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1차대전의 승패는 기름의 조달 여부에서 갈렸다. 연합국측은 미국이 참전해 석유 필요량의 80%를 공급해준 덕택에 승리를 얻을 수 있었으며 독일은 석유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백기를 들었다.태평양전쟁 역시 기름으로 분쟁이 빚어져 기름으로 승부가 결정났다. 미국이 1941년 7월 일본에 대해 석유수출을 전면 금지시킨 것이 전쟁의 도화선이었고,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제도의 네덜란드기술자들이 일본군 진주전 현지 유전시설의 88%를 파괴시킨 것이패인으로 작용했다. 미 펜실베이니아 디킨슨대의 G. 프리드먼 교수는 「제2차 태평양전쟁 (The Coming War with Japan)」이라는 저서에서 또 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전쟁의 실마리를 석유문제로부터 풀어나가고 있다.국제사회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증거해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21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오늘날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 결과물이 상당한 수준에까지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석유의 중요성은 예만큼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석유는 아직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표적 에너지원이고 세계각국이 최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물자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세계최대의 석유소비국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생산국인 미국은 94년부터 석유수입 의존도가 50%를 넘어서자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고 범정부 차원의 에너지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석유 수출국이었던 중국도 94년 소비량이생산을 앞질러 수입국으로 전환되면서부터는 대 중동외교를 부쩍강화하고 나섰다. 일본이 JICA(일본국제협력기구)라는 기구를 내세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여러 나라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공을 들여오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이들이 이처럼 석유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배경은 지극히간단하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므로 안정적 공급을 위한 대비체계를 갖춰놓자는 것이다.95년말 현재 전세계 석유 확인 매장량은1조1백69억배럴(1천3백83억t). 그해 생산량이 32억5천2백만t이었므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하면 향후 43년간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얼핏 「충분한 기간」일 것 같은 이 수치는 그러나 중대한 사실을 감추고 있다. 마치 10과 1의 「평균」이 5.5인것처럼 세계 매장량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중동지역은 과소평가되어있는 반면 비중동지역은 배 이상 과대평가되어 있는 것이다.그만큼 석유의 중동 의존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같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급불안정 3차 석유파동 초래 개연성 커세계 10대 석유 소비국이 전세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60.5%(95년)에 이른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캐나다만 국내 생산량이 소비를 상회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수입국이다. 그나마 캐나다도 10년이면 자국내의 유전은 고갈된다. 미국은 현재 세계 9위의확인 매장량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 생산 추세가 계속된다면 10년을 못 버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가스는 더 짧아 8.8년에 불과).2002 월드컵이 끝나고 한두해 지나면 한국처럼 석유에 관한 한 전량 수입국이 된다는 말이다. 노르웨이와 영국 등 북해 유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도 각각 7.8년과 4.4년이면 완전 수입국으로 전락할 운명에 있다.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앞으로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90%는 중동산유국에 의해 공급되어야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10년뒤면 세계 주요 석유 소비국들은 중동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데세계적으로 석유 수급 문제가 조화롭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동에는 긴장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결론이다.또 하나 주목해야할 대목은 전 세계 매장량의 4.4%, 생산량의10.8%를 차지하면서 소비량은 26.2%를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수급 현황이다. 이 지역은 생산량 대비 소비량의 비율이유럽보다도 더 높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지역답게 석유소비증가율 또한 세계 평균을 훨씬웃돌고 있다(지난 5년간 평균 5.2% 증가). 특히 생산량은 향후 상당기간동안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인데 반해 소비량은 꾸준히 늘어날추세다.이같은 불균형 심화는 곧바로 중동 의존도의 심화로 연결된다. 이에 따라 석유확보를 위한 역내 국가간의 갈등도 예견되고 있으며특히 공급원 이외에 안정적인 해상 수송경로를 확보하기 위한 한중일 3국간 마찰의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같은 이유 등으로 인해 IEA는 94년부터 계속 연례 보고서에서 곧심각한 석유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강조해왔으며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상은 향후 10년 이내에 중동지역 불안에 의한 석유위기의 초래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본 석유공단은 한술 더떠 5∼7년내에 3차 석유위기의 발생 개연성을 점치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보면 시간의 문제일뿐 석유파동의 악령은 시시각각 구체화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는 1백%이며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6%에 이른다. 그러나 「기름 한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은 다 알지만 「석유소비 증가율 세계 1위 나라」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규모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내용을 뜯어보면 경각심을 일깨우는 측면이 많다.우선 석유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돈다는 점에 주목할필요가 있다. 지난 5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7.5%를 나타냈으나 석유 소비증가율은 12.95%로서 거의 배에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이는 산업 부분보다는 수송 가정 상업용 등 비산업 부분의 소비가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음을 말해준다.이에 따라 국가별 석유소비 순위도 수직 상승을 거듭해 91년에는세계 12위였던 것이 92년 11위, 93년 10위를 보이더니 95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6위국(하루 2백1만배럴)으로 올라섰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뿐이다.석유소비에 관한 한 한국은 당당히 「G6」급 국가로 꼽히게 된 것이다.결코 달갑지 않은 이같은 타이틀을 차지하게 된데에는 여러 가지요인이 있다. 한국은 산업 구조가 중화학 중심으로 되어 있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석유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또 최근 들어 국제원유가격이 안정되어 있는데다 국내 공급에도 이렇다할 문제점을 느끼지 못해 석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특히 소득 증대와 더불어 에너지 소비가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도 에너지 문제를 간과하게 하는 한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핑계」를 감안하더라도 전체경제 규모나 인구 대비 측면에서 볼 때 과도한 소비국이라는 지적은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 석유소비 한국 세계 6위 차지한 나라의 산업 구조를 하루 이틀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일반 가정이 석유소비를 줄이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결국 문제의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국내 대륙붕 개발 사업을 촉진하거나 해외유전개발 사업을 강화하는 길밖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결론이다.누구나 다 알다시피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기름은 단 한방울도없다. 그러나 「산유국」을 향한 꿈이 전혀 무망한 상태는 아니다.특히 지난 87년 동해안 6-1광구에서 가스와 액체 상태인 컨덴세이트가 발견되고 매장량이 경제규모에 버금가는 것으로 확인됨으로써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가스를 뽑아내려면 생산에 필요한 투자비와 가채 생산량과의 경제성을 비교해봐야하는데 아직은투자 대비 산출액이 절반에 불과해 인근지역의 매장 여부를 계속탐사중이다. 그밖에 다른 광구 일부에 대해서도 석유 부존 여부에대한 심증을 갖고 꾸준히 탐사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가능성에 대해 「49%」보다는 「51%」쪽에 기울어져 있다. 한마디로『중동같은 대규모의 유전은 기대할 수 없지만 분명히 해볼만하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해외 유전개발과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그 필요성이 제기되어왔으나 ▲석유개발정보 및 자금의 부족 ▲ 민간 기업 경영진의 석유개발 사업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 기술여건의 미흡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있다. 개발 수입이란 국제 입찰에 참여, 외국의 해외 유전 지분을사들이거나 직접 협상을 통해 유망 광구를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현재 한국의 개발 수입물량은 전체 수입 물량의 1%를 약간 상회하는 하루 2만9천배럴 정도. 일본의 개발 원유 점유율이 14%(60만배럴/일)에 이르고 있고 21세기초까지는 1백20만배럴(30%)을 목표로하고 있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소비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비해 개발 수입물량은 감소하고 있어 총 수입 대비 개발수입의 비율은 큰 폭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뭔가 획기적인 대책이 있지 않는 한 어려운 상황은 가중될 전망이다.개발 수입은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이를 테면 한국 기술진이 해외에 나가 개발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기술의 축적(현물도입에 치중할 경우 기술축적의 겨를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개발 도입과 현물도입 사이의 가격차 절약(현물도입이 약 4배 가량비싸다), 우발적 공급중단 사태시에 대비한 안정된 물량 확보 등을들 수 있다. 아울러 국내석유시장의 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업체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개발 도입은 불가피한 실정이다.이 가운데 기술축적 측면은 특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문제가되고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과 관련, 일본 중국과의 협상시 기술력이 없으면 한국의 입장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일본은 공동광구에서 기술력의 차이로 인해 한국과의 협력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 한가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석유 비축의 문제다. 한국이 OECD에가입할 경우 산하 IEA의 규정에 따라 90일분의 의무 비축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석유 대소비국으로 구성된 OECD국가들이 유가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도록하는 집단 자위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비축량은 60일분이 채 안된다. 올해내로30일분을 더 비축해야 한다는 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개발 수입, 기술 축적 외에도 장점많아비단 석유뿐 아니라 가스 석탄과 철광 등 여타 광물이라든가 식량문제도 석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정된 자원공급체계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 즉 전략비축물자의 안정적 확보가 한 나라의 안위를담보하는 결정적인 장치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기때문이다.한국은 유연탄과 우라늄은 1백%, 철 구리 아연 등은 99%의 수입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광물을 합한 전체 수입규모는 95년 현재72억달러로 석유의 80%에 이른다. 개발 수입물량은 유연탄만이10%를 약간 상회할 뿐 우라늄 아연 구리는 2~6%, 철광은 전량 매입하는데 그치고 있다.식량 조달 상황도 결코 가볍진 않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93년34%였다가 지난해에는 28%로 떨어졌다. 수입액은 98억달러(93년)수준으로 85년의 40억달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때문에중국이나 아르헨티나 러시아 등지에서의 계약재배, 합작농목장 경영 등 양국간 실질 협력을 통한 식량확보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실상 이들 나라의 농경지와 한국의 자본 기술이 결합할 경우 국내 공급은 물론 세계시장 진출의 여지 또한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해외자원의 공급 및 가격 위기사태는 언제 어느 시점에서도 발생할수 있다. 국내 생산량에 개발 수입량을 더한 「자주공급력」 확보는 국가가 계속 존립하기 위한 필수조치다. 특히 공급의 안정성과투자 수익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해외 자원 자주 개발의중요성은 매우 강조돼 마땅하다. 세계화라는 구호는 정작 자원확보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어야할 것이라는게 해당 분야 종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