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외운 말만 떠드는 건 실패의 지름길
...개념과 방법론에 함축된 속사정 풀어내야

[경영전략]
폼 나게 정리한 경영 전략 교과서만 외우는 '바보'들에게
경영학과가 없는 대학이 거의 없고 각종 미디어에도 경영 관련 용어들이 넘쳐난다. 세계적 증시 호황을 맞아 제철을 만난 각종 투자 보고서들도 마찬가지다.

경영 전략 분야의 개념과 방법론은 특히 눈길을 끄는데 ‘최고급(제일 비싼) 컨설팅사’들과 투자은행들이 힘센 최고경영자(CEO)들과 분위기를 띄우고 다른 한편으로 학계와 미디어가 나름의 담론으로 포장해 판을 키우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사업으로 구현하는 경영 전략은 현장 실무자의 구체적 실행 활동과 달리 일반 대중에게 다소 낯설고 신비해 미디어의 속성에 영합하는 면도 있다.

경영 전략 분야의 개념과 방법론은 알고 보면 평범한 상식을 폼나게 정리한 것이 많다. ‘손자병법’에서도 보듯이 전략의 지혜는 오랜 세월 전쟁과 정치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미 다양하게 정리돼 있다.

산업과 기술의 기회를 잡아 사업으로 만들어 세상을 바꾼 사례들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경영 전략 전문가나 학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대학의 관련 과목들이 없어져도 세상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경영 전략은 빤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꾸민 말장난에 불과한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하기 나름이다. ‘블루오션’이란 말로 경쟁 전략과 혁신의 요점을 설명하듯이 경영 전략의 개념과 방법론은 복잡한 현실을 압축해 핵심을 짚는 데 도움을 준다.

산업 경제학의 전문적인 연구들을 차별화와 원가 우위의 전략 개념으로 압축하고 네트워크 경제 특유의 구조에서는 플랫폼 전략의 요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개념과 방법론에 함축된 본래의 생각을 짚어 속사정을 풀어내면 쓸모가 있겠지만 책에서 외운 말만 떠든다면 세상에 소음만 더할 뿐이고 모자라는 생각으로 기업과 경제에 생체 실험을 하는 꼴이 된다.

‘차별화’와 ‘원가 우위’는 왜 실현되기 어려울까

경영 전략에는 이른바 ‘본원적 전략(generic strategies)’이란 말이 나온다. 남다른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자를 압도하는 차별화 전략과 경영 전반의 효율화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는 원가 우위 전략, 특정 부문에 힘을 모으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의미한다.

세상에 이처럼 당연한 얘기가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엉키는 부분이 있다. 한때 거리 곳곳을 장악하고 관련 업계를 뒤흔들던 중저가 화장품 매장들을 생각해 보자. 색다른 제품 개념과 사업 모델로 원가 우위를 확보해 가격을 크게 낮추고 이것을 차별화된 경쟁 포인트로 삼았다. 과연 이는 차별화 전략일까, 원가 우위 전략일까.

본원적 전략은 산업의 경쟁 구조를 배경으로 한다. 우선 완전 경쟁 시장은 성격상 전략의 여지가 없고 독점 시장은 경쟁 자체가 없다. 제한된 숫자의 사업자들이 각각 나름의 특징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고유의 영역을 갖는 시장 구조에서는 차별화 여부가 생사를 좌우한다.

브랜드 전략이 대표적인 경우다. 차별성이 크지 않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몇 사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복점(duopoly)’이나 ‘과점(oligopoly)’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데 원가 우위는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앞에서 본 중저가 화장품 사업 모델은 가격이 제품과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요소들 중 하나였던 셈이다.

현실의 경영 전략은 차별화와 원가 우위의 빤한 상식을 넘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낼 때 의미가 있다. 석유화학은 제품의 차별성이 거의 없이 규모의 경제와 생산 효율로 승패가 좌우되는, 원가 우위 전략이 중심이 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SK루브리컨츠와 같이 색다른 아이디어로 고품질 윤활유를 만들어 독자적 시장을 개척한 사례가 있다.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가 절대적인 의류 사업에서 과감하게 생산과 유통의 구조를 바꿔 원가 우위를 만들어 낸 유니클로의 사례도 있다.

이렇듯 경영학의 개념과 방법론은 책을 외워 이리저리 짜맞추고 답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을 위한 밑천으로 삼으라고 정리해 둔 것이다. 경영학 책은 페이지마다 차별화를 위한 전략들로 가득하다.

남다른 제품과 서비스, 혹은 사업 모델로 성공한 경우는 별로 없다. 하긴 모두가 혁신으로 차별화하면 세상은 성공한 기업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 속사정을 모르고 ‘혁신’을 찬양하는 데 그치는 경영학은 시간과 노력을 좀먹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눈만 뜨면 혁신을 강조하는 A전자. 당신은 TV의 미래를 바꿀지 모르는 신개념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려고 한다. 누가 당신의 ‘혁신적 도전’을 반길지 생각해 보자. 물려받은 회사를 지키는 것이 목표인 회장님은 자기가 잘 모르는 일을 벌이는 직원들이 불안할 뿐이다.

정말 되는 일이면 나가서 자기 사업을 할 텐데 왜 회사 돈을 쓰나 의심도 든다. 월급쟁이 사장님과 본부장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잘되면 당신의 공이고 실패하면 책임은 같이 질 테니 난감하다.

일만 잔뜩 늘어나고 잘못되면 같이 사표 낼지 모르니 당신의 부하 직원도 짜증이 가득하다. 당신의 부인은 어떨까. 성공하면 잘난 맛에 가족들 우습게 보고 잘못되면 잘릴 테니 역시 싫어한다. 마음 편히 살려는 사람들에게 혁신과 차별화는 안타깝게도 ‘공공의 적(敵)’이 된다.

무지와 허영이 전략의 최대 걸림돌

그렇다면 원가 우위 전략은 왜 어려울까. 구내식당의 재료비를 아끼고 이면지를 써 원가 우위가 된다면 세상에 못할 회사가 없다. 흥청망청 생각 없이 새는 돈을 막는다는 ‘생각의 습관’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원가의 큰 부분은 사업 모델의 변화와 투자 집행에 따라 좌우된다.

당장 눈앞의 주문이 아쉬워 제품 라인을 확대하면 간접비가 올라가고 돈 없다고 투자비 지출을 줄이면 수리비와 원재료비 때문에 생산 원가가 올라간다.

백화점이 싸구려 조명과 장식품으로 때우면 할인마트보다 못하고 온라인 쇼핑몰이 시스템 개선과 배송에 돈을 아끼면 반품 요구에 얼이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지할수록 사업 전반을 이해하기 어렵고 엑셀 화면에 나오는 적자는 가슴이 철렁한 일이다.

당장의 책임을 피하려는 비겁한 경영자는 숫자를 무기로 권세를 탐하려는 관리자들과 함께 힘없는 직원들을 몰아댄다. 원가 우위 전략은 괴로운 일이다.

저렴한 물건을 판다고 사람도 저렴한 것이 아니고 험하게 번 돈 우아하게 쓰면 될 일이지만 좀더 폼나는 사업으로 주위의 인정을 받으려다 돈만 날리는 경우가 제법 있다. 강남의 유명 의상실보다 헌 옷 수거 업체가 돈을 수십 배 많이 벌지만 자식들 결혼 때문에 그럴듯한 사업체를 인수했다는 지인도 있었다.

선택과 집중, 지당한 말씀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에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TV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채택하려면 다른 방식을 포기해야 하고 독자적 운영체제(OS)의 스마트폰을 키우려면 애플과 구글이 만든 판에 맞서야 한다.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기회로 만들려는 엉큼한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에서 자신의 선택은 무한 트집의 소재가 되고 책임은 오로지 자기 몫이 된다.

세상에 말로는 못할 일이 없다. 남 따라가는 추격형 전략에서 앞서가는 선도형 전략으로 길게 보고 투자해 본격적으로 혁신하라고 한다.

진정 그런 ‘바람직한 혁신’을 원한다면 그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무지와 허영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눈치와 비굴함을 필살기로 마음 편히 월급 받는 데 총력을 다하는 회사 공무원들의 슬픔을 알아야 유능한 자의 용기를 살려 낼 수 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