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컴퓨터들의 심장-태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중앙일간지에 게재된 컴퓨터 및 컴퓨터부품 생산업체인 태일정밀의 기업광고문구중 일부다. 이 회사는 지난85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컴퓨터 박막디스크를 개발했고 컴퓨터 핵심부품인 마그네틱헤드(자기헤드)를 IBM SONY 후지쓰 등에 수출할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 태일의 이미지 광고는 회사의 생산품이 갖고 있는 이러한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사실 태일정밀은 2년전만 해도 광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기업규모도 작았고 주력상품을 국내외 컴퓨터제조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관계로 일반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2천6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사세가 계속 확장됨에 따라 기업이미지광고를 내보내기로 한 것이다. 광고비 부담은 있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지난해 3백여명을 채용한 하반기신입사원 선발 때 광고를 보고 응시했다는 지원자가 상당수에 달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태일정밀과 계열사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긍심과 소속감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는 점이다.강성일 홍보과장은 『우리회사도 광고를 내보낼 정도로 성장했구나하는 인식이 임직원들 사이에 확산됐다』며 『임직원들의 회사에대한 자부심이 훨씬 강화됐음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태일정밀의 사례에서 보듯 생산품목과 상관없이 임직원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CI를 강화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CI는 소비자 언론 정부기관 사회단체 등 외부고객을 대상으로하는 활동으로 인식되면서 정작 중요한 내부식구들은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사분규 등을 경험하면서 사내 CI작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다.▶ 사가·이미지송 보급 애사심 고취시켜임직원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CI 활동은 MI(Mind Identity 의식통합), BI(Behavior Identity 행동통합), VI(Visual Identity시각통합) 등 3개로 나눠진다. 이들은 기업 CI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경영전략달성과 조직활성화 혹은 사원들의 사기앙양 등에 기여한다.VI는 로고나 글씨체 마크 등 경영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시각적인요소를 의미한다. 호남정유가 LG-Caltex정유로 상호를 변경하면서50억원을 들여서까지 전국 2천5백여개 주유소의 입간판을 변경한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MI는 기업이념, 기업의 존재의의 또는 최고경영자의 경영자세 등을전임직원이 통일된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BI는 이같은MI에 기초해서 경영전략의 책정, 연구개발, 생산판매활동, 소집단활동, 사내커뮤니케이션구축 등을 통일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솔그룹의 「청년정신」이나 선경그룹의 「SUPEX」 등은 사외에 그룹의 경영비전을 알리기도 하지만 임직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이같은 활동은 일상적으로 이뤄지지만 신임회장의 취임이나 그룹로고와 기업이름 변경 등을 계기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이웅열 코오롱그룹회장은 올해초 신임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의경영철학을 「One & Only」라는 슬로건으로 집약했다. 즉 경쟁자와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개인과 그룹의 경쟁력을 으뜸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이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임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파격적인 대화공간을 마련했다. 직원들이 자주 가는 무교동 일대의 호프집이나 음식점을 한달에 한번꼴로 예고없이 방문하곤 한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회장을 보고 자리를 피하기도 했으나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신입사원들과 젊은재벌총수가 서로 격의없이 호프잔을 주고받는다. 신임회장의 이같은 노력이 효과를 발휘해 코오롱그룹 임직원들의 의식도 점차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거의 「안정위계질서 공존 조화」등에서 「경쟁력 혁신 으뜸 완벽 치밀」 등을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오롱그룹 홍보팀의 김종일 과장은 『50년대 섬유업계 정상에 선후 한번도 업계선두에 오른 적이 없어2등의식이 임직원들에게 은연중에 만연돼 있었는데 신임회장의 취임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신임회장취임이나 회사명 변경같은 빅이벤트가 없는 경우 기업은임직원들과 다양하고 다면적인 접촉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기업경영이념에 맞게 임직원들의 다양한 사내활동을 지원한다. 한솔그룹은 「청년한솔」로 상징되는 MI와 BI를 실현하기 위해 임직원들이 고아원 양로원 등을 자주 찾아 봉사하도록 적극 권하고 있다. 기업조직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청년한솔」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물론 급속한 사세확장에 따른 기존직원과 신규직원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제지등 구업종과 PCS 등 신규업종간의 조화를 꾀해야 하는 내부사정도한몫한다.월례조회나 창사기념일 스포츠행사 등에서 애사심이나 소속감을 고취할 수 있도록 사가나 응원가를 제작하기도 한다. 종래처럼 무미건조한 가사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업종의 특색과 젊은 사원들의 취향을 고려한다. LG패션은 지난해 9월 회사이름을 변경하면서그룹사가와는 별개의 「사랑의 노래」를 제정했다. 월례 조회나 각종 소모임에서도 부를 수 있게끔 대중가요 작곡가 김도향씨에게 의뢰했다. 동양그룹도 지난해 2월 그룹사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사가와 이미지송을 새롭게 제작, 보급했다.▶ 안정적 고용·적정 급여 뒷받침돼야임직원에 대한 직접적인 이미지제고 활동 뿐만 아니라 자녀나 배우자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도 활발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어린이날에 자녀들을 대상으로 그림그리기대회나 백일장을 개최하는 것도이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2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랑의 편지쓰기」행사를 개최했다. 평소 부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자식들에게 하고 싶었던 생각을 글로 적도록 했다. 회사측은 행사개최를통해 종업원 가정의 화목을 가져오고 또한 회사에 대한 인식을 한결 부드럽게 갖길 원했다. 동부그룹도 어린이날에 임직원 자녀들을대상으로 그림그리기 대회를 연례적으로 개최한다. 매년 8백명이참석한다. 참가 학생들에게 필기구를 선물로 주는데 평소 그룹과일체감을 느끼기 힘든 종업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내부고객에 대한 기업들의 이미지 제고방안은 다양하다. 사보제작이나 사내방송국을 통해 경영진과 종업원간의 의사교류를 활성화시키거나 각종 제안제도를 통해 회사경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종업원들의 이사나 법률문제 등을 해결해 주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이같은 활동이 MI나 BI차원에서 의식적으로 계획, 집행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같이 다양한 내부CI활동도 안정적 고용과 적정 수준의 급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에근무하는 K씨는 『신경영이 강조되던 때는 반도체경기가 좋아서인지 사회봉사활동이 권장됐고 비디오도 보고 부서별 미팅도 가지면서 활발하게 총수의 경영철학을 학습했다』며 『지금은 그룹사정도안 좋고 종업원들도 「감원」의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인지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도 줄었고 회사에 대한 종업원들의 충성심도 예전같지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