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은 양파와 비슷하다.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속이안 드러난다. 안에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래야 알 수가 없다』(조명계 소더비 한국 지사장).우리나라 미술시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거래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미술품 수집상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거래가 알음알음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음성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품 유통의 구조적 문제점 운운하는얘기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달 앞으로 다가온 미술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우리 미술시장의 허약한 유통구조는 가장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 화랑을 통한 미술품 판매는 1913년에 시작됐다. 당시유명한 서화가였던 해강 김규진이 세운 고금서화관에서 서화가들의작품이 판매되기 시작한게 시초였다. 광복 이후 본격적인 현대식화랑의 원조는 반도화랑으로 꼽힌다. 반도화랑은 작가가 누구든,작품 내용이 어떻든간에 그림 1점의 가격이 유화크기 10호 기준으로 3만환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나 작품성에 상관없이 그림값이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70년 4월에 생긴 현대화랑부터는달라지기 시작했다. 현대화랑은 작가나 작품성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는 등 본격적인 상업화랑의 시대를 열었다. 76년에는 화랑협회가 설립되면서 한국의 미술시장은 외형적으로나마 제대로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1년에 거래되는 미술품 2천억∼3천억원선76년에 화랑협회가 설립될 정도로 화랑이 늘었던 것은 당시에 미술품 붐이 크게 일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부상한 신흥 중산층이 미술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74, 75년부터 미술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본격적인 미술시장이 76년부터 시작됐다고 할 때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역사는 20년에 불과하다. 2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현재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조명계 지사장은 『1년에 거래되는 미술품 물량은 2천억∼3천억원, 고정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개인이나 미술관, 기업의 숫자는 모두 1천여개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여기에 고미술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미술의 경우 고미술협회에 소속된 상인 8백명과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소위 「나까마」 8백명을 합해서 대략 1천6백명 정도가 골동품상으로 활동하고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고미술 양은대략 5백억∼1천억원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미술의 경우 현대 미술품보다 음성거래가 더 많아 시장 규모 예측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전문가들은 미술시장 규모를 추정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말한다. 인사동의 L씨는 『한 달에 몇 천만원씩 거래하는 화랑도있지만 대부분 세금문제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다』며 『미술품은음성거래가 많아서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고 안다 하더라도 세금 문제가 걸려 있어 얘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기에 우리 미술시장의 모든 문제점이 들어있다. 유통구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그러다 보니 음성거래가 많고 화랑이 기업처럼 공개적으로 활동하기 힘들다보니 좀처럼 영세성을 벗어나기 어렵다.윤원태 한국미술품경매 이사는 미술품 유통의 문제점을 파고들어가다 보면 세금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인기작가의 작품은1호당 가격이 5백만~1천만원 정도다. 그림 하나에 몇천만원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금을 걷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몇천만원 혹은 몇억원짜리 그림을 샀다 하면 저 사람이 무슨 돈으로 샀나 해서 세금매기고 자금출처 조사에 나선다. 그러니 누가 한국에서 공개적으로미술품을 사려 하겠는가.』 특히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문제는 미술계의 큰 골칫거리다.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가 조항은 미술품 붐이 크게 일어났던80년대 말에 생겼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이 계속 유보돼오고 있다. 이현숙 국제화랑 사장은 『내년말에 다시 양도소득세를 부가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조항 자체를 없앨 것인지가 결정난다』며 『내년에 미술품에 양도소득세를 매기기로 결정난다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미술품 경매사 한국미술품경매 설립조명계 이사장은 양도소득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미술품에 대한 세금 부가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다고 말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외국의 경매를 통할 때는 미술품을 구입한 후 부가가치세만 내면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구입한 사람의 신원이 낱낱이 밝혀진다. 미술품을 사는 사람으로서는 신원이 밝혀진후 자금 출처 조사가 들어오거나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지나않을까 우려하게돼 우리나라에서는 공개적으로 미술품 구입을 꺼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 때문에 조명계이사장은 『미술품 시장이 개방된다고는 하지만 법만 개방되는거지 사람들 마음까지 개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세금등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경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한국의 미술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이다.미술품 가격도 문제다. 미술시장에서 그림값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은 예술성, 작가의 지명도, 작품의 희소성, 장식성 등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작품의 크기(호당), 작가의 권위, 명성 등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상업화랑의 업주가 산정하는 경우가 많고 작가스스로가 누구는 얼마만큼 받는데 나라고 그만큼 못받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많다. 또 어느 화랑에서 어떤 작가의작품을 판매하고 있을 때 다른 화랑이 똑같은 작가의 작품을 훨씬싸게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등 이중가격을 형성하는 예도 많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이 개방을 앞두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떠오르자 미술계 스스로 미술품 거래를 양성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올 2월 16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미술품 경매회사가 생겼다.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한국미술품경매가 주인공으로 올들어 4차례 미술품 경매를 했다. 고미술상인 다보성도 저가의 골동품을 판매하는 경매를 2차례 시도, 좋은 반응을얻었다. 경매 이외에 판매방식 다양화도 미술시장 양성화를 위한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나화랑은 케이블TV의 홈쇼핑 채널을 통해 미술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카드회사와 제휴, 통신판매로 판화를판매하는 등 미술품 판매 방식을 다양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경매나 미술품 유통경로 다양화가 광범위하게호응을 얻으려면 세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당하게 세금을 매기되 신원이나 자금 출처를 캐지 않아야 우리 미술시장이 살아난다는 지적이다. 또 세제 문제가 해결돼야 음성거래,과도하게 높은 가격 책정 등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미술품을 예술성을 가진 독특한 상품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게 미술계전체의 소망이다.★ 용어설명 - 소더비와 크리스티 / 호(號)소더비와 크리스티: 세계 미술품 경매회사의 양대 산맥으로 전세계미술품 경매 매출액의 90% 이상을 이 두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경매회사는 소더비로 1744년 영국 런던에서 문을 열었다. 소더비는 처음에는 주로 고서 경매에 치중했다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회화 판화 보석 가구류 등으로 경매 분야를 확대했다. 크리스티는 소더비보다 20년 늦은 1764년에 영국 런던에 설립됐다.그러나 미술품 경매를 먼저 시작한 곳은 크리스티였다. 지난해 매출액은 소더비가 15억달러(1조2천억원) 크리스티가13억달러(1조4백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호(號): 그림의 크기를 말하는 단위. 흔히 1호란 엽서크기만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엽서(10×14.8㎝)보다 약 2배 가량큰 15.8×22.7㎝이다. 호란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도입된 일종의도량형으로 캔버스의 크기를 뜻하는데 나라마다 기준에 다소 차이가 있다. 또 그림이 인물화냐 풍경화냐, 풍경화 중에서도 바다그림이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2호가 1호의 두 배가 아닌 것도물론이다. 10호짜리 그림의 실제크기는 1호의 3배 정도다. 호당 가격을 매기는 것은 보통 20호 미만 작품일 때다. 또 구상화와는 달리 추상화일 때는 호당가격이 매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