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분야에서 멀티미디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주역으로는가산전자의 오봉환(39)사장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산업공학(고려대)을 전공한 그는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장기전략을 담당하고 있었다. 업무관계로 자연스럽게 유망산업을 따져보게 되고 그 역시컴퓨터 분야가 가장 활발하다고 결론을 얻었다. 처음에는 동업으로소프트웨어개발업체를 세웠으나 이내 그만두고 90년 가산전자를 세우게 된다. 컴퓨터에서 영상을 지원하는 비디오카드(MPEG VGA)를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다.『멀티미디어산업은 한국적 경영풍토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미국은 모든 산업이 분야별로 전문화돼 있고 대만도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위주의 구조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한 개 경영단위가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일을 좋아하지요.』오사장은 처음 회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자기브랜드를 강조했다. 당시 선발업체가 몇 개 있었지만 대부분 무너져 버린 것도 브랜드의의미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 고객지원기관의 운영, 지속적인 제품향상, 품질관리체계의유지등 중소기업으로서는 하기 벅찬 부분들이 따라붙게 된다. 그러나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대기업에 납품만 한다면 안정적인물량확보와 함께 이같은 부분들을 적당히 생략할 수 있는 대신 종속적인 관계를 피하기가 어려워진다.기술력에 자신을 갖고 있었던 오사장은 브랜드전략을 구사하면서현금유동성이 풍부한 금융권을 상대로 독자적인 판로개척에 나섰다. 그들은 제품의 질을 우선적으로 따질 뿐 가격문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금융권에서 소리소문으로 제품을 인정받은 다음에는 대기업이 알아서 찾아들었다.『한국의 중소기업들은 구조적으로 대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기업들은 그들 나름대로 안정된 공급을 받기 위해 중소기업이 다른 대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싫어했지요. 그러나 이제 와서는 어떻습니까.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려다보니 부품이 세계수준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대기업의 우산속에서 안주하던 중소기업은 그런 기술을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제와서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배척당하고 있습니다.』오사장은 점차 사업을 정착시키면서도 연구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현재 가산은 순수 연구인력만 60여명으로 전세계적으로 선두그룹에 들어갑니다. 월 6만개 정도의 비디오카드를 공급하고 있는데 2∼3천개를 생산하는 다른 업체들과는 이미 경쟁이 끝난 거지요. 이제 가산의 경쟁자는 세계기업들입니다.』 이 분야에서 선두기업은 싱가포르의 크리에이티브란 회사다. 연간 40억달러의 매출규모로, 국내의 웬만한 그룹사와 맞먹는다. 7천만달러규모의 가산은 아직 세계적 기업과 격차가 있다. 그러나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는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밀고나가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가산이 인정받고 있는 기술력은 오사장 특유의 끈기로 이뤄낸 결과다. 그는 완제품을 만들겠다며 가상현실(VR)제품에 도전하면서 보통 애먹은 게 아니다. 20여개의 소재가 필요한데 국내에는 어느 것하나 믿을 만한 품질의 것이 없었다. 결국 초기에는 대만부품들을들여왔지만 외국에 주문을 하자니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려웠다.오사장은 한편으로 소재업체들을 채찍질해 기술개발을 요구하면서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3D맥스라는 제품을 선보였다.결국 입체화면처리기술에서 가산의 성가가 세계적으로 올라가는 계기가 됐다.『빌 게이츠의 신화는 미국처럼 유기적으로 인프라가 구축된 곳에서 생겨나기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한국시장도 이제는 세계시장과아무런 장벽이 없게 되고 특히 SW분야는 오늘 미국에서 소개되면다음날 한국에서 제품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국내에서일등을 하면 곧 세계시장에서도 일등을 할 수있게 됩니다.』그는 전화번호부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자 ABACUS(주판)란 영문의회사명칭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이같은 상호를 쓰는 회사가 있었고 결국 가산을 쓰게 됐다. 세계시장을 향한 그의 정신이 회사이름에서도 비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