리는 집착력,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까지 인정할 정도의타고난 경영수완 등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빌 게이츠는 최초로 PC에 쓰이는 베이직언어를 개발했으며 이를 기초로 마이크로소프트를 75년에 설립, 컴퓨터운영체제 MS도스와 윈도로 컴퓨터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시장을 평정했다. 도스와 윈도는80년대말부터 산업표준으로 자리잡아 현재 전세계 PC의 90%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다. 설혹 어떤 PC사용자가 빌 게이츠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는 십중팔구 게이츠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며 그에게 상품이용료를 상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컴퓨터를 구동하는 기본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운영체제를 석권한다음 빌 게이츠는 서서히 각종 응용소프트웨어 쪽으로 중심을 이동해왔다. 연간 50억달러선의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중 3분2이상이각종 응용소프트웨어를 판매한데서 생긴 것이다. 여기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온라인사업망 구축과 나아가 전세계를 신경망처럼연결하는 정보고속도로의 장악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는 2001년까지 약90억달러를 투입해 8백40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다. 이런 야심을 세워놓고 빌 게이츠는 세계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무실과 가정의 책상위에 컴퓨터가놓여 있는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걸어다니면서까지 손가락끝으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시대」로 사업모토가 바뀌었다고 역설한다.빌 게이츠는 55년 10월 미국 북서부의 항구도시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똑똑한데다 경쟁심이 강해서 최고가 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시애틀 최고의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에 다닐 때부터 뚜렷이 드러났다. 빌 게이츠는 이때부터 「지능 집중력 집착력 욕망 통찰력 도전정신 경쟁력」 등 사업가적 덕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는게 학교친구들의 평가다.컴퓨터와는 11세 때부터 인연을 맺어 13세때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언어를 익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빌게이츠는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버드법대에 진학, 컴퓨터와는 인연을 멀리하는 듯했다. 그러나 법대진학 이후에도 컴퓨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레이크사이드 2년 선배로 당시 워싱턴주립대학에 다니고 있던 폴 알렌과 밤을 지새며 컴퓨터 연구에 몰두했다. 두 사람이 각자 학교생활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컴퓨터산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것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에실린 특집기사였다. 이 기사는 「미츠」라는 이름의 조그마한 회사에서 만든 값싼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게이츠와 알렌 모두 이 기사를 보고 PC시대가 곧 도래할 것임을 확신했다.두 사람은 알테어 컴퓨터에 사용될 수 있는 효과적 언어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데 착안해 곧 그일에 매달리게 되고 8주만에 베이직언어를 만들어 내 그 일을 해결했다. 자신감을 얻은 두 사람은 뉴멕시코주 알버쿼크를 근거지로 삼아 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출범시키면서 학교를 도중에 뛰쳐나왔다.78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애틀로 이사할 무렵에는 두 사람의 명성이 이미 업계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그들의 잠재력이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한 것은 80년 7월이후부터. 당시 컴퓨터업계의 공룡이었던 IBM이 두 사람에게 새로 개발하는 개인용컴퓨터의운영체제개발을 맡겼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컴퓨터업계에 「PC혁명」을 몰고온 MS도스가 탄생했다. 이후 만6년여 뒤 마이크로소프트는 문자로 작동하는 MS도스 대신 그림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는윈도운영체제를 개발, 컴퓨터시장의 주도권을 완전 장악해 버렸다.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주종관계도 역전됐음은 물론이다. 빌게이츠가 일찍이 예상한대로 「모든 책상위에 컴퓨터」가 놓이고동시에 「모든 컴퓨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가 설치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난공불락의 아성을구축했고,하드웨어 생산업체들 마저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설정한 표준을 따르지 않고서는 살아남지 못했다.빌 게이츠는 남보다 몇년 앞서 미래를 예측하는 본능적 감각과 언제나 1 등을 고수하겠다는 승부근성으로 경쟁관계인 업체들을 무자비하게 공략해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컴퓨터산업에서 2등은 곧 낙오자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윈도 개발로 컴퓨터시장 주도권 완전 장악그러나 빌 게이츠는 자신이 만들어낸 등식에 최근 발목이 잡혀 독주체제를 위협받고 있다. 바로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와 응용소프트웨어의 개발에만 주력하고 있는 동안 스코트 맥닐리의 선마이크로시스템즈가 인터넷 프로그램언어인자바로, 짐 클라크가 이끄는 넷스케이프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항법장치인 넷스케이프네비게이트를 개발해 컴퓨터사용환경을 뿌리째뒤흔들어놓고 있다. 이제 PC는 네트워크환경과 접목되지 않으면 구닥다리로 취급받게되어 있고 이 네트워킹 관련 소프트웨어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선과 넷스케이프의 소프트웨어가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업체인 오라클이 인터넷서버를 이용, 앞으로는 운영체제도 응용소프트웨어도 필요없는 「네트워크컴퓨터(NC)」를 PC와 대체하자며 주창하고 나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킬 태세다.빌 게이츠 자신도 인터넷의 급속확산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위기에빠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격주간 금융전문지 포춘최근호(7월8일자 발간)와의 인터뷰에서 빌 게이츠는 『이제 컴퓨터소프트웨어시장의 주도권은 진공상태에 있다. 이 진공상태를 누가먼저 메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실토했다.컴퓨터황제 빌 게이츠에 대한 삽화는 최근들어 이런식으로 바뀌고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로부터 집채만한 해일이 일고 있는 가운데 빌 게이츠는 그 해일 위에서 카약을 타고 또 다른모험을 전개하고 있는 삽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