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화제가 됐던 경영용어에 「이카루스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이카루스는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그는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마침내 그 소망을 이룬다. 그러나 이카루스는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너무 높이 날다가 태양열에날개가 녹아버리고 결국 에게해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 얘기에서 따온 이카루스 패러독스는 기업이 한때의 성공요인에 너무 집착해 결과적으로 실패를 자초할 위험성을 가리킨다.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미국의 델타항공이다. 이 회사는 경영합리화차원에서 대대적인 감원을 단행했다. 덕분에 인건비를 줄일 수는있었지만 지나치게 인력을 줄이다보니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델타항공은 고객을 잃고 경영부실이 가속화되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는」 대우의 세계경영도 이같은 이카루스패러독스에 빠질 위험은 없는 것일까. 이에대해 많은 사람들은 경영자원, 즉 「사람과 돈」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해외사업을 확장하다 보면 인적자원과 자금운용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우선 돈의 문제를 보자. 얼마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대우그룹이 지난 95년이후 발표한 해외 프로젝트의 규모만도 무려1백80억달러에 달한다며 그 실현성에 대해 회의적인 기사를 냈다.물론 대우측은 이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언론에 발표되는 투자자금은 한꺼번에 투자되는 것도 아니고 대우 혼자서 부담하는 것도 아니므로 실제로는 자금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긍정적 시각 우세하지만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대우의 자금동향에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대우가 국내 단자사로부터 빌려쓰고 있는 여신이 무려 4조~5조원에 달하고 있다며이런 상황에서 해외, 그것도 시장전망이 불투명한 곳에 그처럼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고 말한다.특히 대우의 해외사업장들은 국내본사와 지급보증 등의 형태로 연결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 곳에서의 자금난이 연쇄적인 자금난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이같은 우려의 시각은 비단 국내 금융기관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보인다. 가령 지난해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는 해외금융기관들이대우의 신용상태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대우를 긴장시킨 적도 있다.자금과 함께 제기되는 인적자원의 문제는 달리 표현하면 관리능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곳 저곳에 벌여놓은 사업장들이 제대로굴러가려면 그만큼 능력있는 관리자급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대우의 인력구조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우는 국내 기업중 「세계화」된 인력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인정받고 있기는 하다.그러나 대우의 해외사업장이 늘어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제아무리 대우라도 인력운용이 수월할 수만은 없다. 대우의 해외현지법인은 지난 92년 58개이던 것이 지금은 2백44개로 늘어났고2000년에는 6백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법인장급 관리인력수요가 그만큼 급증한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해외투자의 규모가커짐에 따라 인력수요 급증에 따른 부담은 더욱 커진다. 과거처럼해외사업장의 규모가 적다면 과장급이나 부장급으로 해결되겠지만대규모 사업장은 적어도 임원급이 관리책임자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이같은 문제점은 대우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대우그룹 인사팀장인 권오택상무는 현 추세대로라면 해외주재 임원의 수요가 앞으로5년이내에 3배로 불어나야 할 것이라며 관리자급 인력양성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대우의 고충을 털어놓았다.자금이나 인력문제와 함께 대우의 세계경영에 던져지는 또 하나의비판적 시각은 「내실」의 문제다. 대우는 전통적으로 손익개념에약하고 관리가 엉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한 경영학자가 분류한 기업인의 유형을 참고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기업인의 유형은 제국형과 노렌(暖簾:일본의 상점에서 문앞에 늘어뜨리는 천)형으로 구분되는데 노렌형 경영인은 내실을 중시하고 제국형 경영인은 자기가 경영하는 기업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아마도 국내 기업인 중에서는 김우중회장이 대표적인 제국형 경영인일 것이고 때문에 세계경영 역시 그런 제국형 경영의 취약점인내실의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는 게 비판론자들의 시각이다. 비록대우자동차가 요즘 동구권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들 차량은 대부분 현지공장에서 생산된게 아니고 초기운영자금 조달을 명분으로 「시한부 무관세 혜택」을 받아 들여온 차들이다. 따라서무관세 혜택이 끝나고 나서도 대우차가 계속 잘 팔릴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내실의 문제는 자금문제와도 연관된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남의돈을 빌려 투자를 하더라도 재투자하려면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익이 나지않으면 재투자가 안되고 결국 자금난에 쫓기게된다. 더구나 금융기관들은 돈을 빌려간 기업이 이익을 못낼 경우채권회수를 서두를 것이므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만약 대우의해외사업장들이 단기간에 흑자기조에 오르지 못하면 외국은행들이빌려준 돈을 회수하거나 추가여신을 거절할 것이고 그 경우 국내에서의 수익기반이 취약한 대우로서는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는것이다. 내실의 문제와 관련, 앞으로 대우는 다른 선진국기업들의「파일럿 피시전략」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파일럿피시전략이란 위험성이 있는 분야에는 다른 기업이 먼저 뛰어들 때까지 기다린 후 그 성과를 보아가며 뒤쫓아가 실리를 챙기는 전략이다.특히 일본기업들이 경계의 대상이다. 지금까지는 동구권에서 대우의 독주를 용인해온 일본기업들이 반격에 나설 경우 대우로서는 경쟁의 부담이 생겨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실제로 최근 논란을 빚었던 대우전자의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와 관련해서는 일본기업들이 대우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부추겼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격적 마케팅이 세계경영의 최선책이런 문제들과 함께 해외에서의 노무관리도 대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대우는 수년전 파키스탄 건설현장에서 노사분규를 일으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또 지난 2월 루마니아에서도 로대자동차공장의 근로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한국에 연수를 다녀온 근로자들이 한국공장에서는 월급을 훨씬 많이 주더라며 다른 근로자들을 부추겨 생긴 사태였다. 로대의 파업사태는 현지 정부에 중재를 요청, 가까스로 수습됐지만 제2, 제3의 로대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노무관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식 기업경영이 현지 근로자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인들과는 가치관과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일례로 루마니아 공장에서는 최근 현지인 임원 한명이 퇴사를 하는바람에 그 밑의 부장급을 승진시키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마다했다. 『지금 하는 일이 좋은데 왜 나더러 더 어려운 일을 맡으라고하느냐』는 것이었다.한편 대우의 세계경영에 대해서는 이처럼 비판적 시각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 시각이 우세한게 사실이다. 세계경영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임원이 내리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긍정론의 대표적인 사례다. 동구권의 붕괴는 자유무역시장의 인구를 22억명에서 55억명으로 늘렸다. 이들 새로 편입된 인구는 고가품보다는 중저가품 소비자이고 아마도 한국제품이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이들에게 가장 적당한 제품일 것이다. 대우가 동구시장에 파고든 것은 핵심역량을 제대로 파악한 뛰어난 전략이다.그런가하면 색다른 시각에서 대우의 세계경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삼성 대우의 성장배경을 비교한다면 현대는수주, 삼성은 생산, 대우는 마케팅으로 커온 기업이다. 대우의 세계경영도 결국은 공격적인 마케팅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수주나생산으로 커온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경영이 위험해 보일 수있지만 대우로서는 당연한 선택인 셈이라는 것이다.이같은 시각들을 종합해 볼때 대우의 세계경영은 아직 실험단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대우로서는 최선의 경영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자금운용 등 몇가지 위험성만 극복한다면세계경영은 대우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벤치마킹할만한 경영기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