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병 이승욱 사건」. 95년 3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정보화 붐이 일어 컴퓨터가 급속도로 보급된 이래 최대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개요는 간단하다. 「한글」로 쓰여진 일부 문서파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프로그램(코드21)이 PC통신 하이텔위에 올려진것이다. 개발자(이승욱) 본인은 별다른 뜻 없이 한 행동이었다고해명했지만 그 파장은 그냥 사그라들지 않았다.당시 한글은 국내 워드프로세서시장을 석권하고 있었으며 많은 기업체와 관공서의 컴퓨터사용자들이 글로 문서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프로그램이 만천하에 공개되다보니당연히 「대외비」와 「프라이버시」의 관리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것이다. 이 사건은 매스컴에 의해 이찬진사장(한글과 컴퓨터사장,서울대 기계공학과 졸)과 방위병 이승욱(서울대 컴퓨터공학과졸)이란 두 「컴퓨터천재」의 싸움으로 비쳐지면서 컴맹들에게도「뭔지 몰라도 대단한 하이테크전쟁이 벌어졌구나」하는 흥미를 갖게 했다. 한글은 버전을 올리면서 그 미비점을 보완해야 했고 프로그래머 이승욱은 그후 정부기관에 특채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하나의 작은 프로그램은 큰 힘을 갖는다. 아무리 컴퓨터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통신망이 깔려도 정보화시대가 진가를 발휘하는데는다양한 소프트웨어(프로그램)들이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는 특별히 많은 자본이 들지 않는다. 기초적인 학문적 배경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도 도전이 가능했다.◆ 수십만줄 넘어가는 대작도 주목받기 어렵다프로그래머는 자연 정보화시대의 총아로 부상했으며 수많은 프로그래머 지망생들을 낳고 있다. 프로그래머가 되는 길은 우선 관련학과를 전공하는 것이다. 95년말 현재 전국의 전문대학(1백35개) 4년제대학(1백57개)에는 2백50개가 넘는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가 있다. 물론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2만여명의인력이 최소한의 프로그램작성법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관련 학과의 입학생 졸업생은 매년 10% 가까운 증가추세를 보이며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프로그래머가 되는 또다른 길로는 전문학원에서 실기적인 부분만을배우거나 서적을 통해 공부하는 독학(비전공)이 있다. 이들은 전공자들에 비해 이론적인 토대가 약하긴 하지만 스스로 취향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거의 「미친 사람」처럼 노하우를습득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어느쪽이라도 결국은 컴퓨터의 내부적인 작동원리와 이를직접 응용할 수 있는 기계어인 어셈블리,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컴퓨터프로그래밍언어 등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인터넷같은 네트워크상에서 유용한 것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자바」의 등장에서 보듯 프로그래밍언어는 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특정 환경에 보다 적합하도록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프로그래머는 지속적으로 기술발전 추세를 따라잡아야 한다.현재 활동중인 프로그래머들중에는 독학으로 프로그래머가 된 경우가 많다. 현재의 30대들이 공부할 때만해도 프로그래머의 주가가이처럼 치솟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교육기관이나 내용도충실하지 않았다. 역으로 말하면 이처럼 좋지 않은 여건속에서도독학파들은 개인적인 호기심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사장이나 바이러스백신프로그램을 홀로 개발한 안철수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대학의컴퓨터동아리를 통해서 정보를 주고받아가면서 말 그대로 하숙방에틀어박혀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이다.그러나 최근들어 상황은 크게 변하고 있다. 개인적인 호기심에서출발한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나왔다고 봐야 옳다. 천리안 통신프로그램의 개발진이었던 C2N시스템의 최우진 사장은 『초기의 프로그램은 용량을 작게 차지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몇몇 「동지」들이 모여서 뚝딱 해치우기에는 너무방대한, 그런 대용량의 프로그램이 아니면 시장에 나올 수도 없다』고 설명한다. 소스코드(프로그램을 풀어적은 것)가 1만줄만 넘어가면 「대작」이었던 시절과 수십만줄을 넘어가도 주목을 받기 어려운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에 시선을 끌고 있는 퓨처시스템 웹인터내셔널 핸디소프트의 김광태 윤석민 안영경 사장 등은 한결같이 과학기술원의 석박사과정을 통과한 전공프로그래머들이다.독학파에서 전공파로 세력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추세는 앞으로도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그래머들이 채용되는 과정도 프로그래머들의 증가현상과 일맥상통하게 진전되어왔다. 초기에 전문적으로 프로그램개발에만 치중하는 업체들은 주로 인맥 학맥을 통해서 핵심포스트에 앉힐 인력을스카웃해왔다. 그러나 점차 조직이 커지고 더많은 프로그래머수요가 생기면서는 공채를 하는 형태로 서서히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공모전, 인재 발굴·기업홍보 일석이조대기업의 경우 오히려 소프트웨어에 대한 마인드는 크지 않았다.핸디소프트의 전영표 이사는 『대기업들은 주로하드웨어(컴퓨터)를 팔아먹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드웨어를 팔기 위해서 워드프로그램을개발하다보니 컴퓨터제조업체별로 프로그램이 달랐다. 글은 모든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소프트웨어를 위한 소프트웨어」로 개발됐기 때문에 반향이 컸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그러나 이제는 프로그래머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정보인력의 수요와 공급이 현 수준으로 지속된다면 오는 2천년에는 약 8천명의 관련자들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프로그래머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프로그래머지망생들간에 질적인차이가 나는데도 이유가 있다. 공채를 원칙으로 하는 대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부서의 지원자가 많아 선발하는데 애를 먹을 정도라지만 「월척」을 낚는 일은 덤불속에서 바늘찾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해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견본에 해당하는 소스 코드를 가져오라고 해야하는데 그것을 통해 프로그래머가 대성할 요건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독창성을 발견하기가 만만치않은 것이다.프로그램공모전은 대기업의 이같은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시키는통로가 된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정보통신관련 계열사들은 매년 한두차례씩 사내외 프로그램공모전을 실시한다. 현대정보기술의곽기영 기획홍보팀장은 『공모전은 기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우수개발자를 조기에 발견, 특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이제 혼자 좋아서 프로그램을 개발, 잘 팔리면 돈을 벌고 안 팔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프로그래머시대는 지나갔다. 내실있는 공교육을 통해 프로그래머의 양적인 부족사태를 해소함과 동시에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성으로 재능있는 프로그래머를 키워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몰이」가 필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