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과연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우리는 이같은 의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때가 많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말처럼 일본은 아직도 생소한 나라로 있다. 그만큼 일본연구가 안돼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본을 책을통해서 엿보는 수준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90년대 들어 국내필자가 쓴 일본관련 책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팔린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지난 94년 교보문고를 비롯한 전국 대형서점의 비소설 베스트셀러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일본은 없다」(전여옥, 지식공작소)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80여만부가 팔린 여세를 몰아 2부까지 나왔다. 2부도 20여만부가 나갔다. 이어령씨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래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저자는 2년 7개월간의 KBS 도쿄특파원 생활을 바탕으로 비판적 시각에서 일본을 그리고 있다. 일본식 경영과 문화풍토를 막연히 동경하고 있었던 사회분위기에 반하는 파격적인 내용과 종군위안부문제로 일기 시작한 반일감정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엄청난수요를 낳았다. 그러나 이책은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일본이해에도움이 안된다는 비판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연구인력 절대부족, 양서 기대는 연목구어이 책에 뒤이어 현 파푸아뉴기니 대사인 서현섭씨가 일본은 여전히배울 것이 많은 국가라는 주제로 「일본은 있다」(고려원)를 출간했다. 이책도 20여만부나 판매됐다.지난해에는 영화감독 이규형씨의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도12만부가 나갔다. 지난해 몰아닥친 명예퇴직붐을 타고 단 3개월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다.이밖에도 교보문고 을지서적 등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었거나스테디셀러에 들었던 책으로는 「장사꾼으로 거듭나는 사무라이 혼」(김형철, 한국경제신문사) 「쌈지속에 담긴 일본 이야기」(조양욱,고려원) 「비즈니스에 바로 활용되는 일본사 여행」(황인영,일본문화연구센터) 등이 있다.그러나 베스트셀러가 양서가 아니라는 건 출판계에서는 통설처럼돼있다. 대부분의 책들이 일본을 체계적으로 연구·분석하기 보다는 개인적 체험담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자들의 주관적 경험과 선입견에 따라 일본에 대한 시각이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민족감정에 치우치거나 형이하학적 접근으로 해악까지 끼친다.삼성생명에 근무하는 함원섭 대리는 『베스트셀러들이 대부분 필자들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어 사실을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할 우려가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만 전문연구가들이 쓴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베스트셀러 저자들도 자신의 책이 일본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화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한 저자는 서문에서 『신참 복서처럼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부딪치면서 파고들어가며 썼다』고 취지를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전문가들이 쓴 책중 2천부 이상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역시 양서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실증해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인문사회과학서적중에서 비교적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스테디셀러중 하나가 「일본의 역사」(민두기,지식산업사)이다. 출판사측은 76년 초판 1쇄를 찍어낸 후 지난해까지 20쇄를 찍었다고 밝혔다. 주로 대학교재로 나가며 매학기 1천여권을 찍어낸다. 이밖에도 「일본경제정책론」(이종훈, 중앙대출판부),「일본·일본학」(최상용외, 오름),「일본근대사를 보는눈」(김용덕, 지식산업사) 등이 그나마 잘 나가는 전문서다. 이들책들은 연간 5백권 이내에서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남녀노소 무차별 독자층을 겨냥한 서적과 특정연구자를 대상으로한 전공서를 똑같은 기준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양자간의 판매량 차이는 국내의 일본읽기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극우정치인의 「망언」이 나올때마다 언론과 학계에서 「극일」과 「지일」을 수없이 외쳐되지만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국내서점에 깔려있는일본관련 서적과 결코 무관치 않다.그럼 일본의 객관적 실체를 알려주는 제대로 된 대중서가 나오지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국내학계의 일본연구상황에서 이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연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본사를 직업적으로 연구하는대학원생 이상의 모임인 「일본역사연구회」의 회원은 50여명이고,경제 정치 사회 등을 전공하는 인력은 2백여명에 불과하다.중국만 하더라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인중화일본학회의 회원이 1천1백여명이나 된다.◆ 전문가가 쓴 대중용 입문서 필요하다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미국의 일본연구수준은 세계최고다. 일본전문연구가만도 2천여명이 넘는다. 일본연구강좌를 개설한 4년제 대학은 50여개에 달한다.이들 나라의 일본연구는 언어 문학 역사 등 기초학문에서 출발하여당면 현안에 대한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갔다.반면 국내는 인문사회과학의 뒷받침이 없어 정치 경제 외교 등의현안에 대한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전략을 수립하기가 힘들다. 마치기초과학의 뒷받침이 없어 응용기술 개발에 한계를 보이는 국내 산업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물론 연구기반의 부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것만으로는제대로 된 대중서를 바라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이유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열악한 환경에서나마 최선을 다하겠다는 분위기도 아니다.김용덕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학생들 가르치기도 벅찬 상태라 대중들을 배려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라고 인정했다. 특히일반독자를 겨냥한 대중입문서를 집필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역사관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당장 학계에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덧붙였다.또한 교수진이나 전문연구가들의 권위주의적 태도도 독자들과의 만남을 스스로 제한한다.장인숙 지식산업사 편집장은 『일본관련 서적에 대한 잠재수요는많다고 보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문필진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중용 입문서를 쓰는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 청탁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공급 측면 뿐만 아니라 수요층에도 문제가 있다.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글들만 선호하는 국내 독서풍토가 베스트셀러를 통한 일본읽기의 장애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체험기나 견문기만 팔리지 정독을 요하는 책들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실정이다.김재준 교보문고 과장은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지금까지일본에서만 1백만부 이상 판매됐는데 이 책이 우리기준으로 볼 때에는 대중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까진 안돼도 최소한 양서를통한 일본읽기는 계속 돼야 한다는 게 학계와 출판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무리 과거의 은원이 깊어도 양국간의 다면적 협력은 불가피한 추세다. 세계시장에서 경쟁과 협력은 더욱 요청된다. 그런만큼 일시적 흥분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일본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더욱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객관적 실재로서의 일본읽기가 필요하다. 일본을 넘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 세계속의 한국으로 설 수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