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잉 그라운드96년 7월 현재 한국골프의 「티잉그라운드」는 극히 비좁다. 모두가 먼저 티샷하려고 아우성이다. 어느 나라건 골프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대개 「몇명쯤 될 것이다」이다. 한국골프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KGA(대한골프협회)는 한국골프인구를 1백50만명선으로 추정하고 있다.골프장들의 모임인 한국골프장사업협회가 집계한 지난해의 총 골프장 내장객수는 8백24만2천9백27명이다. 이는 프라이비트코스 83개소와 퍼블릭코스 17개소 등 현재 개장중인 1백개 골프장의 내장객통계이다.이같은 내장객수는 한국골프장의 연간 수용능력으로도 볼 수 있다.주말은 물론 평일부킹도 아주 치열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골프장이풀 가동됐다고 보는 것.골프인구를 1백50만명으로 보면 그같은 집계는 골퍼 1명이 1년에5.5번 라운드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1년동안 고작 66일에 한번 골프를 칠 수 있는 꼴. 상황이 그러니까 「부킹 전쟁」이 빚어진다.내장객이 연인원 8백20여만명에 불과한데도 골프인구를 1백50만명으로 잡는 것은 「과도한 추정」일지도 모른다. 골퍼들의 속성으로볼때 필드를 찾는 사람은 매주말 또는 1주일에 몇번도 가는 사람이많기 때문이다.따라서 TV 등에서 흔히 얘기하는 2백만명시대는 「자가 발전」이고실은 1백만명 정도가 타당하다는 분석도 많다.그러나 문제는 통계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폭발적 증가추세」이다. 연습장만 해도 평일 오전에는 여성들로 가득차 있고 퇴근시간쯤이면 평일, 휴일 구분없이 기다렸다가 쳐야한다. 웬만한 직장의 월요일은 「어제 몇개 쳤어」로 시작되고 웬만한 음식점의 중년남자 서너명이 모인 테이블에서는 대개 「골프」가 화제로 등장한다.골프인구는 연간 20% 이상 늘어난다는 게 정설이다. 그같은 급증세는 피부로 느낄 수 있듯 「제어 불능적」이다. 골프를 둘러싼 모든 문제점은 바로 그러한 「넘치는 수요」에 기인한다.◆ 로스트 볼한국골프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왜. 그것은 대통령의 골프관에 따라 모든 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골프에 부정적이면 겉으로나마 「골프」가 위축되고 각종 규제책은 실제로 타이트해진다. YS의 발언록중 최대 해프닝은 골프를 건드린 것이다.「골프금지를 지시한 바 없다」는 해명은 의미가 없다. 공무원세계의 속성상 「난 골프를 안 치겠다」는 발언은 「치지말라」는 얘기와 동일하고 「골프를 압박해도 된다」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속뜻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자」이더라도 골프는 대통령이 주제로삼을 대상이 못 된다는 게 골퍼들의 시각이다.골프채를 가지고 해외여행을 하려면 클럽별로 브랜드와 재질까지신고하고 나가야 한다. 비행기가 몰릴 때는 신고자가 밀려 발을 동동 구르는 여행객 모습도 눈에 띈다. 들어 올 때는 영낙없이 「적색 검사대」로 가리킴을 당한다. 시키는대로 하지만 그 여행객은생각한다. 『내가 무슨 죄인이냐』고.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 꼴이 되고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간부들이골프를 숨기는 모습은 모두 대통령의 골프관에서 비롯된다. 한국의골프는 아직 국제화시대속의 「로스트 볼」이다.◆ 멀리건한국의 제어불능적 골프는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 팀 플레이보다개인전에 우월한 한국인은 혼자 잘 치면 되는 골프에 빠지게끔 돼있다. 거기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골프는 「최후의 스포츠」에서 「최초의 스포츠」로 바뀌었다. 전에는 수영이나 테니스 등을거쳐 나이들어 마지막으로 눈을 돌리는게 골프였으나 지금은 막바로 골프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전에는 「이사장이나 박전무」의 스포츠였으나 이제는 「김과장」도 골프를 치는 것. 이유는 골프의 비즈니스적 성격 때문이다. 거래선의 상대방이 골퍼라면 「골프 얘기」부터 하는게 부드럽고 같이 술마시기는 어려워도 「골프치자」면 쉽게 엮어진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골퍼라면 「같은 값의 선택」은 골프를 아는 직원일 것이고 나이 40넘어 동창회에 나가면 골퍼들끼리만의 조합이 이뤄진다. 기업과 언론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지금은 골프가 주매개체이다.이렇게 해서 골프는 「지금 당장 또는 시급히 해야하는 스포츠」로자리잡고 있다. 골프자체 말고도 골프를 통해 얻어지는 「멀리건적요소」가 골프 폭발의 또 다른 원인이다.◆ OB스코어메이킹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게 OB. 그러면 한국골프의OB적 요소는 무엇인가. OB를 내는 당사자는 골퍼와 골프장 그리고정책부서이다.한국에 야구정책이나 배구정책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골프를 둘러싼 각종 규제는 수십페이지 분량에 이른다.워낙 골치가 아프니 예를 하나만 들자.체육시설의 법률이용에 관한 법률안 시행규칙에 따르면 골프장 캐디숫자를 9홀당 50명으로 제한한다는 조항이 있다.캐디는 골프의 한 구성요소이다. 경기에서는 캐디의 능력이 스코어를 크게 좌우한다. 한 인간의 스포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캐디란 누가 뭐래도 전문적인 건전 직업이다. 그러나 캐디는 육체노동적인 힘든 직업이고 요즘같은 고임금시대에는 날이 갈수록 캐디숫자가 줄어들게 돼 있다.그런데도 그같은 시행규칙을 만든 것은 정책당국이 캐디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려 하기는 커녕 오히려 앞장서서 「사치나 말썽의 존재」로 인식하는 격이다. 캐디수를 제한하는 것은 기업체의「총무부 여직원수를 몇명으로 하시오」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골프에 「자율」은 거의 없다. 그린피는 신고사항이지만 말이 그렇지 실은 시키는대로 해야한다. 올초만 해도 「올렸던」 그린피를다시 내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우르르 그린피를 올리는 골프장도문제지만 그렇다고 다시 내리게 하는 정부도 좋은 모습이 아니다.골프장과 골퍼의 OB는 거의 부킹과 관련이 있다. 부킹확률은 회원수로서 간단히 계산된다. 회원이 일요일마다 부킹하려면 그 골프장의 회원수는 2백명미만이라야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의 골프장들은18홀당 1천~2천명 수준이다. 매주말부킹은 원천적으로 안되게 돼있다. 그러니까 부조리가 싹튼다. 신설골프장들도 회원권을 분양할때는 「부킹 보장」을 외치지만 개장하고 나면 두손 들게 마련이고심지어는 부도까지 낸다.그러니 골퍼와 골프장들은 서로 불신한다. 요 주목 분야인 「골프」에서 불신풍조가 있다는 것은 골퍼와 골프장들이 가장 시급히 척결해야할 부분이다.◆ 스트로크회원권분양은 외견상 김선달식 장사이다. 땅값이나 공사비 등 투자금액은 회원권분양으로 회수할 수 있다. 분양만 잘 되면 골프장 하나를 거저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총 투자비를 회원수로 나누면 분양가격이 나온다. 거기에는 18홀당수십억원에 이르는 세금도 포함된다. 골프장 입장에서는 소수회원의 고액 회원권이 바람직하다. 회원이 적어야 부킹으로 인한 골치를 덜 썩일 수 있고 관리도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회원권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요즘엔 1억이 보통이고 2억이상도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골프장수는 적은데 골프인구는 급증하니누가봐도 회원권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근교의 신설골프장 회원권은 치열한 경쟁이 빚어진다.「비싸니까 잘못됐다」는 비난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상품가격은 시장 원리에 따르는 법이고 「서민들과의 위화감 운운」은 정서적 판단일 뿐이다.결국 대중이 있고 그 대중들이 골프와 접하길 원한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의 제공」이 긴요하다. 수년전 서울시에서는 한강고수부지에 골프연습장을 만들려 한 적이 있다. 타석만 고수부지에만들고 볼은 물위로 치는 방식이기 때문에 면적점유도 얼마 안됐다. 그러나 그 방침은 여론의 등쌀에 밀려 백지화 됐다.1백개의 연습볼을 치려면 최소 1시간은 걸린다. 1백개의 연습볼1상자에 5천원을 받는다면 1시간동안 기막히게 싸고 기막히게 재미있는 「운동」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셈이다. 골프에 대한 문제점은이런 각도에서 풀어야 한다. 일본의 골프인구가 2천만명이라 하더라도 라운드를 하는 것은 1년에 고작 몇번이고 대부분은 「연습장골퍼」이다. 택시 운전사도 트렁크에 클럽을 넣고 다니다가 연습장에 들어가 볼을 친다.한국은 골프를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한다. 수십만평 코스에서 볼을치는 것도 「스트로크」지만 연습장에서 치는 것도 스트로크이다.골프연습장은 수영장이나 테니스코트, 조깅트랙을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다. 바로 이런 면에서 최근 지자체들이 골프연습장을만드는 것은 이유가 어디에 있건 반갑다. 나도 연습장에서 「스트로크」를 하면 고액회원권 소지자들이 부러울게 없다.◆ 해저드드라이버 한 자루를 50만원으로 보면 20자루면 1천만원이다. 드라이버 20개라고 해야 어른이 너끈히 들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런데그게 바로 중형차 한대 값이다. 한마디로 골프클럽비즈니스는 부가가치가 여간 높은 산업이 아니다. 그런 황금 비즈니스를 한국은 완전히 넋놓고 빼앗겼다.세계골프클럽산업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지만 그 원산지는 대만이70%이상이다. 「땅 좁고 인구많아 무엇이든 만들어 팔아야 하는」한국은 클럽에 특소세를 부과하는 등 골프를 사치로 보는 정부인식으로 인해 그 노다지를 대만에 선사했고 요즘엔 중국에 조차 시달리고 있다.국내 골프용품시장중 클럽이 차지하는 액수는 연간 2천억원규모이다. 추정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외국산 골프클럽 수입총액은 4천9백53만달러이다. 약 4백억원.이는 CIF가격으로 소비자가격으로 치면 1천억원을 금방 넘는다. 여기에 밀수 등 비정상적 루트로 반입되는 물량과 여행객들이 가지고들어오는 물량 또한 그 이상으로 봐야 한다. 이는 지난해 일제클럽이 전면 수입금지품목임에도 불구, 「세이코 S야드」나 「혼마빅LB」소지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캘러웨이 골프클럽은 지난해 정식수입품이약 1백60억원 어치가 팔렸다. 여행자 반입물량까지 합하면 캘러웨이만 3백억원이상이라는 게 수입에이전시의 분석이다.이같은 규모의 국내시장이 요즘엔 완전히 「해저드」에 빠져 버렸다. 병행무역 허용으로 수입상은 춘추전국시대가 됐고 지난 1일부터는 다변화품목해제로 인해 일제채에 대한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영세한 국산 골프클럽업체는 그 소용돌이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서게 됐다.한마디로 요즘은 볼이 워터해저드에 빠졌는지 벙커에 숨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그저 겨우 숨만 겨우 쉬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소비자인 골퍼들 입장은 좋다. 가격은 내리고 선택의 폭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산 생산업체들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지고있다.◆ 국외자이상의 얘기들은 골퍼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 세상엔 골프를 안치는 「다수」가 훨씬 많이 존재한다. 골퍼들의 가장 흔한 실수는「골프를 안 치는 사람과는 대화자체가 안된다」고 단언하는 것.『한번 쳐 봐. 그러면 알게 돼』식이다. 골퍼와 비골퍼간의 「갭」은 골프장 건설에서 크게 벌어진다.반대론자-『자연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이다. 멀쩡한 산을깎아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약 등으로 인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건죄악이다. 또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십만평을 하루에 고작 수백명이 이용하는 것도 낭비적이다. 한국은 아직 그렇게 여유있는 나라도 아니며 그 개발비용으로 공장을 더 짓는 게 원칙이다.』찬성론자-『야산은 영원한 야산으로 생산성이 전혀 없다. 코스도자연이다. 차라리 개발해서 생산성을 부여하는 게 효율적 이용이다. 환경오염은 오해가 많다. 골프장가서 농약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골프장은 외화가득률 1백%의 관광상품이다.』 어떤쪽의 논리가 맞는지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골프는 한가지 사안에 대해 10가지 논리가 나올 수 있다.중요한건 서로가 배타적이지 않는 것이다. 골퍼들 스스로도 「안치면 모른다」는 식으로 「골프를 고립시키지 않았나」반성할 필요가 있다. 골프는 특권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다. 그저 「좋아할 수있는 운동」일 따름이다. 아이들에게 수영 가르치듯 스윙을 익히게하고 친구들과 볼링치듯 연습장에 함께 가는 작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골프를 모두가 공유하는 방법이다. 한국과 같이 골프에대해 「좋다 나쁘다」, 「쳐라 말라」고 구분짓는 것은 소모전일따름이다.럽 오브 더 그린움직이고 있는 볼이 국외자에 의해 우연히 방향이 변경되거나 정지된 경우를 「럽 오브 더 그린」이라 한다. 이 경우 골퍼는 볼을 있는 그대로 쳐야 한다. 골프에서 「럽 오브 더 그린」은 없을수록좋다. 골퍼가 친 볼은 친대로 자연스럽게 날고 굴러야 한다.한국골프에도 「럽 오브 더 그린」은 없을수록 좋다. 이미 구르고있는 수많은 볼을 「규제」와 「사치」라는 국외자가 얼마나 더 건드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