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은 요즘 풀이 죽어있다. 예년같으면 앞다퉈 97년 경영계획을 내놓고 나름대로 청사진을 자랑스럽게 펼쳐보였으나 96년 연말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몇몇 기업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대기업들이 「수립중」이라거나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대기업들이 예년과 달리 97년 경영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한데는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그 어느해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불황의 검은 먹구름이다. 97년 경제기상은6%대의 저성장률에 내수 수출 어느 것 할 것 없이 부진의 늪에서허덕이는 최악의 한해가 될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불황과 함께 97년에 예정된 대통령선거도 기업경영에는 걸림돌이다. 경제를 살리자고 모두 발벗고 나서도 어려운 것이 97년인데 대통령선거로 인해 「경제살리기」는 뒷전에 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기 1년을 앞둔 문민정부 경제팀이 무게중심을 잡고 소신있는경기활성화정책을 펴주면 좋겠으나 이마저도 기대난이다.이런 상황속에서 내부집안단속도 해야한다.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해 불요불급한 경비는 줄이고 감원등 감량경영에도 손을 대야한다.대기업들은 청와대가 경쟁력 10%운동을 제창한 뒤 대대적인 감원은한발 뺀 상태이다.◆ 현대 등 대부분 그룹사 97년 안정위주 경영그러나 기조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감량경영을 경쟁력 10%높이기로 포장했을뿐 감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대기업들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출목표는어느정도 설정해야 할지, 투자는 얼마나 어느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최종적인 마스터플랜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의 97년 경영기조는 자린고비식 긴축경영, 투자의 집중화, 사업구조의 전면적 개편이 주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과거 같으면 너나할 것없이 공격경영을 목소리높여 외쳤으나 97년에는 극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그런 공세적인 모습을 찾아볼수 없다. 전면전이 아닌 정해진 범위내에서 국지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신규투자는 가급적 자제하고 한계사업정리등 구조조정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공격경영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현대그룹도 이런 분위기에 예외는아니다. 투자규모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지만 대략 96년 수준인 9조원가량을 올해 투자할 방침이다.기술의 현대를 표방하며 매년 투자규모를 조금씩이나마 늘려 공격경영을 펼쳤는데 97년에는 안정위주경영을 하겠다는 복안이다. 역점을 둘 사업분야로는 자동차 반도체 우주항공 석유화학 등이 거론되고 있다.특히 현대그룹은 정몽구회장이 취임한 뒤 의욕적으로 진출을 시도한 제철업신규진출을 위한 작업을 재추진할 계획이다.삼성그룹 또한 주력사업인 자동차 반도체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투자를 집중할 방침이다. 투자규모는 대략 8조~8조5천억원 규모가 될것이라고 그룹측은 밝혔다.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함에 따라 몸집덜기도 병행한다. 이미 사업단위별로 주종사업 전략사업 철수사업에 대한 분석을 마쳤으며 올해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삼성은 주력업종인 반도체의 경우 올해도 경기가 살아날 조짐은 그리 많지 않아 고민이다. 자동차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주력인 전자가 부진하고 나머지 계열사또한 경영이 크게 호전될조짐은 없어 공세경영에는 한계가 있다.특히 삼성은 그동안 반도체 호황시 그룹내에 내재된 거품을 96년하반기부터 꾸준히 제거해 왔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97년에도 거품제거운동은 삼성경영의 주아이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상황 타개 ‘체질바꾸기’도 고려LG는 다소 공세적이다. 97년은 「도약 2005」의 선포 1주년이 되는만큼 그룹역량을 집중, 구체적인 결실을 맺어나간다는 복안이다.우선 「도약 2005」목표달성을 위해 통신운영사업, 멀티미디어,SOC사업과 같은 미래형사업에 신규진출하고 나머지 한계사업분야는전략적 철수를 단행한다. 사업구조조정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사업부문별로는 화학 에너지 전기 전자분야 등의 주요 전략사업은 역량을 집중해 세계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들 사업과관련이 있는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미래형 사업은 지속적으로 신규진출한다는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고 있다.LG는 96년에는 현대 삼성을 제치고 PCS사업권자로 선정된 것은 물론 당진 민자화력발전소사업권자로도 선정돼 어느 그룹보다 「따뜻한 한해」를 보냈다. 이같은 상승세를 97년에도 지속해나갈 방침이다. 이 그룹 관계자는 『도약 2005목표달성을 위해서는 매년 20%씩성장을 해나가야 한다』며 이에따라 투자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그룹처럼 움츠러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강조했다.세계경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대우 또한 공세적 경영에 나선다. 그룹매출은 96년보다 15조가 많은 70조로 잡은 한편 투자 또한27%가 증가한 5조원을 계획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해 오는 98년까지 신차개발을 해나갈 계획이다. 전자와 항공, 자원개발분야에 대한 투자도 병행한다.재계에 감원신드롬을 일으켰던 선경그룹은 매출과 투자를 늘린 방침이나 공세경영강도에 있어서는 대우 LG보다 처진다. 불황에 따른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체질바꾸기가 선경의 97년 화두가 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96년말까지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작업을 이미 마무리한만큼 이에대한 후속작업이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쌍용과 한화그룹 역시 뒤지지 않는다. 쌍용그룹은96년12월19일 사장단회의를 열고 97년 매출목표를 29조원으로 확정하고 투자는 자동차승용차개발등 필수불가결한 분야에만 1조3천억원을 하기로 했다.쌍용은 설비 기계 등 환경관련 사업진출을 가속화하고 멀티미디어위성방송 등 유망산업진출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한화그룹은 유통 레저 및 위성사업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다. 투자규모는 약1조9천억원 정도이다.코오롱등 나머지 30대 그룹들 역시 내실경영위주로 경영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경기가 극도로 침체한 상태에서 무모한 신규투자는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 그룹의 변이다.한계사업정리를 통한 21세기형 사업구축, 미래전략산업에 대한 신규진출 및 투자가 97년 대기업경영의 큰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