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진에어 등 고정비 줄이려 비행기 반납…에어프레미아는 취항 전 경영권 매각까지
[스페셜 리포트] 한국의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근거리 여객 수요에 집중된 사업 특성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 매출이 70% 이상씩 깎였다. 이에 일부 LCC는 비행기 축소로 몸집 줄이기에 나섰고 신생 LCC인 에어프레미아는 첫 취항 전부터 경영권을 매각하며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한국의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LCC들은 줄줄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올해 역시 실적 개선은 힘든 상황이다.
대형 항공사(FSC)들은 화물수송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LCC는 마땅한 출구 전략을 내세우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다. 항공사들이 잇달아 내놓은 무착륙 관광 비행 상품도 실적 개선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업계는 코로나19 백신 보급 등 국제선 여객이 되살아날 때까지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LCC들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회복 시점까지 버틸 수 있을지 전전긍긍이다. LCC 적자 규모만 1조원 넘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 LCC 4개사(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의 영업적자는 9000억원에 육박했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33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적자 규모가 10배 이상 커졌다.
진에어와 에어부산도 적자폭이 4~5배 확대된 1847억원과 197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고 티웨이항공 역시 174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손실이 9배 정도 늘어났다.
비상장사인 에어서울과 플라이강원은 실적 공시 대상이 아니지만 이들 또한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아직 취항 전인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까지 포함하면 한국 LCC들의 적자 규모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LCC들의 적자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인한 국가 간 봉쇄 정책이 본격화된 영향 때문이다. 주력인 일본과 동남아 노선 수요가 97% 가까이 빠지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국제선 승객은 2019년에 비해 무려 84.2% 급감했다. 전년도에 해외로 가는 여행객이 10명이었다면 지난해에는 채 2명이 못 됐다는 의미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 항공 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선 여객은 1424만 명으로 전년도(9039만 명)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한 항공 여객은 2019년보다 68.1% 줄어든 3940만 명이었다.
주요 노선별로는 일본이 88.2%로 감소폭이 가장 컸고 중국(87.8%)·아시아(83.4%)·유럽(82.2%)·미주(72.3%) 등의 순이었다. 일본 노선은 지난해 3월부터 감소율이 90%대를 기록하기 시작해 작년 연말까지 이어졌다. 중국 노선 역시 작년 3월부터 90% 넘게 승객이 줄기 시작해 지난 연말에는 97.3%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노선 역시 3월 이후 90% 이상 승객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LCC가 주로 취항하는 일본과 중국 등 단거리 노선이 상당수 폐쇄되면서 LCC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도 상황은 어려워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상당 수준 완료돼 집단 면역이 형성되고 치료제도 개발돼 코로나19 공포가 어느 정도 잦아들어야만 항공 여객 수요가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국가끼리 체결하는 ‘트래블 버블(traver bubble)’ 실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LCC들에는 악재다. 특히 LCC들의 주력 노선인 일본·중국·동남아 노선 또한 확진자가 쏟아져 트래블 버블 확대 도입은 당분간 어려운 실정이다.
당장 LCC들이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는 범위는 국내선과 무착륙 국제 관광 비행 정도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선은 지난해 신규 취항 카드를 써버려 올해는 가격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LCC들은 1만원 이하 항공권은 물론이고 한 달간 국내선을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는 월 단위 프리패스권 등 코로나19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프로모션들을 진행하며 버티고 있다. 항공기 반납하고 경영권 매각까지
항공 사업만으로는 흑자 전환이 무리인 LCC는 급기야 항공기까지 처분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1대를 줄인 제주항공은 올해 임차 기간이 만료되는 비행기 중 상당수를 반납할 계획이다.
다만 시장의 회복 속도를 감안해 유동적인 감축을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진에어는 지난 1월 보잉 737-800 2대의 리스 계약을 종료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같은 기종 2대를 추가 반납하기로 했다. 티웨이는 지난해 1대를 줄였고 올해는 시장 상황에 따라 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LCC들이 항공기를 처분하는 이유는 결국 비용 절감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모든 LCC들은 비행기를 임차 방식으로 도입하고 있다. 대당 가격이 최소 1000억원이 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이 때문에 임차 형태를 통해 비행기를 보유하고 운항에 나선다.
보증금 금액을 얼마로 설정할지, 몇 대를 계약할지 등에 따라 리스 비용이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인 비용을 산출할 수 없지만 엄청난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이 1년 내 갚아야 하는 리스 부채는 141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생 LCC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우선 에어프레미아는 한국 사모펀드 운용사 JC파트너스와 홍콩계 물류사 코차이나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최대 68.9%의 지분을 넘기는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이사회에서 경영권 매각 건을 결의까지 마쳤다. 컨소시엄은 경영권 인수에 500억~640억원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작업은 이르면 3월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플라이강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필수 인력을 제외한 전체 직원 3분의 2 이상이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매월 리스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가 30억원 정도 빠져나가자 보유 기재 3대 중 2대를 조기 반납했다.
다만 지난해 12월 강원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신규 투자자 확보, 경영 안정화 대책 검증 등을 조건으로 운항 장려금 60억원 지원을 결정해 당장의 위기는 넘길 것으로 보인다. 플라이강원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중 이사회를 통해 250억원 규모 유상 증자를 추진할 계획이다.
에어로케이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운항 증명(AOC) 발급이 미뤄져 면허 취득 당시 자본금 480억원이 거의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AOC를 발급받았고 2월 25일 청주~제주 임시 항공편을 띄우며 정식 취항 채비에 나섰지만 마찬가지로 자금 확충이 선결 과제가 됐다.
한편 에어프레미아와 에어로케이는 최근 면허 취소 위기를 모면했다. 당초 국토교통부가 2019년 3월 6일 신생 항공사에 부과한 국제 항공 운송 사업 면허 조건은 1년 내 AOC 신청과 2년 내 취항이었다.
하지만 에어프레미아는 항공기 인도가 지연돼 지난해 2월 신청한 AOC 절차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에어로케이는 지난해 말 AOC는 발급 받았지만 재무 여건 악화 등으로 신규 취항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도 당국이 취항 조건을 올해 12월 31일까지로 늦춰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일단 살리자” 2000억원 추가 수혈
이처럼 LCC업계의 어려움이 계속되자 결국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3월 3일 ‘항공 산업 코로나19 위기 극복 및 재도약 방안’을 발표하고 LCC에 3분기까지 최대 2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LCC업계에 5415억원의 자금을 지원한 이후 2차로 진행되는 실질적 지원이다. 다만 LCC별 구체적인 지원 시기와 규모는 실사 등을 거쳐 정하기로 했다.
이 밖에 정부는 항공기 취득세·재산세 추가 감면 여부도 검토하기로 했다. 항공기 취득세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60%를 감면하고 있고 재산세는 LCC에만 50%를 감면해 주고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항공사의 고용 안정 지원, 457억원 규모의 공항 시설 사용료 등 감면, 무착륙 국제 관광 비행 다변화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LCC업계는 이 같은 정부 지원을 환영하면서도 자금 지원 시점과 조건이 불명확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LCC가 1분기가 지나면 보유 현금이 바닥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장 유동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주항공이 단적인 예다.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적자를 내면 자본 잠식이 발생하며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실사 이후 개별 LCC에 대한 지원 규모를 정한다는 정부 방침은 이 같은 급박함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정책 자금을 지원 받기 위한 조건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LCC업계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유상 증자와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조건으로 정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LCC 등장 예고에 업계 ‘초긴장’
한편 지난해부터 추진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가 올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LCC 구조 재편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항공사의 LCC 관계사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통합(가칭 통합 LCC)이 예고된 데 이어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등 나머지 LCC 간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합 LCC가 출범하게 되면 보유 기재 수 59대(진에어 28대, 에어부산 24대, 에어서울 6대), 매출 규모만 1조7000억원(2019년 말 기준)을 웃도는 만큼 등장과 동시에 현재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을 제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부산 순이었던 시장점유율도 통합 LCC-제주항공-티웨이항공 순으로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제주항공으로서는 화가 날 법한 상황이다. 제주항공은 2008년 운항 개시 이후 계속 업계 1위를 지켜 왔다. 가장 많은 항공기 44대를 보유하고 있고 2018년에는 LCC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
사실상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제주항공은 규모·매출·점유율에서 모두 다른 항공사를 압도했다. 하지만 통합 LCC라는 강력한 경쟁 상대가 나타나면서 제주항공의 위상이 다소 밀릴 것으로 보인다.
티웨이항공 위치도 모호해졌다. 통합 LCC의 등장으로 업계 3위였던 티웨이항공은 이스타항공과 플라이강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티웨이항공은 통합 LCC 출범을 염두에 두고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해 중·장거리 노선 확대에 나섰지만 문제는 자금력이다.
티웨이항공의 지난해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 738억원, 최근 유상 증자로 668억원을 추가로 확보해 약 1406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자금 전액은 모두 운영 자금으로 쓰일 예정인데 올해 상반기면 바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기종이 도입되면서 항공기 리스료·정비료 부담은 물론 신규 인력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통합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제주항공은 수차례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 왔다. 제주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했었고 이후 이스타항공 인수도 추진했었다.
티웨이항공도 모회사인 티웨이홀딩스와 예림당 모두 티웨이항공으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어 꾸준히 잠재적 매물로 거론돼 왔다. 다만 두 항공사 모두 M&A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만약 두 항공사의 M&A가 추진되면 통합 LCC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통합 LCC보다 규모 면에서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두 항공사의 단순 합산 시 매출액은 2019년 말 기준 2조1079억원, 보유 기재 수도 제주항공이 44대, 티웨이항공이 27대로 총 71대로 통합 LCC를 앞설 수 있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