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전후해 등장한 행태주의는 그전까지의 학문연구 경향에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사회과학이 그렇다. 자유와 평등, 공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철학적인 탐구가 왜 투표를 하고 무엇이투표에 영향을 주는가를 알고자하는 행동의 분석으로 변했다. 길거리에 침을 뱉는 사람을 보면 교육이 잘못됐다고 했지만 주위환경이깨끗하면 침뱉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철학을쓸모없는 공론으로 만들고 행동분석만을 진정한 과학으로 등장시켰다. 이제는 국민성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정치나 소비자의중을 꿰뚫지 못하는 경영(마케팅)은 「비과학적」인 것이 됐다. 정치와 경영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마케팅조사를 해야 한다.전문적인 조사업체들은 이같은 와중에서 생겨났다. 국내에 전문조사회사가 등장한 것은 30년이 채 못됐다. 그나마20여년은 「있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후반을거치면서 조사시장은 연 20∼30%정도씩의 고성장기를 구가하고 있다. 너도나도 달려들어 30∼40개의 업체들이 활동한다. 조사업체들은 그러나 영세하다. 연혁이 짧은만큼 노하우도 부족하다. 시장은조만간 외국업체에 활짝 열린다. 더 큰 경쟁자는 컨설팅회사들이다. 전체적인 마케팅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조사결과로는 「명함내밀기」도 어렵게 됐다.한국닐슨 한국갤럽 한국리서치는 조사업계의 빅3회사다. 이들만이연50억원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그 밑으로 10억원을 넘기는 회사가10여개사이며 나머지는 「직원들 월급주는 수준」이다. 한국닐슨은 미국의 A.C.닐슨이 1백%출자한 회사로 마케팅조사만을전문으로 한다. 18년동안의 축적된 자료와 소매점조사(RetailAudit)의 명성으로 주요고객이 2∼3년 단위로 계약하는 장기성 고객이 주류를 이룬다.한국갤럽은 일반적으로 정치여론조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실제로는 마케팅조사가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1백% 순수민간자본으로 국제적인 조사프로젝트와 새로운 조사기법의 공동개발을 위해 갤럽국제조사기구(GIRI)에 가입돼 있다. 갤럽의 표준조사방법을 따르고 있으며 조직건강지표 고객만족도 등의 전국옴니버스조사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한국리서치는 상표의 마케팅지표조사등 12종류의 마케팅조사를 수행하고 있으며 서울시 동별구매력조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코리아리서치는 후발업체지만 최근의 고성장에 매우 고무돼 있는분위기다. 미디어리서치는 매출액비중에서 사회여론조사가 마케팅조사보다 많은 업체로, 최근 미국의 양켈로비치사로부터 「리트머스시스템」이란 판매예측프로그램을 도입해 판매하고 있다.조사시장의 성장은 그동안 몇 개 단계를 보여왔다. 70년대에는 마케팅조사자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유신시대는 정치적인 억압과 함께 경제적으로는 각 산업에서 독과점을 허용(?)하던 시대다. 한 두개 업체가 어느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케팅은 별도로 필요한 게 아니다.◆ 조사시장 연 20~30% 고성장 구가일찌감치 70년대에 국내에 진출했던 ASI는 철수를 단행하면서 『유신상황에서는 조사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고 한다.유신종말은 경제면에서 독과점이 완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인해주로 외국계기업만이 주문하던 조사가 국내업체로 서서히 확대됐다. 네슬레 코카콜라 질레트등에서 제일제당 럭키 금성 동서식품이조사회사들의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래봐야 조사시장은 약1억원규모. 현재의 5백분의 1정도였다. 87년 대선에서 한국갤럽은 국내조사업계에서 대단한 역할을 한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것을 근소한 오차로 정확히 맞힌 것이다.이후 정치여론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은 크게 변했다. 「나보다시장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의식에 젖어있던 창업주세대가 가고 경영학에 맛을 본 2세경영인들이 나타나면서 마케팅조사도 규모가 커져갔다.이후 고객만족경영등 마케팅경쟁에 의한 조사의 다양화, 국내외로 투자를 하는 기업들의 증가, 정보화투자로 인한 통계적 업무의 혁신, 길어진 연구원들의 경력등으로 조사업계는 확대된것이다.시장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확대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업체들이 「순풍」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외부의 문제들에 대응해야 한다.조사업체들은 아직까지 전문화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닐슨의 소매점조사나 MSI의 TV시청률조사를 제외하고는 각업체가 대외적으로 내세울 상품이 마땅치않다. 장기계약으로 안정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그때 주어지는 기업의 주문으로는 업체들이영세성을 면할 길이 없다. 전문성이 결여되다보니 업체들은 단순한가격경쟁에 주력하게 된다. 조사용역비는 대개 샘플수로 결정된다.1백명 2백명조사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그러다보니 영업의지속을 위해 입찰가격을 낮추는 악순환의 업계경쟁이 생기는 것이다.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유사업종과의 경쟁이다. 조사시장에서 70∼80%는 마케팅조사이고 그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케팅조사는 전체적인 마케팅전략을 세우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앤더슨 매킨지 등 컨설팅업체와 국내의 회계법인등이 종합적인 마케팅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같은 노하우를 갖지 못한다면 조사업체들은 실사(Field survey)만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우려가 높은 것이다. 시장은 열렸건만 무엇을 무기로 다른 쪽과 경쟁할까. 조사업계는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망중망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