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미경의 「전향」. 80년대초반 <민들레 홀씨되어∼∼ designtimesp=29243>를 가련하게 부르던 그가 어느날 빠른 리듬의 댄스곡 <이유같지 않은 이유 designtimesp=29244>로 다시 무대에 섰다. 결과는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 이어진 댄스곡 <이브의 경고 designtimesp=29245>도 또다시 인기를 모아 박미경은 가수생활의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박미경의 사례는 우리 가요계가 얼마나 댄스곡에 편중돼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가창력이 뛰어난 실력있는 가수로 인정받았지만 우리 가요계는 노래실력만으로 「소리지르는 가수」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주지 않았다. 노래에 춤을 곁들이든지, 노래는 못 불러도 좋으니 댄스만이라도 현란해야 그나마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됐다. 90년대들어 무섭게몰아닥친 댄스음악의 열풍 때문이다.서태지와 아이들이나 김건모에서 클론까지, 그리고 듀스, 노이즈, 터보,펌프, D.J. Doc, 틴틴 파이브, 룰라, Re.f 등 웬만한 사람은 이름을 외울수도 없을만큼 많은 댄스그룹들이 배출됐다. 요즘 방송가를 휩쓸고 있는가수중 열에 아홉은 댄스그룹이다.◆ <난 알아요 designtimesp=29248> 시작, <잘못된 만남 designtimesp=29249>이 불댕겨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 designtimesp=29252>로 열광적인 인기를 끈 이후 본격적으로댄스음악에 불을 댕겨 춘추전국시대를 열어간 것은 김건모였다. 노래는레게리듬에 댄스를 곁들여 부른 <잘못된 만남 designtimesp=29253>.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designtimesp=29254>가 바통을 이어받고 올 여름에는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designtimesp=29255>가 전국을강타했다. 방송은 물론 자동차나 노래방, 길거리의 「리어카가게」에서도집중적으로 틀어대니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콧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건모는 앨범을 발표하는 족족 2백만∼3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이제인기있는 댄스그룹들의 앨범은 발표전에 도매상으로 사전주문되는 숫자만도 1백만장을 가뿐히 넘기는 실정이다. 그러나 댄스음악 2백만장시대의 한 켠으로 발라드 록 등 다른 장르의 앨범은 20만장을 넘기기 힘든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음악산업의 전반적인 불황속에서 댄스음악만「공룡」과도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댄스음악의 주도시대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교실. 점심식사를 마친 나른한 오후에 선생님은 수업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제안을 했다. 『오늘은 마카레나춤을 배워보겠습니다.』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책상 걸상을 뒤로 옮겼다. 그냥 춤 이름을 들어보기만 했던 선생님이 『누가 시범을 보여줄래』라고 묻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마카레나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은 선생님과 평소 조용한 성격이었던 2∼3명. 설마설마했던 선생님도 이정도까지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고미희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기성사회의 문화를 빨리 수용한다고 어렴풋이느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뭔가 댄스에 대해 활짝 「열린 마음」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물론 초등학생들은 마카레나 뿐만이 아니라 클론, 펌프, 터보 등 잘 나가는 댄스그룹들의 신상명세를 줄줄이 꿰고 있으며 이들 못지않은 춤솜씨를 갖춘 경우도 상당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열린 마음」이다. 중고등학교의 학예회나 수학여행의 풍경도 상당히 변했다. 유명가수의 모창이나 댄스경연대회가 이같은 학내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자리잡은 것은이미 오래전이다. 거부감없이 댄스를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계속 성장, 새로운 수요층을 형성하는 한 댄스음악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사실 댄스음악이 「판을 치는 분위기」는 단순한 현상이상의 구조적인이유들도 지니고 있다.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10대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로 인해 학교·과외수업을 감내해야 하는 요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탈출하고 싶어하는 세대다.늘상 억눌린 상태에서 마음을 활짝 펴고 소리칠 공간을 상실했다. 물론과거에도 입시지옥은 있었지만 당시의 학생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신세대들에게 스트레스를 참으라고 하는 것은 전혀통하지 않는다. 농구장이나 방청석의 오빠부대들은 기본적으로 억눌린상황의 탈피를 희구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10대 스트레스·싼 제작비가 구조적 이유나아가 음반시장의 주요고객은 이미 집안에서도 귀한 아들 귀한 딸인 10대들이다. 중학생에서 고등학교 1학년정도가 음반산업의 돈줄이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해에 1천장정도의 앨범이 발표되고 있는데 이가운데 70∼80%, 많게는 90%가 댄스음악』이라고 지적하고 『이같은 상황에서 음반제작사들도 당장 수지타산이 맞는 댄스음악을 좋아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했다.이미 20대에 들어가면 앨범의 수요층으로는 매력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댄스음악앨범은 제작비용도 적게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댄스앨범을 만들때는 효과음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다른 장르음악의앨범을 제작할 때에 비해 절반수준까지도 제작비를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또 댄스의 경우는 3개월내에 성패가 판가름나지만 발라드의 경우는 몇년씩 걸리게 된다. 그만큼 군소제작사들에는 발라드에 손대는 것이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 한편 요즘 표절시비가 많이 생기는 것은 기존에 발표됐던 효과음들을 섞는데도 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물론 방송사들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치열한 시청률경쟁을 벌이다보니10대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따라붙는 댄스그룹들을 자주 등장시키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댄스음악을 좋아하는 10대의 수요층과 새로운 댄스그룹이 나오기를 고대하는 음반제작사, 여기에 가수들은 방송활동 와중에서 가지치기를 해 나간다. 클론의 강원래는 스스로가 가수로 뜨기 전부터 이미 김건모와 박미경 등의 춤선생으로 관련업계에서 잘 나가는 인물이었다.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역시 과거 김완선에게 댄스를 사사했으며 최근에는 댄스그룹 영턱스를 키워내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주노는 영턱스의 댄스에서 코디네이션을 종합적으로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뒤에서 배경댄스를 해주는 일군의 전문춤꾼들이 생겨나고 유명가수를 쫓아 다니는 팬클럽이 상례화돼 있다. 뛰어난 춤꾼들은 기존의 그룹이 멤버를 재구성할 때 스카우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가요계가 댄스음악일변도를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상황이다.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각 장르의 음악이 고르게 발전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댄스그룹을 선호하게 된 상황에서 의식적인 뮤지션들이 나와주기만을 기대하는 것도 당장은 무리한 주문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