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만달러. 광복 이듬해인 46년의 수출규모다.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면서 광복조국의 미래를 그려보느라 모두들 가슴이 벅찼다.1천만달러 수출. 광복된지 20년을 갓넘은 77년의 실적이다. 「잘살아보세」라는 노랫가락에 맞춰 모두 수출역군이란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선진국이란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1천2백50억달러. 지난해 수출액이다. 반세기만에 무려 3만1천2백65배나 수출규모가 확대됐다. 수출입교역규모는 2천6백3억달러로 세계 12위에자리잡고 있다.「한강의 기적」이라며 세계가 놀라운 눈으로 지켜본 우리의 경제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물론 이런 눈 씻고 볼만한 경제성장의 주역은 단연 수출이다. 자원도 돈도 없는 나라에서 수출은유일한 부의 축적수단이었다.◆ 수출5대품목 의존의 함정, 국제수지적자과거뿐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수출과 국민경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 8.4% 가운데 수출에 의한성장은 2.9%로 전체경제성장의 34.5%를 기여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소득이 소득순환과정에서 유발하는승수효과까지 감안하면 기여도는 52.4%까지 높아진다. 「수출없인못살아」다.아울러 수출입국의 주된 배역을 맡은 출연진도 시대에 따라 명패를달리 내걸었다.본격적인 경제개발의 삽을 든 61년만 해도 철광석 중석 생사 무연탄 오징어 활선어 흑연 합판 미곡 돈모 순으로 10명의 「주인공」들이 나라살림에 보탬을 줬다. 모두 1차산업의 생산물이다. 특별한기술이나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 않고 단순생산이 가능한 제품들이다. 7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개발계획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1차산업의 생산품이나 경공업제품이 줄어들고 중공업제품들이 수출주역의 자리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의 주요 수출품목을 보면 섬유류가 가장 많은 수출실적을 이룬 가운데 전자제품 가발 철강 신발 선박 전자제품 등이 새로운 주인공들로 수출무대에 올랐다. 특히 70년대 초반까지의 성장을 토대로 지속적인 성장기반의 구축을 위한 산업구조 고도화의 일환으로 73년에 나온 「중화학공업화선언」은 중화학공업육성정책에 대한 출발신호로 한국경제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똑똑한 10명의 효자」에 전자전기 철강 선박 자동차 기계류 등이주류세력으로 합류하면서 수산물을 제외한 1차산품류는 무대에서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80년대 중반 정부의 강력한 중화학공업육성정책에 따라 비약의 터전을 닦은 반도체 등 전자전기 섬유직물 철강 선박 자동차 석유화학 등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주도적인 수출역군으로서 부동의 자리를 지키며 제몫을 다하고 있다. 그만큼 산업화가 이뤄진 것이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섬유 등5대 품목의 경우 수출전선을 선봉에 서서 이끌고 있다. 반도체의경우 지난해만도 2백20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했으며 자동차는 76억달러, 석유화학은 30억달러, 철강은 72억달러, 섬유류는 1백84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했다.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생기기 마련. 한때 수출역군으로 세계의 곳곳에 「Made in Korea」의 깃발을 날렸던 「유망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퇴락의 길을 갔거나 생산기지를 「물 건너 이국 땅」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지타산이 안 맞고 3D업종이라 모두가 꺼리기 때문이다. 대신 낮은 임금을 무기로 동남아국가와 중국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해 들어오고 있다.또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섬유 등 수출 5대 품목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함정」이 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발생한 무역적자 76억5천만달러에 대해 나웅배 전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은 『주범은 수출부진으로 반도체등 특정산업에 의존하는 수출구조에 기인한다』고 말했을 정도다.그러나 수출은 여전히 우리 경제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감초이자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수출무대의 주인공들은 보다 많은수출과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자리바꿈이 활발히 계속될 전망이다.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최한 「21세기의 산업비전」이라는 심포지엄에서 김영동연구위원은 21세기 한국의 유망산업으로 『전자조선 기계 철강 화학 섬유 등 7개 업종이 유망업종으로 손꼽힌다』고 밝혔다. 또 통산부에서 우주항공 생명공학 통신장비 신소재(또는 환경설비) 의료장비 등을 유망 5대산업으로 집중지원하는 신산업육성정책을 적극 검토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래저래 수출이 경제성장의 견인차역을 계속 담당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