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남산업이 불황기임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국내에서는 반도체가 불황이라지만 반도체 산업을 전 세계적인 구도로 보면 결코 불황이 아닙니다. 오는 2005년까지 연 평균 20%씩은 성장하는 걸로 되어있습니다. 이건 제 주장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성장시장임에는 틀림없다는 얘기죠. 설사 지금이 불황기라 하더라도 앞으로의 추세가 그렇다면 미리 투자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생산 용량을 늘려놓아야 호황기가 왔을 때 적기에 그 과실을 거둘 수 있는 겁니다. 아남산업이 과감히 투자에 나서는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또 다 같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남이 하는 분야와여타 대기업들이 하는 분야는 다릅니다. 이 점이 사업을 확장하게된 또 다른 요인입니다. 아남은 반도체의 뒷 부분 공정, 즉 타 회사에서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웨이퍼를 만들고 아남은 이렇게 가공된 웨이퍼를 넘겨받아 조립, 테스트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품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냐 하면 아남은 가격변동에 민감하지 않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기업들로부터물량을 주문받아 납품만하면 됩니다. 반도체 산업은 성장산업이므로 아남에 오는 물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아남은 현재 전세계 반도체 조립 물량 가운데 38% 정도를 소화해내는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1위입니다. 결국 종합해볼때 비즈니스의 성격에 따라서는 불황기라도 강공을 해야하고 또 할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아남산업은 지난해 9월에 미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계약의 의미와 내용 등을 간단히 소개해주시죠.대개는 언론에 보도됐으니까 상세하게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거고….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남이 TI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웨이퍼 일관가공(FAB)까지 포함한 반도체 제조 전공정을 갖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국내 업체들이 상당수준에 올라와 있는D램 등 메모리 분야가 아니라 로직(논리소자) 계열의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메모리분야에 편중되어있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한다는 의미도 갖고있습니다. 특히 아남이 TI로부터 이전받기로 한 기술은 TI가 갖고있는 최첨단 기술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반도체는 집적도가 생명입니다. 즉 단위 면적당 얼마나 많은 정보를담느냐가 핵심이고 이는 곧 회로선폭을 얼마나 정밀하게 할 수 있느냐의 얘기로 귀착됩니다. 국내에서는 0.5미크론 회로선폭을 이용한 시제품이 나오고 있는 수준입니다만 TI는 현재 0.35 미크론급의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남이 받기로 한 기술은 0.35 미크론급이고 곧 이어 0.25, 0.18, 0.13미크론까지 상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이 개발되는 것과 동시에 아남에도 이전하기로 했습니다.이번에 이전받게 되는 기술은 인텔사의 펜티엄 프로(686 칩)도 제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아남이 핵심 MPU도만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까.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의 설계능력은 없습니다. 설계는 TI가 하고 아남은 제조 공정 기술만 이전 받아 생산만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조기술이 세계 최첨단이므로설계도면만 있으면 펜티엄 프로 칩도 만들수는 있죠. 아남이 주로만들게 되는 것은 DSP(Digital Signal Processor)입니다. DSP는TI가 세계 시장의 20∼30%를 장악하고 있는데 컴퓨터에만 사용되는MPU 보다 훨씬 적용범위가 넓어 전망은 더 밝은 편입니다.▶ 기술 이전에 따른 로열티 액수는 얼마나 되는지요.아남이 생산하는 반도체의 40∼70%를 TI가 구매하도록 계약이 되어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로열티가 없고 나머지 자체 판매분에 대해서만 싼 값의 기술료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회사도 많이 있었을텐데 왜 TI가 유독 아남에 그렇게 좋은 조건을 줘가면서까지 기술제휴를 했을까요.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순수히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면 TI는 메모리에서 비메모리로 사업을 다각화하려했고 아남은 반도체 생산 일관 공정을 갖추려고하던 차여서 서로의 필요성이 일치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TI는 현재 DSP 시장 점유율을 대폭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능력있는 제조업자가 있어야합니다. 물론 TI자신이 직접 제조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자면 라인 설치 등너무 많은 돈이 소요됩니다. 결국 설계는 TI가 한다고 해도 누군가제조부분을 떠 맡을 협력업체가 있어야 했던 거죠. 특히 반도체 제조는 후공정 기술이 매우 중요한데 이 분야에 관한 한 아남은 사실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I가 우리와 손잡은 것은 그러한 기술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즈니스 외적인 측면에서도 반도체 생산 초기부터 아남이 TI와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점도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아남이 반도체 제조 전(前)공정에까지 진출한다면 다른 반도체 회사처럼 경기 변동에 취약하게되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전 공정도 OEM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TI측에서사전에 구매예정 수량을 통보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안 가져 가는 부분에 대해서만 아남이 독자적으로 팔아야 하는데 그점에대해서는 낙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들어보면 아남은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에주력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만.OEM은 물론 위험도 있습니다만 장점도 적지 않습니다. 반도체 시장을 1백으로 볼 때 15%는 후공정 매출이고 이 가운데 또 15%는OEM입니다. 2000년대 반도체 전체 시장을 3천억달러 정도라고 추산하면 70억달러 가까이가 OEM으로 생산된다는 얘기입니다. 이건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닙니다. 또 한가지 앞으로 OEM의 비중은 점점 더커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반도체는 워낙 라이프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설계업체가 일일이 그 추세에 맞춰 생산 라인을증설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전문적인 제조업체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의미죠.OEM은 그밖에도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부분에 들어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익률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만큼 비용도 줄고 또 개발 실패에 따른 위험부담도 피해가는 효과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비메모리 사업을 위해 2002년까지 총 3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반도체가 장치산업이고 투자비용이 통상 천문학적액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적은 금액 아닙니까.그런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8인치짜리 웨이퍼 월 2만5천장 생산하는 라인 하나 설치하는데만도 10억∼12억달러 가량 소요되고 0.25미크론은 더 뛰어 15억∼18억달러가 듭니다. 30억달러라면 웨이퍼일관 가공 공장 2개밖에 못 짓는다는 계산입니다.그래서 발표는 30억 달러라고 했지만 사실 일을 하다보면 그 보다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아남이 국내외에서 신용도가 좋은 편이어서 투자액 조달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마전 해외에서 4천만 달러어치 전환사채를 발행하려고 했는데 뉴욕 홍콩 취리히 런던등지에서 투자자들이 쇄도했습니다. 전부 합쳐보니 2억 달러에 이르더군요. 계획한 액수만 발행했습니다만 어쨌든 아남의 신용도를새삼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국내에는 비메모리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력양성도 큰 과제가 되겠습니다.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아남은 특히 인력 개발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아남이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봉급 가운데 인력 개발에 투자하는 비율은 3%에 이르는데 이는 상당한 수치입니다. 1백만원을 인건비로 지출하고 과외로 직원교육에 3만원을 추가지불한다는 얘기죠. 인력개발 많이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모토롤라도 3%입니다.인력개발 프로그램의 예를 들자면 회사에 가까운 건국대와 미 서부샌호제이 대학에 각각 MBA 프로그램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샌호제이 대학은 잘 아시겠지만 실리콘 밸리에 중간급 기술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입니다.▶ 공장부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해결이 됐습니까.기존 부천 공장의 대지 면적이 3만평인데 이중 1만평만 사용해왔고나머지 2만평에 추가로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곳이 도시계획정비법에 걸려 공장을 지을 수 없게된겁니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협회 등을 통해 증설 허용 건의도 하는등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결국 부천은 첨단지역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 세워져 허가는 났습니다만 이 일을 계기로 참 느끼는 점은 많았습니다. 외국과 너무 차이가 많더군요. 사실 TI측에서는 싱가포르나 미국 텍사스에 공장을 지으라면서 좋은 조건을 많이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김향수 명예회장이 외국에 지으면 그 기술은 결국 외국것이 된다, 비메모리 첫 공장인데 반드시 국내에서 해야한다, 그렇게 말씀을 해서 짓기로 했던 것인데…. 국내 규제가 참 문제는 문제입니다.▶ 아남의 반도체 제조기술은 상당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인텔사에 기술 수출을 한 사례도 있다는데 몇 개 사례를 좀 들어주시죠.94년인가, 일본 도시바에서 양사가 갖고 있는 특허를 크로스 라이선스하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상대측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서로 제한없이 사용하자는 것이었죠. 인텔사에 기술을 판 것은 두번인데 한번은 4년전 PQ2라는 이름의 패키지 기술을 1백60만달러에팔았고 지난해 봄에는 4백만달러에 BGA라는 조립기술을 넘겨줬습니다. NEC와 도시바하고는 지금 정기적으로 기술협의를 갖고 제품 공동개발 계획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아남산업의 2000년대 비전은 어떤 것입니까.반도체 설계와 웨이퍼 가공, 패키징 및 테스트, 소재 등 전 분야를연계한 토털 솔루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서 단일기업으로 재계순위 30위내에 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추진중인 광주공장과 웨이퍼 일관 가공 공장을 조기에 정착시키고 R&D 투자를 5%선까지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생산제품은 DSP와 MPU로서 2004년부터는 연간 2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향후 0.13 미크론까지 첨단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점이 되면 메모리 비메모리간에 현재 극심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현상은 상당부분 시정이될 것이고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한국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할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