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꾼들에게 「전설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평범한 사람이나 샐러리맨이 생각하는 삶은 포기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거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좋은 아버지나 남편 자식 친구는 못됩니다. 개인적으로도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도 못 마시고 지내 온 불행한 사람입니다. 골프나 축구 농구 등 어떤 구기종목도 할 수 없어요. 오로지 무용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가끔씩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지난한 투쟁의 결과,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투혼」이 제 삶의 전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회의나 좌절에 빠지신 적은 없었습니까.춥고 배고픈 예술가들의 일상이 저에게도 있었지요. 서라벌예대 입학후2, 3년간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난방이 제대로 안된 연습실에서춤을 출 때 회의가 들기도 했지요. 이단계를 극복하고 나서는 춤에 대해회의하거나 좌절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춤을 완성하기 위해 더욱 더자신을 채찍질했지요.한 예를 든다면 춤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달려가곤 했습니다.지금까지 1백30여개국을 다녔죠. 지금도 한해에 한번씩은 오지를 갑니다.최근에는 몽고 쿠바 라오스 티벳 등을 다녀오면서 이들 국민들에게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한국춤이 무엇인가를 놓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좌절과 회의 못지 않게 춤꾼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긍지와 보람도 느끼셨을 텐데요.1992년 「천년의 소리」를 LA와 뉴욕에서 연주할 때였습니다. 이 작품은 광복40주년 기념으로 만든 건데 전국의 대표적인 북을 모아 연주를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미국 등지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박수도많이 받았죠. 하지만 세계인들이 예술에 대해 느끼는 보편성을 깨달을수 있었던 게 더 큰 의의가 있었죠. 지역과 인종을 초월한 인류의 보편적 예술혼을 느꼈던 것은 춤인생에서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순탄하게 달려왔다고 봅니다.▶ 해외공연을 자주 가지면서 느끼는 한국춤의 위상은 어떠합니까. 특히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 등과 비교해서는 어느 수준인가요.대단히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두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매니지먼트가 전혀 돼 있지 않아요. 보고 싶은 사람한테 공연예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가 한국예술로는 세계 정상급인데 이는 세계지성들한테 통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죠. 그러므로 세계지성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우리춤을 효과적으로 매니지먼트할 필요가있어요.또한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발굴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삶의특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유·불·선이나 샤머니즘같은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들 사상을 작품에 반영하려고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이 「메세나협회」 등을 조직해서 각종 문화활동을 지원하고있습니다. 국립무용단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은 좀 있습니까.전혀 없어요. 대기업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최고경영자와개인적 친분을 이용해서 조금씩 얻어내는게 고작입니다. 또한 기업체 최고경영자들도 생산성이나 외형성장 등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인간 삶의 공간을 창출할 필요성을 제대로 못 느낍니다. 미쓰비시 도요타 등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각종 문화단체를 운영하거나 지원하는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단순히 기업경영자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직장인 개개인들도 문제가있어요. 아버지의 의무를 음식점에 가서 불고기를 먹이는 게 전부인양알고 있어요. 입으로 먹는 것만 음식인줄 알죠. 귀나 눈으로 보는 양식은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까. 우리 것을 찾는데 기업이 도와주도록 분위기를조성 할 수는 있을텐데요.문민정부들어 제일 잘못된 정책이 체육부와 문화부를 합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계와 체육계 종사자 누구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 부서를합쳐서 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문화에 대한 현정부의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프랑스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대목이죠. 프랑스 문화청장은 대통령의 재가 없이도 프랑스문화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집니다.저는 세계무대에 당당히 내놓을 작품을 만들 자신은 있습니다. 그러나정부가 이런 작품을 뉴욕이나 동경에서 공연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가부키는 뉴욕무대에서 한달이상 공연하는데 여기에는 일본정부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특히 세계지성들을 일본으로 불러 들여 일본춤이나 예술작품을 보여주죠. 세계예술의 주무대가 뉴욕 동경으로 변한 것도 일본정부의 예술 매니지먼트 결과라고 봅니다. 우리 정부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 TV에서 일본최대 나전칠공예를 한 사람들이 한국의 장인들이라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예술은 창조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를활용하고 쓰는 사람의 것」이라는 끝 멘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창조를 왜 하겠어요. 사람들에게 보고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불행이지만 보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더욱 불행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립무용단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일종의 고행하는 수도승이죠.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도록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이나 정부 사회단체 지성인들에게춤이나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작업이 선행돼야겠죠. 소주한잔에서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좀더 차원을 높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나 매스컴 지성인들이 한국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역으로 이는 그만큼 홍보가 덜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예 맞습니다. 예술은 인간한테 공기같은 겁니다. 공기는 아주 중요하지만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해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마시지 않으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이같은 공기의 중요성을 적극 알리는 작업을 할 작정입니다.▶ 대다수 무용전공자들이 졸업후 진로선택의 폭이 좁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용학원을 내는게 고작입니다. 예술과 현실을 조화할 방안은 없을까요.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겁니다. 예를 들면 노인병 치료에도 춤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노인성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고도로 조직되고 의식적인 춤을 추는 것이죠. 이같이 건강생활 등 다방면에 걸쳐 춤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기업체도 춤강사를 필요로 할 것이고 초중고교에도 전문 춤꾼에 대한 수요가 늘 것으로 봅니다.어느 예술장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순수와 상업춤의 경계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매년 무용전공자가 1천5백여명씩 배출됩니다. 이들 모두가 순수예술을할 순 없어요. 워커힐도 가고 TV에도 출연하고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의강사로도 가야합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춤과 관련된 직업이 50여개나 됩니다. 앞으로는 누구나 자기 성향에 맞는 분야에 전력하면 된다고 봅니다.현재 대학이나 직장에서 사교춤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서양춤 일색입니다.인간의 속성중 하나가 「남의 떡은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문화기반이미약한 나라일수록 외국문화나 춤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고 생각됩니다.일본이나 미국도 마찬가지죠. 이것이 사회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유럽은 예외죠. 이는 지성인이 많아서 그렇다고생각됩니다. 자기 것을 지키면서도 남의 것중 우수한 것은 과감히 받아들이죠. 근대문명을 발견했다는 일종의 문화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장님께서 춤하고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입니까.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됐어요. 전주옆에 위치한 비봉이란 전형적인 한국농촌에서 태어났는데 농악과 굿 제(祭) 등을 삶의일부로서 받아들이면서 자랐죠. 또한 전주서중때는 브라스밴드, 전주농림고에서는 농악 등 감수성이 제일 예민한 때에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을 모두 배울 수 있었습니다. 춤과 노래가 제 몸에서 어우러졌다고 말할 수있겠죠. 그래서 대학은 자연스럽게 무용학과를 가게 된 것입니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술의 한 장르로서 춤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보편적인 인간특성을 나타내는 움직임을 최대공약수로 모아 표현하는 게춤입니다. 그런만큼 시간과 공간 인종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는 11월 하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공연하는 것도 이 작품이 인간의보편적 특성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국립무용단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이신지요.세계 어디를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무용단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지금당장이라도 뉴욕이나 동경 파리 등에서 외국무용단과 경쟁할 실력을 키우는 겁니다. 또한 전세계 어디서나 예술성으로 평가받는 무용단으로 양성하고 싶습니다. 전통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와 본질을 춤으로 담아내는 무용단으로 키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