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솔다의 김정한(42)사장도 CD타이틀을 계기로 샐러리맨 탈출에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민은행에 입사, 펀드매니저로 근무했다. 은행과 증권의 겸업은 금융계에서 오랜 연구과제였고 어느날 그는 그 가능성검토과제를 맡았다.이때 읽은 각종 논문이 1백여편. 김사장에게는 사회를 바라보는 큰안목이 생겨나는 계기가 됐다.『유망산업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컴퓨터관련분야라는 해답이 쉽게 얻어지더군요. 그럼 아이템은 뭐가 적당할까를 생각했지요. 외국출장길에 유심히 보니 CD타이틀분야의 수요가 일어날 것같았습니다.』94년 조훈현의 바둑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근 20만원에 판매되고있었다. 바둑대국수는 기껏해야 3∼4편. 김사장은 이것을 CD에 담으면 2백대국을 담으면서 가격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관련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얼마면 살 수 있겠느냐고 시장조사를 했다. 10만원이라면 사겠다는반응이 주류를 이뤘다.그는 2백대국을 담은 조치훈바둑CD를 3만3천원의 가격에 제작했다.교회에서 만난 CD제작회사 사장과 의기가 맞은 것이다. 그러나 첫사업을 벌이는 김사장에게 판매하는 노하우가 있을리 만무했다. 용산을 기웃거렸으나 유통시장은 정비가 되지 않았고 도매상들은 가격을 낮추려고만 했다.김사장은 일단 직접 제품을 들고 언론사를 뛰어다녔다. 이런 제품을 만들었으니 한 번 써보고 좋다고 생각되면 소개해달라고 부탁을하고 다녔다. 제품과 가격이 적당한 만큼 반응은 당연히 좋았다.대부분의 언론사로부터 우수CD타이틀로 인정받았다.『이제 많이 알려졌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거는 소비자들마다언제쯤이면 용산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용산에서 판매되면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아무튼 언론에 소개가 많이 된데다 김사장의 잦은 발걸음으로 용산매장에서도 연락이 오고 납품길이 열렸다. 이때 그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매장마다 가격이 달라 소비자는 한 번 걸음할 것을10여군데를 돌아보게 되고 이같은 가격의 불안정이 CD유통의 최대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한 개 매장에 소화시킬 수 있는 일정량 이상은 공급하지 않는 원칙이었다. 자연히 덤핑으로 다른 업체에 넘어가는 물량을 막게 되고 솔다의 제품은 가격이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얻게 됐다.『처음 시작할 때 전국에 팔려나간 CD롬드라이브가 약 30만대 정도였습니다. 한 개의 CD를 제작해서 5만개 정도만 팔려도 대단한 성공이었지요. 이제는 전국에 보급된 CD드라이브가 1백만대를 넘어섰고 내년말이면 2백만대 정도가 보급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김사장은 CD타이틀시장이 조만간 만개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때까지 바둑 영어교육 성지순례 등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어놓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영세업체들이 망해갈 것인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은 은행출신이란 메리트를 안고있어 자금을 동원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2백여 개발업체가 1년에 한 번씩 헤쳐모여를 하는 것이 업계의 상황이다.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솔로몬과 다윗을 합쳐 솔다(率多)란 이름까지생각해냈을 정도인 김사장은 『도매상들도 가격을 깎으려고만 할게아니라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 했으면』 하는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