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회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어음 회사채시장의 위축으로신용평가회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는데다 내년부터 평가시장이 활짝열리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출자회사의 후광에만 의존할 경우 자리도 잡기전에 시장기반을 송두리째 내줘야할 판이다.따라서 한국신용평가(한신평) 한국기업평가(한기평)한국신용정보(한신정) 등 신용평가 3사는 유가증권평가중심의 업무에서 탈피해 정보사업 카드사업분야를 강화하고 있다.한신평의 경우 12기(95년7월~96년6월)동안 기업어음 회사채 등 유가증권평가이익이 34억원으로 전년의 37억원보다 10% 정도 감소한것으로 나타났다. 한기평 역시 지난 95년 유가증권평가수익이 줄어들었다.반면 신용정보제공 등 정보사업수익은 같은 기간 한신평 44억5천만원(16.2%증가) 한기평 14억원(83.6%증가) 한신정31억5천만원(15.1%증가)으로 집계됐다. 각사마다 카드조회기판매조회수수료 등 카드사업을 통한 수입은 지난해보다 큰폭으로 증가했다.이같은 현상은 잇따른 부도여파로 95년 하반기부터 무보증채 발행시장이 위축되면서 평가업무가 감소한데 따른 것이다. 업계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보증요율이 인하된 점도 무보증채 발행시장을 고갈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증권회사들이 무보채발행의 경우 주간사업무 맡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평가시장은 당분간 회복세를 타기 어려울 것이란게 중론이다.평가시장 위축으로 가장 속을 앓고 있는 기관은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신평이다. 단자 종금 투신 증권 등 제2금융권이 회사채 및 기업어음 등에 대한 신용평가를 위해 설립한만큼 설립이후줄곧 평가분야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한신평 관계자에 따르면 94년7월 복수평가제가 실시된 이후 피평가업체의 85%가 한신평의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는 기업어음이나 회사채가 한신평의 주주인 종금이나 증권사를 통해 거래된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잇단 부도 오히려 보증기관 보증 늘어반면 은행이 주축이 돼 설립된 한신정은 카드조회 기업정보분야의매출비중이 높다. 특히 각 은행의 신용카드불량거래자명단을 받아백화점이나 할부금융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금융시대가 열리면서 영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따라 신용평가의 매출비중은10%대에 불과하다고 회사관계자는 설명했다. 90년부터 시작한NICE-CHECK라는 신용카드조회기사업이 전체매출액의 50%를 차지한다.또 은행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현금자동입출금기(CD-ATM)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신용평가업체로시작했지만 지금은 정보서비스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한신정이 지난 91년 전국종합신용평가에서 상호를 바꾼 것도 이런연유에서다.전체매출중 신용평가업무비중이 절반정도인 기관은 한국산업은행이출자해 설립한 한국기업평가이다. 규모면에서는 열세지만 오랫동안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컨설팅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또 정보제공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한기평 최강수 기획팀장은 평가업무에주력해 수익을 올리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최근 공중망을 통해정보를 제공하는 등 정보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물론 한신평과 한신정도 데이터베이스사업을 하고 있다. 한신평은지난 88년 종합경영정보 KIS-LINE을 개통했다. 이에맞서 한신정은NICE-TIPS라는 종합금융정보 온라인서비스를 시작했다. 정보서비스사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처음에는 전산화와 입력작업 등에 투자되는 비용부담이 컸으나 90년대들어 이 분야 사업이 자리를 잡기시작했다.그러나 신용평가기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명예를 되찾아 본업을 활성화시키느냐하는 것이다. 3개기관 모두 우수인력을 평가부에 배치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기법 등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나 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신탁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를 살 때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결과를 믿지않고 보증기관의 보증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올들어 9월말까지 국내 3개 신용평가기관의 무보증회사채 평가건수는 1백6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백97건)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못했다. 무담보기업 어음평가건수도 감소했다. 이는 최근 2~3년동안 신용평가회사들의 평가등급이 좋았던 덕산 우성 건영 등 대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평가기관의 평가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확산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한 기업등급평가 내리는 풍토 마련돼야이에따라 올들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유공 대우 쌍용양회 등 신용도가 우수한 기업들이 오히려 신용도가 떨어지는 보증보험사에서보증을 받아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신평김선대부장은 보증수수료가 크게 인하되면서 평가시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금융업계의 관계자는 「담보제일주의」의 금융관행도 신용평가시장의 성숙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자금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대출하면서 신용보다는 담보를요구하기 일쑤다. 돈이 필요한 기업들도 은행의 구미에 맞게 담보를 챙기는데 열중한다. 높은 신용도를 받는다고해도 딱히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굳이 수수료를들여가며 쓸모없는 신용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결국 신용평가의 신뢰성이 떨어지니 금융기관도 이를 활용하려 하지않고 이같은 현상이 평가기법 및 노하우발전을 가로막는 등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불신때문에증권사 등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별도의 기준으로 기업심사업무를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불필요한 부담을 초래하고 결국 자본시장의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거래가 정착돼 있는 미국 등 금융선진국과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는 대목이다.신용평가를 이용하는 기업들도 문제다. 한정된 기업평가시장에서3개의 평가기관이 벌이는 경쟁을 이용, 자신들이 받고자 하는 등급을 제시해오는 기업이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따라서 최고경영자의 능력평가나 실사조사는 커녕 부실회계가 뻔히엿보이는 외부감사보고서나 검토한후 등급판정을 내리는 경우도 적지않다. 일부에서 신용평가기관들이 안정적인 경영기반하에 공정하고 정확한 기업등급평가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