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영이 순탄하게 나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회사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는지요.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회사일이 잘되면 저절로 생기가돌고 사무실에 활력이 넘치면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라고생각합니다. 지난해부터 여사원에서 초급 간부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자발적으로 하면 회사가 더 잘된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자신감을 불어 넣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직원들도 경영 상태가 괜찮은 걸 보고는 『좀 더 하면 대단한 결과가 나오겠다』『과거70년대 대우실업 시절의 활기 찼던 때로 돌아가보자』하는 분위기가 일면서 워크숍도 갖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힘닿는 한 직원들의 그런 열의를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흡수력이 좋아서 목표를 설정해주고 뒷받침만 잘해주면 일 참 잘합니다. 반면에 자아의식도 강해서 기성세대는 반드시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3년전 대우가 세계경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의견도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 와서 세계경영의 중간평가를 한다면어떻습니까.제가 무역부문을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드린다면, 우선 방향 설정은 분명히 옳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이 길로 나가야 회사도 더 잘되고 나라도 활로가 열리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세계경영은 결코 국내를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경영한다면서 국내 공장 설비 뜯어 나간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국내는 국내대로 확장하고 있고 R&D 투자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세계경영의 일차적 의미는 해외에서 기회를 선점하자는 데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선진국이 안 나가 있거나 덜 나가 있는 지역에 먼저 진출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 같은 경우 말레이시아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나가있는 일본기업은 약 1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일본과 경쟁해 봐야 성과가 기대한 것만큼 나오지 않기 때문에베트남이나 미얀마 등에 나가게 된겁니다. 동 유럽은 대우가 물론앞서 나갔고 중국도 대우가 빠르면 빨랐지 결코 늦지는 않습니다.그래서 시장 선점, 업종 선택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우의 방향이맞았다고 보는 겁니다.아세안이 블록화하고 관세도 인하되는 그런 상황이 올 때 베트남의질좋고 값싼 노동력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게 될거고 승산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폴란드나 헝가리도 차가 좀 낡았다든가 해서 그렇지 1천인당 차 보유대수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앞선 나라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형편이 좀 나아지게 되면 현지시장도 밝아지게 될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리고 EU에 가입하면 자연스럽게 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애당초 세계경영이라는 아이디어는 누가 어떻게 해서 내놓은 것입니까.그런 질문에 접할 때마다 저는 대우 사가(社歌)를 보도록 합니다.73년에 제작된 가사인데 그 때 이미 대우의 지향점이 세계라는 게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계각층의 인사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입수한데다 사업가적 기질이워낙 강하다보니 이 둘이 합해져 해외진출의 불가피성에 대한 감을잡은 것입니다. 게다가 동구가 붕괴되면서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어딘가 먼저 가서 시장을 선점해야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거죠.▶ 세계경영 2000년 목표를 현지법인 1천개를 포함한 네트워크, 매출1천7백30억달러(1백40조원)로 설정했더군요. 이 목표가 달성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장애물은 없겠습니까.가능하다고 봅니다. 장애물이 있다면 시장 상황 변화인데요, 그럴경우 보완 지역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시장 다변화를 해나가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실상 어느 한 지역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1천개나 되는 해외 조직을 다 둘 필요없이 국내에서통제해도 되거든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것은 예컨대 한 나라가 좋은 지도자를 못둬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위축되고 그에 따라대우 현지법인의 사업이 차질을 빚는 경우같은게 될겁니다.그리고 요즘은 과거와 같은 정치적 위험은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계경영의 목표를 이뤄낼 수 있겠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대우의 해외 사업지역을 보면 동유럽이라든가 베트남 등 이제 막개방되기 시작한 지역이 많습니다. 만약 이 나라들이 개방이 안됐다면 세계경영은 탄생하지 못했을까요.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쪽이 개방 되든 안되든 어차피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있는 겁니다. 개방과는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아닙니까. 특히 고비용같은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아서라도 해외로 안 나갈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대우가 진출한 세계 1백50여개국 가운데 제조업 진출국은 소수에불과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더 진출해야할 곳이 중남미나 아시아에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도 찾아보자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인적·물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먼저 나간 지역의 기반을 다지는데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자동차만 하더라도 어렵게양성시켜 놓은 인력들 잘게 나눠서 해외에 배치시키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갑자기 사업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탓도 있습니다만, 하여간 빨리 현지인에 의한 현지 경영화를 추진해야합니다. 우리 고급 인력들은 국내 R&D 부문에서 핵심부품, 경쟁력 있는제품을 개발하고 해외 공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은 어디입니까.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정도라고 할까요. 그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환율이라든가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지역이 일부 있습니다만 그런 곳은 매출 수입을 비료나 시멘트, 원면 등의현물로 대체해서 제3국에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연결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저희가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있을 겁니다. 무역으로 성장한 기업이다보니 단순 제조업 주도 기업과는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 중남미, 특히 남미 시장은 타 지역에 비해 아직 세계경영이 활발하지 않은 듯한 인상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그렇지 않아도 『대우는 국내에선 안할 거냐』하는 판에 남미까지간다면 더 큰 지적을 받게될지도 모르겠군요(웃음). 실은 대우가남미를 몰라서 그런건 아닙니다. 현재 남미나 호주같은 지역에서는원자재나 일반 상품 교역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제조업프로젝트도 없지는 않은데, 예를 들면 구리나 알루미늄 제련공장을검토하고 있습니다. 구리는 새 공장을 짓는거고, 알루미늄은 민영화되는 기업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다소 걸린다고 봐야죠.▶ 세계경영은 고가보다는 중저가 시장을 겨냥한 전략입니다. 언제까지 중저가 시장만을 파고들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인데요.일본의 예를 들어볼까요. 일본이 자동차를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64년입니다. 그때의 일본차 평가가 어땠습니까. 한마디로 형편없었습니다. 그 이후 3년간 와신상담 끝에 67년에 다시 나가게 됐고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품질 좋은 차가 된거 아닙니까. 지금 세이코 하면 세계에서 알아주지만 초기에는 싸구려 시계의 대명사였습니다.지금 우리가 상대적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은 중가, 저가시장입니다. 거기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럽이나 일본의 차 시장을파고드는, 말하자면 대체효과를 노려야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갈등의 소지도 줄이고 경쟁도 수월해지는 겁니다. 유럽의 딜러들을 보면 스바루나 다이하츠 등 일본에서도 약간 수준 처지는 차를 팔다가 우리 차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시장에대해서는 훤히 알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언제 그런 고급품질의 차를 만드느냐, 그건 우리와 국민 모두에게 달려있다고 봅니다. 우리도 책임이 있지만 국민들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조업이 고군분투해서 그 단계까지 올라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일부에서는 대우가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로비, 즉 검은거래가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또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옛 공산권 국가의정보 조직력은 한국보다 한수 위입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날겁니다. 그리고 그런 점을 다 떠나서라도, 뭐 그런 방법을 동원해가면서까지 기업 활동을 하겠습니까.▶ 프랑스 톰슨사 인수가 언론과 야당의 반대로 뜻하지 않은 난관에봉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깊이 관여하고 있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결국은 될 것으로봅니다. 저희쪽에서는 세세한 부분의 협상을 마무리 짓는 일과 정부 승인이라는 형식 절차 정도만이 남은 일로 봅니다.톰슨 문제와 관련해 차제에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 국민이 대우를 지원해 줬으면 하는 점입니다. 톰슨은 몇가지 세계적으로 중요한 핵심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를 우리가 갖게된다면 핵심 기술은 바로 우리 것이 되고 그러면 우리가 미디어 분야에서 대일 기술 종속을 탈피할 가능성이 다소라도 있게 됩니다.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TV, VTR를 아무리 많이 판다해도 판매 대수에 비례해서 덕을 보는데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바로 로열티 얘긴데요, 톰슨 인수건을 다만 대우라는 한 회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만 봐주시지 말고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주셨으면 하는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립에는 정치적 독립, 경제적 독립등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기술 독립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생각합니다.▶ 세계경영은 2000년까지의 목표만 제시되어 있는데, 일단 그 시점에서는 그것으로 종결되고 새로운 전략으로 바뀝니까.2000년까지의 목표라는 것은 한 세기가 바뀐다는 상징적 의미에서설정된 겁니다. 5개년 계획을 세우다보니 그렇게 나오게 된 것에지나지 않습니다. 세계경영은 지속적인 개념이지 시간의 선을 그을문제는 아닙니다. 스웨덴의 에릭슨이라는 전화기회사 아시죠. 그회사의 해외 네트워크가 무려 1백20개입니다. 8백만 인구의 시장놓고 얼마나 팔겠느냐, 해서 무려 1백년전부터 글로벌라이제이션을해온 결과가 그렇다는 겁니다. 요즘 최대 목표는 중국이라고 합니다. 에릭슨사처럼 저희는 세계경영을 서바이벌 게임의 개념, 즉 생존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