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유흥업소 접대자제」「임금총액동결」「의식개혁운동」.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기업들의 불황극복책이다.그러나 인원감축이나 일시적인 원가절감운동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황과 국경없는 무한경제 전쟁시대로 특징지어지는 최근 경영환경을헤쳐나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불황타개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기업들의 사업구조조정이 강조되고 있다. 9월중순 구본무LG그룹 회장의 『획일적인 인원감축이나 일률적인 비용삭감은 불황타개책이 될 수 없다』는 발언도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다고 하겠다.사실 30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국내기업들은 사업구조조정을 통해환경변화에 대처해 왔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나 M&A시장의 미성숙그리고 인력스카웃에 대한 비윤리적 의식 등이 구조조정의 장애로작용했지만 사업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했다. 대표적인 화학섬유업체로 알려진 제일합섬만 보더라도 전체매출액중 화섬부문의 비중은50%를 넘지 않는다. 정밀화학 환경산업 정보통신 등의 분야로 다각화했기 때문이다. 2천년에는 40% 미만으로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한계사업 철수등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조정그러나 이같은 구조조정은 일부 업체나 업종에 국한된 것이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80년이후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만 있었을 뿐 구체적 성과는 없었다.일본기업이 엔고나 고임금 등을 극복하기 위해 한계산업을 동남아로 이전하거나 미국 유럽 등 현지공장 설립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기업들은 일본식 경영의 정수라 불리는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을 파괴하면서까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이 결과 보다 강력한 경쟁력으로 무장한후 세계시장에 재등장할 수있었다. 특히 기존의 매출액과 시장점유율 중시에서 고수익사업 구조로 재편하는데 성공했다.국내업체들이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일시적 불황타개책의 모색이 아닌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더 이상 명예퇴직이나 품질혁신 그리고 이면지활용 같은 방식으로는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 힘든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국내업체들이 추진하는 사업구조조정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기존 사업과 전혀 별개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제일합섬의 경우가 그렇다. 그다음 추진해야 하는 것이 한계사업의 철수, 유사조직의 통폐합을 통한 경영합리화다. 최근 LG미디어가 스카라 극장의 운영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다. 또한 생산라인의 자동화나 개선을 통해 경비를 절약하는 경우도 있다.이들 방법중 국내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바로 사업다각화다.신규사업부문에 진출해서 사업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룬 업체중하나가 (주)한창이다. 한창을 비롯한 8개 계열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3천8백억원. 올해는 4천8백억원 그리고 2천년에는 1조원을 예상한다. 이중 절반을 정보통신 미디어 분야에서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부일이동통신(주) 부산방송(주) (주)나우콤 등 계열사의 면면을 보면 결코 헛된 얘기가 아니다.2천년대 종합멀티미디어그룹을 꿈꾸는 한창이지만 처음 출발은 섬유업이었다. 67년 직물과 의류를 수출하는 「한창섬유공업사」로시작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 섬유업체가 더 이상 성장하기힘들다고 판단하고 사업구조개편에 착수한 것이다. 우선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의류제조공장을 남미로 이전했다. 86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바니에 현지공장을 설립했다.92년에는 도미니카와 엘살바도르에 생산라인을 깔았다. 또한 공장의 해외이전과 함께 제품의 고품화에도 힘을 기울여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지난해 한창의 해외섬유부문 매출액은 3천4백만 달러.한편 85년 김승한 현 그룹부회장의 주도로 회사내에 전자사업부를신설했다.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TOP PHONE」이란 고유 브랜드로 무선전화기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대기업들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체 무선전화기 시장의 12%를 차지했다. 이밖에도홈오토메이션, 무선호출기 등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마침내 93년 7월 회사조직도 전문통신업체에 맞게 개편했다. 한창의 지난해 매출액은 1천4백억원이며 이중 무선전화기가 59.4%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해외공장에서 생산되는 재킷(13.1%)과슈트(9.3%)가 차지했다.한창이 신규분야 진출로 성공적인 사업구조조정에 성공했다면 두산그룹은 한계기업의 정리, 유사업체의 통폐합 등을 통한 구조조정에나섰다.두산은 지난해말 창업 1백주년을 맞아 26개에 달하는 계열사를19개사로 축소하고 합작투자회사의 지분 정리에 나섰다. 우선 동양맥주와 두산농산을 통합해서 「OB맥주」, 두산건설 두산개발 두산엔지니어링 등으로 분산됐던 건설부문을 「두산건설」, 동아출판사두산창업투자 두산렌탈 두산환경을 「두산동아」로 각각 통합했다.또한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등 단순합작법인의 지분을 정리했다. 유사업체 통폐합에 따른 인력과 장비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해서다.◆ 경영합리화통한 수익구조 고도화 꾀한다유사업체의 통폐합 뿐만 아니라 정보문화사업과 정밀화학산업 등에적극 진출함으로써 주력업종인 식음료부문을 32%에서 25%까지 낮추기로 했다. 대신 기술소재부문을 45%에서 55%로 늘려 주력으로 육성할 방침이다.한편 생산라인의 자동화나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업체도적지 않다. 코오롱은 92년부터 지금까지 경북김천공장에 2천5백억원을 투자해서 CIM(컴퓨터통합생산방식) 무인자동화공장을 완공했다. CIM방식으로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를 하루에 각각 70t씩 생산한다.이 공장은 섬유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공원이 눈에 거의 띄지않는다. 원료투입에서 원사생산, 운반 및 포장, 입출고까지 전공정을 로봇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생산에 필요한 정보를 관리하는DCS(분산제어시스템)에 근무하는 남자직원 몇 명만이 보일 뿐이다.이곳 김천공장에서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1t을 생산하는데 필요한인원은 2.4명. 세계 최고수준인 일본 도레이사의 2.5명보다도 낮은수준이다. 국내 기존 업체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고임금 인력난으로 상실했던 경쟁력을 만회할 수있게 됐다.생산라인의 자동화 못지 않게 공정혁신을 통한 구조조정에 나선 경우도 있다. 대우전자는 인천냉장고 공장의 2개 생산라인을 1개로줄였다. 또한 종전 4백18m의 U자라인을 2천8백1m의 직선라인으로교체했다.이에 따라 부품의 재고관리가 편리해지고 재고비용도 대폭 줄어들었다. 또한 기존 8백30여평의 공간이 6백80여평으로 줄어듦으로써나머지 1백50여평을 유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작업인원을 20% 감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생산능력은 오히려 50% 증가했다.한편 고비용 저능률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기업들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품질관리 운동에 나서기도 한다. 경영합리화를 통한 수익구조의 고도화를 꾀하는 것이다.최근 기아자동차는 클레임비용을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이고 불량을 60ppm으로 하는 「QIK-156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15개월간3백40억원의 클레임비용을 줄여 수익구조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사장직속기구로 사무국을 설치했다. 또 아산만과 수하리공장에 임원급으로 품질을 철저하게 검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이처럼 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발표하는 구조조정책이 성공하기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빗나간 수요예측과 무리한 투자로 신규사업진출의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다. 또한 한계사업부문의 정리와 유사조직의 통폐합에따른 조직원의 반발 등도 고려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구조조정이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기 경영성과에 집착할 경우 당장 이윤을 주는 한계사업을 정리하기 힘들다는 딜레마에 빠진다.결국 일시적 불황타개책이 아닌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병든」 우리경제가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