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1백주년 2045년의 자화상.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그러나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지난 50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다른50년동안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성취에서 얻은 자신감이다.그렇다. 우리 경제가 이만큼 커진 것도 오로지 「할수 있다」는 믿음에서 땀흘려왔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역사나 동족상잔의 멍에를뜨거운 피와 땀으로 녹여내며 지금의 우리경제를 일궈냈다. 누가뭐라해도 성공적이었다. 광복 51년의 단면도를 놓고 보면 말이다.발전의 동인과 동력이 그만큼 뚜렷했다. 식민지시대의 암울했던 과거와 동족상잔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했고 이를 위해 남보다 수십배의 노력을 기울여야했다. 그러나 똑같은 노력이 오는 21세기에어느정도 빛을 볼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니 전혀 힘을 발휘할 수없을지도 모른다. 격변하는 세계에서 과거 분단과 냉전의 논리와사고에 따른 행동양식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떠오르는 신세대들에게 역사의 아픔을 잊지말고 매진하라고 어떻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냉전시대에 분단국가의 정부는 어느 나라보다 무제한적인 힘을 발휘하며 성장정책을 펼쳤다.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분배의 역할을 스스로 담당했다. 수출위주의 중화학공업이 발전할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장경쟁의 원리와 인간의 기본권이 일부제한받기도 했다. 꼬리를 물고 일었던 특혜시비도 쉽게 잠재울 수있었다. 냉전과 분단의 극복이라는 명분앞에서 정부정책을 거스르는 것은 곧 반역이었다. 노동운동을 억누르는 것도 특혜금융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악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그러나 이제 냉전은 종식됐고 시대가 변했다. 80년대후반 동유럽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이윽고 90년대 들어 구소련마저 해체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중국등제3세계국가들도 「흑묘백묘론」등 나름의 생존논리를 바탕으로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빵이 없는 이데올로기가 허무하다는 인식은 이젠 상식이 됐다. 자유로운 자본흐름을 바탕으로세계가 단일 경제권으로 쉽게 통합되고 있다. 국가간 경제장벽은더 이상 의미를 가질수 없게 됐다. 일부 학자들은 급속히 발전하는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자본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그만큼 활동무대가 넓어졌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막무가내식 수출드라이브정책도 설땅을 잃게 됐다. 정부정책의 실효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 창설된 것도 새롭게 움트고있는 세계질서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냉전종식으로 경제활동의 틀이 급팽창하면서 지역별 연대도 활발히모색되고 있다. 홀로 서기보다 이웃간이라도 뭉쳐야 살아남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지역친밀화경향을 가져왔다. 정치적 동기에서출발했지만 유럽연합(EU)이 형성되고 유럽내 집중화를 경계하기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 출현했다. 최근 급성장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아세안(ASEAN) 등을 통해 결집을 모색하고있고 아태경제각료회의(APEC)도 방향성을 활발히 찾고 있다.◆ 장년기 접어든 우리경제 체질진단에 적기그렇다면 이같은 세계질서의 재편속에서 화려한 광복1백주년을 맞기위한 우리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그 답을 찾는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이다. 개발연대의 고도성장기에는 종합건강진단을 받을 여유조차 없었다. 활발한 신진대사와 성장으로 아플 틈이없었는지 모른다. 오로지 숨가쁘게 달리기만 하면 됐고 달린만큼보람을 누릴수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장년기에 접어든 우리경제의 실체를 아는게무작정 뛰는 것보다 중요해졌다. 우리경제의 강약을 체크하고 성장템포를 조절하는 것도 시급한 시점이다. 마라톤보다 멀고 험한50년 갈길을 염두에 두면 말이다.장년기에 접어든 우리경제체질을 제대로 진단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다. 현재 한국경제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이 급격히 둔화돼 경상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산업생산, 제조업가동률, 재고증가율등 각종 경제지표가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안달한다.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진입하지 않았느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물가 금리 환율등 각종 경제관련변인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어두워진다. 중소기업은 물론 일부 대기업마저 사업계획까지 동결시키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불황기에 설비투자로 어려움을 돌파한 뚝심도이젠 찾아보기 쉽지않다. 난관을 이겨낼수 있다는 투지도 엿보이지않는다.우선 외과부터 찾아가보자. 그래야 멍든 경제의 원인이 무엇인가알수 있다. 어떤 의사는 최근 엔화약세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엔화약세가 한풀 꺾이면 수출이 살아날 수 있다는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정부정책당국자들도 이런 진단을 믿고싶어한다.다른 의사는 좀더 심각한 진단을 내린다. 경제가 멍든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쇠퇴한데 따른 것이라고 냉정히 말한다.냉전종식으로 제3세계의 저임노동력이 세계경제에 유입되면서 우리제품은 가격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이다. 반면 산업구조조정의 지체로 첨단기술로 미국 일본과 경쟁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선진국진입의 문턱에서 후발주자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몇 년새 우리경제의 간판노릇을 했던 메모리반도체산업이 주춤하면서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것도 고도기술경쟁력이 태부족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국내로 들여오는 물건은 넘쳐흐르는데 내다팔 물건이 마땅히 없다고 국내상사들이 고민하는것도 이때문이란다. 경상적자와 총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고비용 저효율에 근본 문제가 있다는 진단은 늦은감마저 있다. 경제성장보다 소비가 증가하는 속도가 빨라 물가가 들먹이고 물가불안은 금리인상으로 이어져 기업활동을 더욱 어렵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좀더 정밀진단을 받기위해 내과를 찾았다. 컴퓨터단층(CT)촬영이라도 해봐야지 청진기에 의존한 결과론적 원인파악으로는 속시원한처방이 나오지 않는다. 경제를 둘러싸고있는 정치 사회 문화등을세부적으로 체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분야도 썩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권위주의적정치체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정치보스를 중심으로 한 파당싸움이 무협지보다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국내정치는 4류라는대기업총수의 지적이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하게 들린다.역대 정치권력은 분단상황을 이용해 절대권력을 휘둘렀고 그것도모자라 지역갈등구도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재창출하려했다. 부의 편재 및 지역불균형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절대권력의 정부는 규제적 기능을 수행하려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직도 공장하나 짓는데만 50여개의 관련법이 얽히고 설켜있고 필요한 도장은 부지기수이다. 외국에 투자할때도 자기자본조달비율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를 백지화하는등 정책혼선이 비일비재하다. 자본시장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조류다.불필요한 규제가 많다보니 규제를 하는데도 혼선이 빚어지고 법규간에도 상충요소들이 적지않다. 또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자연히 정경유착이 싹트고 전직 두 대통령이 비자금사건으로 법정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받는 지경에 이른다.최소한의 원칙을 정하고 이것이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정부기능이요구된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공공부문의 생산성을 제고시키기위한 노력도 부족했다.언제나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했다.기업들의 경영환경을 조성해주기위해 금리와 물가를 잡으려는 정책당국자가 몇이나 됐을까 의심스럽다.최근의 규제완화와 금융개방등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만을 위한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은아닌지 사시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1세기 또다른 웅비위한 실천방향 찾을 때사회문화적으로는 가치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과소비풍조가 확산되며 상대적 박탈감이 우리경제의 응집력을 떨어트리고 있다. 고되고힘들고 더러운 일을 꺼리는 3D기피현상으로 산업현장에서는 일할사람을 찾지못해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반면대졸실업자는 꾸준히 늘어 인력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국내총생산 세계 11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서도 삶의 질은 제자리라는 볼멘소리가 적지않다. 선진국형 노사관계가 형성되기위해선 얼마만큼의 시행착오를 더 겪어야할지 모른다. 전쟁세대와 전후세대간의 불협화음과 그뒤를 잇는 신세대간 갈등과 알력도 쉽게 풀릴 것 같지않다.교육 의료 금융 개인서비스 등 국내 서비스부문의 상대적 낙후도경제부문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환경 교통등의 부문에서도 치료를 필요로 하는게 한두곳이 아니다.물론 강점도 없지않다. 지난 30년동안 축적한 우수한 노동력과 아직은 살아있는 기업가정신, 중산층들의 비판의식도 우리사회를 균형발전시키는데 큰힘이 되고 있다. 하기에 따라서는 21세기에 다시한번 웅비할 수 있다. 정부와 민간기업간에 정치와 경제논리간에역할이 분담되면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여기에 국민 대다수의 협력을 이끌어내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있다. 21세기의 밝은 청사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올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오는 2020년에 국내총생산 4조달러,수출 1조2천억달러로 선진 7개국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이같은 경제규모라면 경제통합을 통해 분단을 극복하고 동남아의 경제중심으로 부상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민간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고 공정한 경쟁규칙이 확립되며 개인의 창의가 극대화됐을 때의 전망이다. 새로운 발전동력을 창출해 성장잠재력을확충해야한다. 또 정치 사회가 성숙해야한다. 합리적인 시민의식과직업의식도 확립돼야한다. 이같은 전제조건은 앞서 언급한 우리사회의 제반문제가 효율적으로 치료됐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목표를 잡는 것보다 구체적인 실천방향을 찾는게 더 중요한 시점이다. 다가오는 반세기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는 그런 세월이 돼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