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품질에 비해 제 값을 못 받는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국산품의 특징은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하고 나서부터 계속 따라붙어온 꼬리표였다. 80년대말까지만 해도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특징은가격경쟁력이란 명분으로 포장돼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 가격경쟁력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변했다. 더 이상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은 국산품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자기 브랜드로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 가격경쟁력은 좀처럼 벗기 힘든 멍에로 탈바꿈했다. 왜 그럴까. 답은 이미지다.한충민 한양대 무역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대부분의 국산 제품들은 품질에 비해 10∼20% 가량 싸게 팔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이 국산품이 품질에 비해 10∼20% 싸니까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외 소비자가 국산품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국산품의 실제 품질 간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뜻한다.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가격경쟁력으로 포장되는게 아니라 「이미지 경쟁력 저하」요인으로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우리나라 수출 소비재 가운데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편(9%)에속하는 VTR(비디오테이프 리코더)를 예로 들어보자. 한교수는 90년대 들어 VTR의 해외시장 가격 추이를 조사, 국산품이 해외시장에서갖는 위상을 점검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산 VTR의 값은 평균3백50달러(약 28만원)였다. 세계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산과 대략 80달러(6만5천원) 정도 차이가 났다. 한교수 의 추산에따르면 국산과 일본산의 품질 차이는 돈으로 환산하면 9달러 정도다. 그렇다면 국산 VTR와 일본산 VTR의 가격차 80달러 중 품질 차이 9달러를 빼고 71달러는 무엇에 대한 가격일까. 두말할 필요도없이 이미지다. 해외 소비자들은 일본 제품의 이미지 가격으로 기꺼이 71달러를 지불하는 것이다.◆ 국산품의 낮은 이미지 기업 책임도 크다한교수에 따르면 순수하게 품질만을 놓고 볼 때 국산 VTR가 해외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정상적인 가격은 3백80달러라고 한다. 국산VTR가 품질대로 값을 받아도 일본산과는 50달러 차이가 난다. 이간극은 품질 개선으로 좁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해외 소비자들이 일본산 제품과 한국산 제품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격차를 줄여야만 줄어드는 간극이다. 「이미지에 대한 가치(Valuefor the image)」를 높이는게 국내 기업의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한국 상품의 이미지 가치가 낮은 이유는 일단은 우리나라 산업 발전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많다. 한국전쟁 후 산업기반이 거의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선진 기술을 배워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에 닿았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수출을 시작하면서 수출하는 것만도 감지덕지지 자가 브랜드를 키울 생각같은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저가로나마 많이 팔리면 좋았다. 싸구려이미지를 염려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이런 상황이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자동차와가전제품을 중심으로 자가 브랜드로 해외시장 공략이 본격화됐고국내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외국 기업과 경쟁하게됐다. 90년대 들어 싸구려 이미지를 탈피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저가의 중국산이 몰려 들면서 국산 제품은 가격경쟁력을 잃어갔고 저가중국산과 일본산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좋은 선진국 제품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해외PR(홍보) 원년의 해」를 외치고 LG그룹이 올해 처음으로 전세계를대상으로 TV-CF를 시작하고 현대그룹이 해외에서 그룹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방안 모색에 나선 것도 기업의 이미지 가치를 높이지 않고서는 해외에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국산품의 낮은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기업의 책임도 크다. OEM에서자가 브랜드로 수출 방식을 바꾸었을 때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깨닫고 투자를 했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일단 싸게라도 많이 팔고 보자는 식의 판촉활동으로는 도저히 싸구려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며 가격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은 국산품의 이미지 가치가 떨어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준다.특히 OEM 방식에 의한 수출 폐해는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70년대 일본의 두 자동차 제조업체가 좋은 예다. 당시 미쓰비시는 미국 크라이슬러에 콜트라는상표를 붙여 OEM 수출을 했는데 그 때문에 미국에서 이 회사의 인지도는 아직도 높지 않은 편이다. 반면 당시에 어려움을 무릅쓰고독자 상표로 승부를 걸었던 혼다사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현재 편안하다고 OEM수출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국내기업이 참조해야할 예다.또 다른 문제점은 국내 기업이 확실한 간판 상품(FlagshipProduct)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흔히 이미지 관리는 전체의 그룹 이미지를 광고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큰오산이다. 첫 시작은 개별 제품에서 시작돼야 한다. 간판 상품에집중적으로 투자, 이미지를 높인 후 이 간판 상품의 이미지를 기업의 다른 개별 제품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브랜드를 집중적으로 관리, 이미지를 높인 현대그룹의 다른 제품들도 현대라는 「우산」 안에서 이미지가 높아지는 혜택을 받는 것이다. 소니가 미국에서 라디오를 히트시킨 후 가전제품 전체로 소니라디오의 좋은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기업 이미지 전체를 높인 것이그 예다.문제는 기업이미지 전체를 높여줄 간판 상품을 어떻게 키우는가다.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이 가전제품 자동차 통신기기 반도체 등 다양한 업종에 손을 대고 있고 여러 품목을 수출하고 있어 간판 상품키우기가 쉽지 않다. 도요타하면 자동차, IBM하면 컴퓨터, 네슬레하면 식품, 나이키하면 스포츠용품 하는 것과 같은 간판 상품이 없는 점이 이미지 가치를 높이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제품 사겠다’ 구매선호도 1% 못미쳐마지막으로 국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사실은 한국이 갖고 있는 국가이미지다. 특정 제품 제조국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제품 이미지에 미치는 원산지 효과로인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덕을 보는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가전업체의 한 임원은 『해외에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개선하지 않은한 한국 제품은 품질이 좋아도 언제나 값싼 제품이라는 평판에서벗어나기 힘들다』라고까지 지적한다.지난해 한국갤럽은 제48차 갤럽국제회의에 참석한 23개국 회원사들이 자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상품의 해외이미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의하면 한국제품은 서유럽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5개 지역에서 중국 제품보다도 낮은 최하위를 기록했고 남아프리카(브라질)에서만 중국을 제치고 5위로 꼴찌를 면했다. 특히 제품 구입시 한국제품을 구입하겠다는 구매선호도는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보고는상품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해외 소비자들의 선언이나 마찬가지다.상품과 서비스는 문화로 포장되고 국가이미지라는 후광효과(HaloEffect)」로 빛을 발한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특정한 문화나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고 이 이미지는 상품과 서비스의 매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예를 들어보자. 남미에 비교적 일찍 진출, 컬러TV시장에서 판매실적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는 자체 브랜드 이미지를 조사한 후 의외의 결과를 접하고 당황했다. 삼성의 컬러TV를 일본제품으로 알고 있는 소비자가 많았던 것이다. 삼성이란 브랜드에는 익숙해졌는데 원산지인 한국과는 연계를 시키지 못한 것이다. 가전제품하면 일본이 유명하니까 삼성을 일본 기업이려니 하고 오해한 것이다.선진국 소비자들에게 통하는 세계 최고의 상표를 몇몇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업이미지와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이미지가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계 20대 상표를보유한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스위스 등 다섯 나라다. 모두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고 기업이나 브랜드이미지에 국가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업이미지도 그렇지만국가이미지는 더욱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또 국가이미지는기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프랑스처럼 체계적으로 해외 홍보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이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기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공조, 한국의 이미지와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함께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협조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마셜 맥루한의 「지구촌」이라는 단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세계화 시대. 세계 선진 기업의 품질의 벽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국내 기업 앞에는 품질의 벽보다 더 높은 「이미지의벽」이 버티고 있다. 몇 년 전에 나왔던 <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한다 designtimesp=29202>는 책 제목은 「이미지가 경쟁력을 지배한다」는 말로 변형돼계속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