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오토페니 공항에 내리면 항공기의 도착과출발을 알리는 안내 TV의 장식장 밑부분에 「DAEWOO」라고 쓴 글씨가 확 눈길을 끈다. TV 자체에 부착된 작은 로고 표시가 아니라 권투 장갑 6개를 나란히 배열한 정도의 크기여서 굳이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 한 반드시 승객들의 시야에 들어 오게끔 되어 있다.아직 냉전시절의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입국 심사는 다소 까다로워 보였다. 그러나 『대우와 관련된 비즈니스로 왔다』고 입국목적을 밝히자 동양인 얼굴에서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여타입국자들과 달리 친절한 태도로 맞는다. 심지어 입국카드를 미처작성하지 못했다고 하니 심사원 자신이 여권을 보고 직접 쓰기 시작했다. 심사원이 입국카드를 써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대우 GOOD!』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우즈베크공화국(UZBEKISTAN) 국민들은 자기나라를「대우이스탄(DAEWOOIS-TAN)」이라고 한다. 「우즈베크 공화국이 대우자동차에극진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제목의 파이낸셜 타임즈지 최근호기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즈베크 국민들은 대우은행에서 빌려준돈으로 대우차를 구입한 뒤 전자상품점에 몰고가 대우 TV와 VTR를사고서는 대우가 이 나라에 깔아 놓은 통신시스템을 통해 집에 전화 연락한다』는 것이다.세계경영의 유럽본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폴란드에서도 대우는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최고의 파트너로 인식되면서 폴란드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아직 대우만큼 각종 「특혜」를 받는 외국기업은 없는 것으로 현지 관리들은 흘린다.루마니아 같은 경우는 순전히 대우만을 위한 목적으로 일부 법규를개정, 「대우법」을 탄생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김우중 회장이나현지 경영진은 이따금 국가정책에 대해 「코치」도 한다는 전문이다. 우즈베크나 루마니아쯤 되면 『가히 한나라를 경영하는 것이나다름없다』라는 대우 현지주재원들의 평가가 현실감있게 다가온다.그런 점에서 루마니아에 내려 처음 마주하게 되는 TV 장식장의 큰글씨 「DAEWOO」는 출국할 때 다시 생각해보니 마치 「WELCOME TODAEWOONIA」였던 것처럼 느껴졌다.비단 개발도상국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대우의 이름 두자는 적지않은 「효력」을 발휘한다. 대우전자는 알퐁스 도테의 소설 <마지막 수업 designtimesp=4378>의 무대인 프랑스 북부 알사스 지방에서 『지역 경제를 회생시켰다』며 귀빈 대접이다. 폐광으로 침체된 지역에 들어가 고용을 크게 늘렸을 뿐 아니라 아예 종합 가전단지를 세울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대우의 움직임은 2개지역 신문의 주된 취재거리다. 2년전 영국인은 불과 1%만이 대우라는 이름을 들은 바 있다고 했고그나마도 무슨 종교단체로 알고 있다는 웃지못할 응답도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94%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만드는 한국 기업」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다. 대우가 「세계경영」을 구호로 내세운지 3년여. 지금 세계 곳곳에서 세계경영의 성과물을 발견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공항의카트(손수레)라든가 간선도로변의 무미건조한 이미지 광고판, 번쩍이는 네온사인 광고 등과 마주치는 차원이 아니다. 정부 관리와 일반 국민이 대우를 대하는 시각과 태도에서 세계경영의 효과는 분명히 느껴진다. 말하자면 그 사회가 대우의 존재를 알고 있고 전반적정서가 이 기업을 인정해주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비단 체감상으로만 그런게 아니다.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경영에 따른 결과물, 즉 경영 실적일지도 모른다.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경영은 구체적으로 잡히는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점에 관해서도 세계경영의 중간고사 성적은 일단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수출증대로 매출액 급증, 상반기 ‘독야청청’지난 9월 중순 대우 그룹 회장 비서실은 느닷없이 「큰 나라를 만드는 세계경영」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보도진에 배포했다. 지난93년 3월부터 시작해 오는 2000년까지를 세계경영 1차 사업연도로잡은 대우측이 절반에 이른 시점을 맞아 중간평가 보고서를 내놓은것이었다. 자료에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중간보고서를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세계경영에 대한 대우측의 자신감을 읽게 하는 대목이었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의 올 상반기는 한마디로 쾌조였다고 할수 있다. 다른 기업들이 불황을 맞아 매출목표 수정이다, 감량경영이다 해서 전략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유독 대우만은 수출목표상향조정, 수출 증대에 힘입은 매출액 급증 등의 「독야청청」한실적을 내놨다.대우의 세계경영은 일단 자동차와 전자를 주연으로 한다. 그러나보다 세분화시키면 (주)대우와 중공업, 자동차, 전자 등 4개업체로나눠 볼 수 있다. 이 4개 계열사의 올 상반기 매출(특히 수출) 성적표를 보자.먼저 대우중공업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5.5% 증가로 가장 큰 폭의 신장세를 보였다. 이어 자동차가 41.1%, (주)대우 무역부문이각각 39.2% 성장했다.특히 (주)대우의 경우 수출액 68억8천1백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4.5%의 놀라운 신장률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연초 올 1백26억달러 수출 목표는 1백31억달러로 5억달러 상향조정됐다. 국내종합상사 가운데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대우중공업 종합기계부문도 당초 올 수출 목표를 7억8천5백만달러로 설정했다가 1억달러 더 올려잡았다.대우측은 이같이 호조를 보이는 이유가 단연 세계경영 및 그에 따른 연관 효과에 있다고 밝힌다. 대우가 상대적으로 불황을 덜타고해외에서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게되는 것은 분명 세계경영의 결실이 서서히 나타나게 된 효과라는 분석이다.예컨대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공장 등 해외사업장 건설이 잦아지면서 각종 설비 수출이 늘어났으며 설비가 나가게되자 당연히 건설중장비와 공작기계 운송장비 등도 덩달아 선적됐다. 또 대우중공업의경우 국민차 부문의 티코 완제품도 상승세를 탔고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공장 준공에 힘입어 CKD(부품 완전 분해), SKD(부품 일부 분해) 수출도 늘어나게됐다. 그 결과 상반기 수출실적만 전년 상반기대비 93% 증가라는 기록적 신장률을 보였다.지역별로 살펴 보면 세계경영의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선 동유럽 및 구 소련 지역이 10만9천4백33대로 가장 많은데 이는 이 지역에 대우가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작년초부터 진출한 서유럽 지역이 그 다음으로 6만8천8백56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3만5천7백96대순이었다.특히 폴란드와 루마니아, 인도 등 8개국 해외 현지공장의 생산물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KD 수출이 급증(6만4천3백61대)했다. 대우는 한국의 자동차 수출 상승세를 주도했으며 특히 KD 수출도 국내업계 최대라고 밝히고 있다.자동차와 함께 세계경영의 양대 핵심 축인 전자도 자동차 못지 않은 호조다. 전체적으로는 14.7%로서 그룹 타사에 비해 상대적「저성장」을 나타냈지만 수출 부문에 있어서는 94년의 26%, 95년의37%에 이어 올들어서는 35%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전산업 전체가 해당 연도에 각각 13%, 7%, 14% 증가에 그쳤거나 그칠전망인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더구나 대우는 5대 가전제품(TV, VCR,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만 생산하고 있는데다 전세계적으로 가전제품의 수요 증가율이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자 부문의 세계경영은 실로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우전자측은 현재 세계가전업체 가운데 연 20∼30%씩 성장하고 있는 회사는 유일무이 대우뿐이라고 밝히고 있다.세계경영을 추진하면서 해외 산업기지도 대폭 늘었다. 96년 9월 현재 대우는 2백44개 법인에 1백4개 지사, 10개 연구소, 45개 건설현장 등 총 4백3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성했으며 전체 인력은 10만9백70명에 이른다. 특히 현지법인의 경우 92년말에 58개에 불과했으니 3년여만에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세계경영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사항은 중소기업 협력업체의동반 해외진출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대우 자동차의 경우 머플러를 비롯한 내장재와 램프 스피커 자동차용 시트 등 부품 공급업체로서 동유럽과 우즈베키스탄 인도 등 6개국에 동반진출한 중소기업은 67개사(계약체결 업체 포함)에 이르고 있다. 대우는 오는98년까지 1백개 업체 현지 진출을 완료할 계획이다.◆ 98년까지 1백개 협력업체 현지진출 계획(주)대우는 한국타포린(주)와 베트남에 공동진출, 6개월만에 가동규모를 2배로 늘린 것을 비롯해 미얀마 중국 동유럽 우즈베키스탄인도 등지에서 중소기업의 입지를 넓혀주고 있으며 파이프 의약품날염 보온병의 합작 공장 설립도 추진중이다.이같은 동반 진출은 중소기업의 빈약한 해외정보력과 취약한 자본력을 보완해주는데다 수출 대행 및 판로 개척도 지원해줌으로써 신시장개척 수출증대 등 다목적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평이다.대우측은 이러한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대해 「새로운 차원」이라고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확실히 달라졌습니다』는 대우 자동차의 광고 문안처럼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으로 인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자동차나전자, 종합상사 등 주력분야에서 만년 2위권 신세를 벗어나지 못해(정확히는 3위) 회사에서도 「그렇고 그런」 분위기였지만 최근에와서는 활력과 생동감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우의 경영행태하면 무조건 고개를 젓던 시각들도 요즘에 와서는 어느 정도 수긍을하거나 최소한 혹평은 유보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그렇다면 세계경영은 성공작인가. 아직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세계경영이 본격 시작된 것은 사실 1년도 채 안된다. 해외공장이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도 대부분 올 들어서였다. 「무모한 확장」이라든지 「과다한 해외 금융차입에 따른 불안」 등 아직 외부의비판과 우려에 대해 대우측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으나아직껏 완벽히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 몇년이 문제라면서좀더 지켜봐 달라고만 말할 뿐이다.그럼에도 대우의 세계경영은 충분히 연구 검토의 가치가 있다. 올상반기 대부분의 기업들이 불황을 겪었던 터여서 대우가 유독 돋보였다는 측면은 있지만 그렇다고해도 어차피 주머니 속의 송곳은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현 시점에서 이 점은 확실한 것같다. 해외 기업 인수과정이나 그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대우가 지향하는 방향 자체는 분명히 올바르고 그 시기는 적절했다는 점이다. 대우의 세계경영을 보는 외부의 시각은 상당 부분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