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 테러리스트….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중반 대학가에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학생들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이론만을 강조하는 학삐리, 민족만을앞세워 진리를 보지 못하는 반쇼비니스트, 데모현장에서도 자유분망한 날라리, 이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과격꾼, 안좋게 표현하면이런 식이다. 개개인을 훑어보면 안 그런 것같기도 하고 또 전체를보면 대충 맞는 것 같고. 때론 맞고 때론 틀리기도 하지만 그런 이미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외부에는 그렇게 비쳐졌다.사물·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자의적이고 비과학적인 경우가 많다.그러나 「비과학」은 종종 「과학」을 능가한다. 면접시험장도 그중의 하나. 객관적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면접시험에서 첫인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면접에서는 「XX대학생을써봤더니 안되겠더라구」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이미지가 힘을 갖는다. 왠지 호감이 가는 여자친구, 왠지 홈런 한방 날릴 것같은 야구선구, 왠지 소매치기를 당할 것같은 나라. 이런 「왠지」에 기초해서 결정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우리의 대학에도 어떤 이미지가 존재한다. 아주 오랜 세월속에서굳어진 것이다. 상당히 퇴색됐다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막걸리타입의 고려대」나 「샌님같은연세대」같은 식이다. 그렇다면 기업에서는 국내대학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항목평가서울대·포항공대 극과 극 달리는 시소 평가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대학을 묻는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대학은고려대. 그 뒤를 연세대와 한양대가 따랐다. 지방의 경북대 부산대포항공대는 각각 7, 8,10번째를 차지했다. 고려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앞장서서 하는 것같고술도 잘 마신다는 느낌이 든다』고 대답했다. 서울의 한 재단사무실에 근무하는 장소영씨는 『이화여대 축제때의 난동사건을 봐도왠지 고려대생들은 과격하다는 느낌을 주고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적극적이란 의미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조직의 일원으로 잘 융화되는 대학에서도 역시 1위를 차지한 곳은고려대였다. 이어 중앙대 성균관대가 2, 3위를 보였고 인하대 강원대 건국대 경희대 충남대등 다른 항목에서는 뒤처진 대학들이 대거10위권내에 진입됐다.특이한 것은 서울대와 포항공대. 다른 항목에서는 주로 10위권내에서 맴돌던 두 대학이 조직융화란 측면에서는 각각 30, 28위로 밑바닥을 차지했다. 외환은행 인사팀의 안성대 대리는 『대체로 입사2∼3년쯤 돼서 사람을 평가하는데 그때쯤이면 소위 명문대생들이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뛰쳐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고 배경을 지적했다. 「누가 조국의 장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서울대생의 자긍심이 평범한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 것일까.젊은이다운 감각과 창의력이 있는 대학으로는 연세대가 1위로 뽑혔다. 이화여대는 이 항목에 8위를 차지해 국제성항목에 이어 좋은평가를 얻었다.연세대에 대한 평가는 자못 주목할 만하다. 창의성과 진취성에서는각각 1,2위로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조직성에서는 9위로 상당히 뒤처진 것. 「날카로운 독수리부리로 열심히 먹이를 찾아다니지만」연세대생들 스스로가 지적하듯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직장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책임감있는대학, 리더십이 있는 대학을 묻는 두 항목에서는 다시고려대가 수위. 경북대는 두 항목에서 각각 2위와 6위로 호평을 받았고 충남대 건국대 부산대등이 10위권내로 진입했다. 서울대는 책임감에서도 14위를 기록해 상당히 저조한 평가를 받는데 그쳤다.그러나 이들 항목에서는 상대적으로 평점의 간격이 적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냈다. 또 이화·숙명여대는 숙명적(?) 이유때문인지 책임감이나 리더십에서 모두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판단·업무적응력이 있는 대학으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각각1,2,3위를 차지했다. 지방의 부산대 경북대는 각각 8,9위에 올랐다. 한편 서울대의 평점은 87.77로 각 항목 1위의 평점을 압도하고있었다.다른 항목도 그렇지만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머리가 좋다」고 볼수도 있고 「잔머리만 굴린다」고 말할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가진다.국제적인 감각과 능력이 있는 대학에서도 1위는 서울대. 연세대가2위를 달렸으며 외국어대 포항공대가 3,4위로 높은 평가를 얻었다.막걸리를 연상시키는 고려대는 6위로 이 항목에서는 상대적으로 밀리는 느낌을 줬다. 이화여대와 부산대도 각각 10위권내에 들었다.영업마인드가 있는 대학, 자기계발력이 있는 대학을 묻는 두 항목은 순위가 역으로 나타나는 대표적 케이스. 자기계발력에서 1,2위를 차지한 포항공대와 서울대가 영업마인드에서는 28위와 18위로떨여져 있고 영업마인드에서 1,2위인 고려대 연세대도 자기계발력에서는 서강대에도 뒤지는 4,5위에 머물렀다.특히 영업마인드에서는 동아대가 이례적으로 7위에 올라있어 눈길을 끌었다. 홍익대도 9위로 상당히 높은 순위. 자기계발력에서10위를 기록한 경희대도 주목할 만한 평가였다.전체적으로 고려대는 5개항목과 채용호감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서울대가 2개항목, 연세대와 포항공대가 1개항목에서 1위를 기록했다. 또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우는 전항목에서 10위권안에 든데 반해 서울대와 포항공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어떤 항목에서는 1위, 다른 항목에서는 30위(포항공대 28위)라는 평가의 큰차이를 보였다. 서강대는 대체로 10위권에 들면서도 5∼6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각 항목에 걸쳐 「적당」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성균관대는 조직성과 영업마인드에서, 중앙대는 조직성에서 높은평가를 받았다. 지방대로서는 경북대만이 유일하게 종합순위 10위권안에 들어가는 좋은 평가를 거뒀다.◆ 항목조합과 집단분석서울소재대학 ‘국제성’에서 고평가각각의 항목을 특성별로 분류해 실전능력과 기본소양이란 조합항목을 만들었다. 실전능력은 리더십 판단·업무적응력 국제성 영업마인드를 합친 것이며 기본소양은 진취성 조직성 창의력 책임감 자기계발력으로 이뤄진다.실전능력에서는 연세대가 1위를 보였다. 4개 부분항목중 한군데서도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고르게 2위를 기록한데 따라 전체적인실전능력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고려대와 서울대가 2,3위. 판단·업무적응력과 국제성에서 1위를 보인 서울대가3위를 기록한 것은 영업마인드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은데 따른 것으로 실제 부서배치등에서도 감안할 만한 사안이다. 종합평가에서는 빠져있던 부산대가 10위권내에 있으며 경북대가 반대로 11위로밀려났다. 이화여대도 13위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었다.기본소양에서는 다시 고려대와 연세대 순이었다. 한양대 서강대가3,4위로 기본적인 소양면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포항공대 서울대등은 6,8위로 밀려났다.한편 이번 조사대상이 된 서울소재대학과 지방대학은 각각 19개11개로 이들 상호간을 비교해보면 조직융화란 측면을 제외한 8개항목(채용호감도포함 9개)에서 서울소재대학들에 좋은 평가가 주어졌다. 평소의 인지도와 응답한 기업의 소재지 등에 따라 어느정도는불가피한 평가라는 지적이지만 유의도검증이란 통계적 오차에 대한확인작업을 해본 결과, 부분적으로는 두 집단간에 「의미있는」차이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두 집단간평가에서 가장 편차가 큰 항목은 역시 국제성으로 7.56이란 큰 차이가 났다. 아무리 정보전달이 신속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해도 수도권과 지방에서 습득하게 되는 국제감각과 능력에는 차이가 나는 것으로 기업에서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판단·업무적응력에서는 4.79, 창의력에서는 4.28의 편차를 보였다. 지방소재대학이더 높은 평가를 받은 조직융화와 책임감 영업마인드에서 나타난 차이들은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는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조직성 책임감 영업마인드에서는 대학소재지에 관계없는 평가가 주어졌지만 국제성 창의력 자기계발력 진취성등에서는 지방대학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채용호감도경북대, 책임감과 리더십서 각2, 6위로 호평마지막으로 던져진 이 대학출신만은 채용하고 싶다는 채용호감도설문에서는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서울대 서강대순으로 나타났다.종합순위 10위권내의 대학들이 대개 그대로 채용호감도로 반영됐지만 부산대는 이 부분에서 경북대의 자리를 대체했다. 각 대학간의평점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한편 채용호감도에 대한 설문결과를 다중회귀방식(둘 이상의 독립변수와 다른 하나의 종속변수간의 관련성을 함수식으로 도출, 독립변수에 대한 종속변수의 영향력을 파악하는 통계기법)으로 분석한결과, 9개항목중 어떤 측면이 채용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조직융화나 영업마인드를 직원채용에서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면 서울대생은 채용호감도순위에서 꼴찌를 면치 못할 것이다. 또 고려대생이라도 국제성을 채용결정의 최우선요인으로 본다면 채용호감도순위가 떨어질 것이다.다중회귀분석의 결과, 각 항목은 판단·업무적응력 자기계발력 조직융화 국제성 영업마인드 책임감 창의력 진취성 리더십 순으로 채용호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 평가제조업선 연세·서비스업선 고려대 인기대체적으로 대학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나 응답기업의 업종에 따라약간씩 평가가 달라지는 대학들도 있었다. 제조업체에서는 연세대가, 서비스업체에서는 고려대가 각항목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에서수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제조업 서비스업에서 공히 3위의 평가가 주어졌으며 포항공대의 경우 제조업종에서는 5위, 서비스업종에서는 9위의 평가를 내려 대조를 보였다. 한편 부산대는 제조업체의평가에서는 10위권내도 들지 못했으나 서비스업종에서는 5위를 나타내 이들 업계에서 지명도나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조사결과는 어디까지나 기업체에서 가지고 있는 대학에 대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당 대학졸업생 각자가 진취적이거나 국제적인 감각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조사를 담당했던 현대리서치연구소의 윤치환 팀장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반드시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취업을 목표로한다면 기업의 요구가 각 부분별로 세분화돼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원 졸업자가 복사기도 쓸줄 모른다」는따가운 지적에서 비춰지듯 고학력자들 중에는 「그만그만」하지만「이거다」싶은, 써먹을만한 특색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따라서 더욱 확실해진 대학 이미지에 기초해서 자신들의 색깔을 더욱 바람직한 모습으로 확립해 나가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서구의 예에서 보듯 국내에서도 조만간 대학진학자의 숫자는 감소할 것이다. 반면 교육시장 개방으로 입학정원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특색을 갖지 못하는 대학은 입학생을 끌어모으는데 힘겨움을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백화점식의 학과설치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학생을 모집할 수 있었던 「호황기」가 조만간 마감될 것이란지적이다. 전문적인 학과에 역량을 집중시켜 스스로 뚜렷한 특색을가지는 대학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 대학에 밝은 장래는 없다.물론 그 전문성과 특색은 세계의 대학과도 견줄 수 있는 것이어야한다.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시대조류는 이같은 일들을 더 이상 미룰 수없는 급박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계화 개방화라는 거센 파도가 사회 전분야를 무한 경쟁으로 질주하게 만들어 각 부문마다생존을 위한 순위다툼이 치열하다. 대학사회도 예외일 수 없고 뛰고 노력하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과의 격차는 어느덧 새로운 순위의 판도를 만들어내고 있다.지금까지 30여년간 양적으로만 팽창해온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어떤형태로든 다양한 대학평가를 통해서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확인하고 질적 향상을 이뤄나가야 할 때다.★ 조사목적과 방법본 조사는 기업측에서 국내 주요대학과 그 출신대학생에 대해 어떤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시됐다. 즉 기업측에서 보는 「대학이미지조사」인 것이다. 이 조사는 대학문화가 각각 독특한 색깔을 갖고 특성있게 발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한 문화는 내부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외부시각이 전달됨으로써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틀을 잡는 계기가 될수 있다.조사대상이 된 30개 대학은 전국 각도의 국립대학과 주요 사립대학중 기업의 인지도 순위에 따라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해 선별됐다.설문서는 7백20개 상장기업의 인사 영업부장·임원에게 보내졌으며업종을 고려해 1백76개 응답을 추렸다. 설문은 진취성 조직성 국제성 등 10개항목으로 구성해 각 항목에 대한 응답을 평점으로 처리했다. 응답기업은 크게 섬유화학 금속 등 제조업(64.2%)과 금융 등서비스업(35.8%)으로 분포돼 있다. 나아가 응답내용은 여론조사기관에 의해 빈도분석 회귀분석 유의도검증 등 과학적 방법에 의해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