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비해 관람객이 2배 이상 증가했고 연령층도 아동에서중고등학생으로까지 확산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현상입니다.』(임헌표 한호흥업 영상사업부 실장)『도떼기 시장처럼 어린 학생들로만 붐비는 이번 전시회는 한마디로 전시행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즈니스에 대한 배려가전혀 없습니다.』(김성술 선우 엔터테인먼트 사업팀장)지난 8월중순 「96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 96)」에 참가했던국내 애니메이션업체 현장직원들의 행사평이다. 얼핏보면 전혀 상이한 평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는 국내 애니메이션업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임 실장과 김 팀장은 「잠재력은 있으나 기본기가 없다」는 현실의 일면을 언급한다.정부는 지난해 애니메이션의 성장측면을 주목해서 「만화영화제작업」을 서비스업종에서 「중소제조업」으로 변경,소득세 법인세 감면혜택을 주는 등 강력한 육성책을 밝혔다. 또한 지난해부터 문화체육부 주최로 SICAF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영상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도 애니메이션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 쌍용 LG 동원 등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정부와 대기업의 관심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달러 박스」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무엇보다 국내 애니메이션업계의 독자적 발전을 가로막는 미국과 일본 유럽 애니메이션업체의하청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인력 부족해 독자적 제작 힘들다「스머프」 「은하철도 999」 「닌자거북이」.적어도 한번쯤 TV에서 봤을 법한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MWS(닌자거북이)와 한나바바라(스머프) 일본의 도에이동화(은하철도 999)가전세계에 공급한 인기 TV만화영화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이다.그러나 정작 이들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제작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애니메이션 전문업체인 대원동화가 이들 회사에 수출한 것이다. 25분짜리 한편당 10만 달러에서 18만 달러에 납품했다.국내에서 제작한 만화영화가 다시 역수입돼서 방영됐던 것이다. 이들 말고도 국내업체가 애니메이션을 공급하는 해외업체로는 월트디즈니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이상 미국), 꼬몽(프랑스), 로보트NHK(이상 일본) 등이 있다. 지난해 국내기업은 해외시장에 5백여편의 작품 8천4백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대부분 TV용 애니메이션이다. 수출금액이나 제작편수로만 본다면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자랑한다.그러나 조금더 내막을 들여다 보면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업체들은 외국 애니메이션업체의 주문변동에 희비가 교체된다. 뿐만 아니라 전과정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을 담당한다. 그것도 노동집약적인 수작업만 하청받고있다. 한마디로 「미국 일본 유럽의 하청공장」이란 달갑지 않은별명을 얻고 있다.「하청공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주원인은 국내 애니메이션시장의 협소때문. 지난해 극장이나 TV 그리고 비디오용으로 제작된애니메이션의 시장가치는 5백억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수백개에 달하는 업체수에 비해 시장이 워낙 영세하다 보니 자연히해외물량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또한 전문인력의 부족도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을 힘들게 한다.해외발주업체들은 스토리 연출 음악 음향 등 고부가가치부문은 자체적으로 처리한다. 국내업체는 단순히 원화를 그리거나 원화와 원화사이에 중간동작을 그리는 동화, 그리고 동화를 셀룰로이드판에옮기는 제록스 등 단순 수작업만 담당하고 있다. 이같은 거래가 지속되다 보니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핵심기술과 인력의 확보가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국내 업계의 인건비 상승으로이마저도 점차 필리핀 태국 중국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현실이 어렵다고 미래의 황금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놓을 수는 없는일이다. 국내업체중에서도 몇몇 업체는 일년에 한두편씩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왔다. 「아마게돈」(아마게돈,제작후 해체) 「붉은매」(대원동화) 「둘리의 배낭여행」(선우엔터테인먼트) 「아기공룡둘리-얼음별 대모험」(둘리나라) 등이 대표적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TV용으로는 「0심이」「날아라 슈퍼보드」「달려라 하니」등이 있다.극장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TV용으로제작된 작품중에서도 「날아라 슈퍼보드」 등을 제외하고는 인기를끌지 못했다. 신원의 김성술씨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토이 스토리」 등 디즈니의 고급작품에 익숙한 관객에게 어설픈작품을 보여줬으니 제대로 흥행이 될 리 없다』며 『흥행참패는 당연한 결과다』라고 주장했다.이같은 문제에도 불구,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매력적인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극장 TV 비디오 및 케이블방송 등 영상사업의 하드웨어를 활성화시키는데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S/W)다. 또한 전자오락게임, 음반, 테마파크, 캐릭터, 팬시산업 등 다양한 산업을 파생시킨다. 디즈니가 「라이온 킹」을 제작, 극장흥행수입으로 1억 달러, 캐릭터를 상품화해서 1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은 좋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과 기존 업체의 협력방안 강구해야이같은 잠재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업계가 안고있는 문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하청공장」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기획과 구성 녹음 음향 효과 분야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이 요청된다. 소위 스토리 연출 구성 등「프리(Pre) 프로덕션」과 음향 녹음더빙 등 「포스트(Post) 프로덕션」분야의 인력과 기술축적이 필요하다.강유일 대원동화 제작부장은 『90년에야 공주전문대에 만화예술과가 처음 설립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애니메이션업계 종사자중에서 「프리」와 「포스트」과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한명도없다』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실무경험까지 쌓은 전문인력을배출하려면 앞으로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5년이지나야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때 가면전세계에 수출할수 있는 확실한 상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주장했다.대기업과 기존 업체의 다양한 협력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애니메이션업체의 영세한 자본력 가지고는 해외시장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힘들다. 대원동화의 강 부장은 『올해 개봉한「붉은매」 제작에 20억원을 투자했는데 극장개봉 비디오판권 팬시사업 등을 통해 겨우 제작비를 건졌다』 『단한번의 흥행실패로 회사가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자체 제작보다는 해외하청물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참여는 불가피하다고 인정했다. 한마디로 제작위험을 분산하기위해 대기업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현재 대기업들은 기존업체와 공동제작하거나 자본투자 등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금강기획은 지난 7월 대원동화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 제작과 캐릭터 사업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동원그룹은 영화기획사인 S-미디컴을 통해 40억원 규모의 「해상왕 장보고」를 내년 6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중이다. 쌍용그룹도 15억원을 출자해서 영화기획사 씨네드림과 「전사 라이언」을 공동제작할 방침이다. 쌍용정보통신은 게임용 S/W에 주인공을 활용한다는 복안을갖고 있다.한호의 임 부장은 『애니메이션산업을 포함한 영상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정부나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데 이는 장기적투자와 인력양성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한 뒤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투자하겠다는 대기업들의 투자의지가 아쉽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