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H.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이렇게 설파했다. 현재란 과거의 연속선상에 있고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며 과거란 현재와 미래의 현안을 해결하는 지침서라고 주장했다. E.H.카의 어렵고 난삽한 문장을 독파하면 얻게되는 결론이다.「명예퇴직」과 「2백억달러 무역적자」란 두단어로 상징되는 우리경제의 난국을 풀어나가는데도 E.H.카의 교훈은 유효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불황-회복-호황-후퇴를 되풀이 하는 속성을 갖고 있고국내경제도 이같은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지나온불황의 원인과 개별기업이나 업계의 대처방안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90년대 화두는 경쟁력강화80년대는 70년대 중화학공업 투자의 부작용을 치유하는데서 출발했다. 연간 20%가 넘는 인플레를 진정시켜야 하고 불황에 빠진 경기를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80년대중반에는 공업발전법 제정,조세감면규제법 개정으로 자동차, 중화학공업 등의 경쟁력을 뒷받침했다. 반면 직물 염색 등 경쟁력을 상실한 업종에 대해서는 합리화업체지정 등으로 산업구조개편을 유도했다. 90년대의 화두는 경쟁력강화였다. 다양한 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이 여러 각도로 논의됐다.80년대 들어 국내경제는 96년까지 크게 4번의 경기순환주기를 맞았다. 80년 9월에서 85년 9월까지의 1순환기와 85년 9월에서 89년7월까지의 2순환기, 89년 7월에서 93년 1월까지의 3순환기 그리고93년 1월에서 현재까지의 4순환기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순환기는각각 수축국면과 팽창국면을 되풀이 하며 진행됐다. 경기팽창을 주도하는 업종과 수축국면에서 타격을 입는 업종은 시기별로 각양각색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응양식도 천차만별이다.제1순환기는 80년 9월부터 41개월간 지속된 확장기와 84년 3월부터85년 9월까지 19개월동안 진행된 수축기로 이뤄진다. 80년하반기의경기팽창은 제2차 오일쇼크와 고인플레를 극복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경기는 강력한 인플레 억제책과 80년 하반기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의 회복으로 경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82년에들어서면 중화학제품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처음으로경공업제품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그러나 84년부터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선진국의 수입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수출증가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컬러TV와 철강제품의수출이 대폭 감소했다. 또한 70년대 중동건설붐을 일으켰던 해외건설업체들은 수주물량의 격감과 중동국가의 건설자국화방침에 따라급격히 쇠퇴했다. 건전한 해외건설업체에 한해서 현지금융비용을확대해 준다는 정부의 「해외건설진흥대책」이 나온 것도 이때다.이 당시 국내기업들은 불황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이는 세계시장에서 국내업체가 처한 위상과 무관치않다. 선진국이 넘보지 않는 중저가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히고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살아난다면 국내불경기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는 심리가 팽배해 있었다. 기껏해야 접대비나 경상비 등을 줄이는 선에서 머물렀다.19개월간 진행된 불경기는 2순환기인 85년 9월부터 점차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88년 1월까지 호황국면으로 이어졌다. 소위 「3고현상」으로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당시 자동차철강 화학 등이 경기를 주도했다. 이들 제품은 수요초과현상으로수출단가도 양호한 편이었다. 외채도 대폭 줄어들었다.그러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수출이 주춤거리게 된다. 게다가 국내기업들은 88년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직근로자의 임금상승과 원화절상에 따른 국제경쟁력 약화로 점차 활력을 잃었다.이때를 기점으로 국내산업구조는 노동집약적업종에서 기술과 자본위주의 산업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저가격」이 더 이상 메이드인 코리아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수 없었다. 기업들은 갑작스럽게높아진 임금을 상쇄하기 위해 기계화 자동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89년의 공장자동화설비 수입액수가 전년대비 17.7%나 대폭 증가한 것은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다.또한 미국 일본 유럽등 선진국 위주에서 중국이나 동남아 등으로수출지역을 다변화하기 시작한다. 수출 다변화와 동시에 이들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도 늘어났다. 중진국 수준에 필요한 기술과 상품으로 현지생산기반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보다 개별기업차원 대책 세워야3차순환기는 89년 7월부터 93년 1월까지다. 세계경제의 침체와 걸프전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폭등, 선진국의 수입규제강화로수출이 위축된다. 섬유와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 개발국에 시장을 빼앗겼다. 섬유업체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독자브랜드를 만들어 고급시장을 파고들었다. 대신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화학제품 등이 수출주력군으로 자리잡았다.80년 이후 불어닥친 불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몇가지 공통점을발견할 수 있다. 기업들이 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기가 나빠지고 달러화에 대한 일본엔화가 평가절하되는 등 수출조건이 악화될 때다. 내수시장의 불황보다는 수출시장의 경기침체에 영향을 더 받는다는 얘기다. 외생적 변수에영향을 받기 쉬운 국내산업구조의 취약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16메가 D램이 96년초 50달러에서 10달러로 급락함에 따라 국내반도체산업 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가 불황을 탄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공작기계나 전기전자산업의 핵심부품 등 국내자본재 산업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이용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불황대책으로 각광받는 시나리오 경영 등 장기적인 불황대책이 80년대 기업에는 거의없었다』며 『개별기업차원에서 불황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환율이나 유가 등 외생적 변수에 의해 불황을 극복하려는 심리가 만연해 있었다』고 설명했다.또한 기업들의 불황탈출에는 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책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주택2백만호 건설과 각종 SOC사업, 산업합리화자금지원 등으로 기업들의 불황탈출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역할은 점차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대우경제연구소 이철순 선임연구원은 『국내기업들은 정부가 지원하기에는 너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OECD가입으로 내놓고 지원할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R&D투자나 한계업체정리 등 기업들의 뼈를 깎는듯한 변신노력없이는 최근 불황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과감한 해외투자와 R&D투자 그리고 자본집약적 산업으로변신노력을 기울여야 불황을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