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디소프트의 전영표이사(36)는 과학기술원 박사출신의 정통 프로그래머다. 업체경력만 10여년에 대학원과정을 합치면 벌써 십수년동안 프로그래밍에 매달리고 있다. 『프로그래밍은 마약같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그는 사나흘씩 밤을 꼬박 새면서 악전고투 끝에만들어낸 프로그램이 뜻한 대로 움직일때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그룹웨어 프로그램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핸디오피스」는 전 이사를 비롯해 5명의 프로그래머가 6개월여의 기간을 거쳐 만들어낸 제품이다. 『비록 한 개의 프로그램으로 판매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핸디오피스 같으면 기본적으로 워드 그래픽 통신관련 프로그램들이 가미돼 있는 것입니다.』전 이사는 이 모든 분야에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그는 현재 70여명의 프로그래머들을 거느리며 개발방향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주특기로 하는 분야는 워드분야와 윈도환경내의프로그래밍이다. 굳이 프로그래머를 구분하자면 유닉스체계와 PC체계, 다시 PC중에서도 도스와 윈도환경에서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과학기술원 출신자들같이 프로그래밍관련학과를 전공한 사람들은이론에 무척 강합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못해 선구적인 제품을 만들었음에도 판매와 보급에는 실패했습니다.』그는 퓨처시스템 휴먼컴퓨터에서 한글X윈도(유닉스에서 돌아가는윈도운용체계), 한글서체의 개발프로그램 등에 참여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앞서가는 개발전략이었다고 술회한다.프로그래머 세계에서는 당장에 유능한 인재들이 부족하다보니 능력만 인정받으면 연배에 비해서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소수인원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제는 프로그램 개발초기부터 제대로 설계해 시장을 파고들어야 하는 시대다. 수백 메가바이트의 용량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이를 총괄하는 기술이사들이 필요해진다. 전 이사는 『한국에서 윈도같은 운영체계를 새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여건에 맞지 않지만 프로그램개발툴(Tool)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도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정영조 퓨처시스템 이사프로그램 밑그림부터 개발방향 제시서초구의 양재동과 포이동. 이곳은 정보통신벤처기업들이 몰려있어「포이밸리」라고도 불린다. 퓨처시스템의 기술연구소도 이곳에 있다. 정영조이사(34)는 퓨처시스템 기술연구소 소장으로 퓨처시스템기술부문 책임자다. 프로그램 개발땐 직접 코딩도 하지만 주된 업무는 프로젝트관리다.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리고 개별 프로그래머들의 작업을 손 봐준다. 요즘은 프로그램의 규모가 대형화하는 추세라 프로그래머들에게 개발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기초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선진국의 신기술과 신제품 동향을 추적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정이사는 한국과학기술원 전산과를 마치고 병역특례로 전자통신연구소에서 3년간 일했다. 이곳에서 전전자교환기(TDX)개발팀의 네트워크를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퓨처시스템에서 네트워크 기반 프로그램인 「퓨처TCP」 개발에 참여하게 됐다.한국소프트웨어시장을 지키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돼야 하는 워드프로세서나 그룹웨어들이다. 반면 퓨처시스템의 「퓨처TCP」는 한국어의 특성이나 한국적 사무관행보다는프로그램자체의 성능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경우다.정이사는 전화번호는 잘 외우지 못한다. 자주 쓰는 번호라도 메모를 봐야 할 정도로 기억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관심가는 분야만큼은 「괴력」을 발휘한다. 특정 반도체의 고유한 이름은 아무리 길고 복잡해도 한번에 정확하게 기억한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어느 파일의 어느 부분에 잘못이 있다는 것까지 찾아낼수 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기억력을 「발동」하는 것이다. 관심만 가면 집중력과 끈기가 생긴다고한다.정이사는 「한번 맡은 일은 말끔하게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을 프로그래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전규영 아이소프트 과장2백권 독파 독학으로 전문프로그래머프로그래머가 되는 과정은 다양하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고 사설학원을 통하기도 한다. 아이소프트의 전규영과장(29)은 거의 독학으로 프로그래머가 됐다. 컴퓨터를 처음 접한것도 대학 3학년 때였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 제출하라는 과제물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컴퓨터를 보자 마자 흠뻑 빠져 들었다.무한한 가능성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과장이 컴퓨터프로그램과 관련해 받은 교육은 사설학원의 C언어 1개월과정이 전부다.육군 복무기간중에는 전문서적을 2백권이나 독파했다. 책뒤에 있는관련도서목록을 참고해 다음에 공부해야 할 책을 찾았다. 일과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씨름하며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에는 책으로만 봤던 이론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오후4시에 집에 돌아오면 다음날 새벽5시까지 꼬박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대학4학년때 한글과컴퓨터에서 잠시 일한 후 졸업과 함께 아이소프트로 옮겼다. 아이소프트에서 주어진 일은 인트라넷인 「앳오피스」 개발. 전과장을 비롯한 9명의 프로그래머가 참여했다.『「앳오피스」 개발에 착수했던 94년은 인트라넷이란 개념만 알려진 때라 참고할 사이트가 없었습니다. 인트라넷이란 상품의 기본적인 얼개부터 잡아가야 했습니다. 결국 시제품을 업무에 도입해 직접 사용해보며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며 개발하기로 했습니다.』근태관리시스템의 경우 처음에는 「앳오피스」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아이소프트에서 시험판을 사용하면서 필요하다고 여겨 보완개발한 기능이다.전과장은 수용인원을 1만명으로 늘리고 안정성을 강화한 「앳오피스2.0」을 개발중이다.◆ 최인영 유니텔 선임생동감있는 pc통신 시스템 개발에 보람유니텔의 최인영선임(38)은 시스템설계자다. 프로그램의 기본적인구조설계가 그의 일이다. 유니텔의 멀티미디어기반의 데이터베이스시스템도 그의 작품이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입하는 멀티미디어서버의 설계를 담당했을 때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개발경험을 가진 사람도 없고 참고할 사례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PC통신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이나 컴퓨서브 등에 문의했지만 회사기밀이라며 노하우를 공개하려 하지 않았어요. 겉에서보이는 것만 참고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처음엔 클라이언트서버시스템을 원용했다. 그러나 PC통신에 그대로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기업정보시스템과 달리 PC통신은 누가 언제 어떻게 접속해 올지 알수 없고 동시에 접속해 오는 사용자의 규모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사용자들의 접속경로도 복잡하다. 동료들은 『집에 다녀오겠다』며퇴근했고 「2박3일」간 근무할 때도 종종 있었다.95년 1월 일반에 공개하기 전 그룹내에서 시험서비스를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니텔공개 기념행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자 상황이 심각했다. 동시에 접속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설계까지 바꿔야했다. 새벽 3시가 돼서야 겨우 시스템이 안정됐다.『PC통신은 「살아움직이는 시스템」입니다. 계속 새로운 서비스와메뉴가 추가됩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최선임은 대학시절 교육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단지 더 많은 가능성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982년의 미국은 이미 정보화의바람이 불고 있었다. 주변에서 정보통신분야로 전공을 바꿀 것을권유했다. 아리조나 주립대 전산과 학부과정에 들어가 대학원과정까지 마쳤다.최선임은 『미리 재고 선택한 결정은 아니었다』며 『젊기 때문에뭐든 할수 있다는 신념』으로 선택한 16년전의 결정에 만족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