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움 버그(millenium bug)」. 세기가 바뀌고 연도의 끝자리가 다시 「00」에서 시작하는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상의 결함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는「세기말 병균」에 해당한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순간컴퓨터의 세기말 병균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손해본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으려하고 그런 주장을 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세기말병균으로 인한 소송은 많아질 것이다. 특히 소송을 통한 분쟁해결이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컴퓨터의 세기말 병균으로 생기는 소송사태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미국의 변호사들은 어떤 법 이론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고그런 소송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또 예상되는 법률 문제에 대하여 미리 대처해야 할 일은 없는가. 국가적으로 컴퓨터의 세기말 병균을 예방하기 위해 법령을 정비할 필요는 없는가.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컴퓨터 세기말 병균의 가상 피해 사례를검토해보자. 「서기 2000년 5월 미국 국적의 비행기가 국내에서 추락한다. 한국의 유망한 과학자 한 사람이 그 사고로 사망한다. 그과학자는 한국의 유수한 기업과 합동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있었고 그것은 거의 실용화 단계에 있었다. 기술이 실용화되면 그기업은 확실하게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과학자의 죽음으로 기술의 실용화가 최소한 3년은 늦어지게되었다. 비행기의 추락원인은 조그만 부품이 너무 닳아서 작동이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다. 부속을 제때에 바꿔주지 못한 것은 항공사의 정비일정을 관리하는 컴퓨터가 부품대체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까닭이었다. 컴퓨터의 세기말 병때문에 부품대체날짜가 계산이 안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판매한 회사는 미국의 거대한 소프트웨어회사다.」위와 같은 가상 상황에서 법적인 소송을 할 수 있는 피해자는 누구인가. 우선 그 사고에서 사망한 과학자의 유족들이다. 그리고 과학자의 죽음으로 획기적인 신기술의 실용화기회를 놓쳐 막대한 손해를 입은 회사측도 피해자다. 추락사고의 희생자들로부터 엄청난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게 되는 항공사도 피해자다. 또 그 항공사의 주주들도 간접적 피해자들이다.그러한 피해는 누구의 잘못인가. 줄줄이 엮어지는 피해사슬의 원초적 원인은 결국 1900년과 2000년을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의 결함이다. 그러한 결함이 있는 프로그램을 시중에팔았고 그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제대로 보수하지 않은 소프트웨어회사에 책임을 물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결함이있는 비행기 정비 일정 프로그램을 그대로 믿고 문제의 부품을 제때에 대체하지 못한 항공사에 책임을 묻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비행기사고로 사망한 과학자의 유족은 항공사와 문제의 프로그램을판매한 소프트웨어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항공사에대해서는 비행기운항과 정비상의 태만과 실수(negligence), 소프트웨어회사측에는 제품결함(product liability)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송을 받으면 항공사는 다시 소프트웨어회사에 제품결함과 제품에 대한 보증위반(warranty)및계약위반(contract) 등의 이론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아마도소송장소와 관할법원은 미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법에 의하여 유족들이 항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비교적 분명하다. 항공사가 정비를 게을리 해서 난 사고라면 항공사는 보상책임이 있다.물론 보상액은 국제협약에 따라 제한이 있고 실제적으로는 항공사와 계약을 맺은 보험회사가 지불하겠지만 유족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유족들이 소프트웨어회사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간단하지않다. 소프트웨어의 결함이 비행기사고의 원인이 됐더라도 유족들은 소프트웨어회사가 그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충분히 예측할수 있었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항공사 정비 일정 프로그램이 항공업계를 위하여 특별히 쓰여진 것이라면 항공여객들의 피해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그 프로그램이 일반적인 일정관리용 프로그램이었고 그것을 항공사가 자체의 데이터를 가지고 운영한 것이라면 여객의 피해예측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항공사측 또는 항공사의 권리를 위임받은 항공사의 보험회사는 소프트웨어회사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우선 제품의 보증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2000년의 컴퓨터 대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1995년 이후에는 항공사같이 큰 회사들은 소프트웨어업자들에게 2000년 이후에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명시적인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물론 그런 명시적인 요구가 없는 경우에도 묵시적으로 제품 작동에대한 보증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둘째로는 소프트웨어회사의태만과 실수를 주장할 수 있다. 세기말 컴퓨터 병은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고 그것에 대한 예방책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는데도 소프트웨어회사가 예방책을 게을리 했다면 거기서 발생하는 손해에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셋째로 소프트웨어회사가 계약상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명시적인 계약이 있든없든 소프트웨어회사는 작동이 제대로 되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할의무가 있다.과학자의 죽음으로 큰 손해를 본 회사는 항공사나 소프트웨어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어렵다는것이다. 그 회사가 입은 손해가 분명하고 원인이 소프트웨어의 결함에 있는 것이라도 회사의 손해는 간접적인 것으로 항공사나 소프트웨어회사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항공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회사경영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면그 회사의 주주들이 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경영진이 2000년의 컴퓨터대란에 대한 대처를 태만히 한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것이다. 경영진은 회사운영에 관한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대처할의무가 있다. 물론 경영진이 일일이 챙길 수 없는 기술분야의 문제라고 발뺌할 수도 있지만 경영진은 최소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법·제도 만들어 대비해야2000년의 컴퓨터 대란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고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를 대비하여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회사의 경영진은 우선 회사가 어떠한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는지 지금부터 파악을 해야한다.세기말 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해당회사에 연락해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연락은 꼭 문서로 남겨 만일 소프트웨어회사가 비협조적이었을 경우 손해배상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들로 보존해야 한다. 이러한 조처는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최소화해야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원래의 프로그램공급자가 아닌 제삼자에게 예방프로그램의개발을 시키는 경우 원래 프로그램을 제삼자에게 공개하는 문제에있어서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 소프트웨어의라이선스계약을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구입하거나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반드시 2000년 이후에도 제대로 작동한다는 명시적 보증을 받아야 한다. 기존의 소프트웨어계약에도 가능한 한 그러한 조항을 삽입하도록 노력해야한다.소프트웨어개발업자의 경우에는 2000년의 대란을 막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객들에게 공급해야 한다. 무료서비스가 아니라도 최소한 고객들에게 예방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2000년의 컴퓨터 문제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예견된 문제이므로 그런 문제를 알고도 아무런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고객에 대한 의무태만이 될 수 있다. 고객들이 요구하는2000년 이후의 작동보장에 관해서도 제품보증의 한계에 대해서 고려를 많이 해야한다. 아직도 2000년 이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제3자의 데이터가 많이 있는 상황에서 자기회사의 프로그램만 고친다고 2000년 이후에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정부당국에서도 2000년 컴퓨터 대란에 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정부의 각 부처나 산하기관은 소프트웨어 사용자로서 모든 예방을해야하고 다른 사용자들이 컴퓨터의 세기말 병에서 큰 피해를 입지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도 해야한다. 미국에서는 이 문제에관해서 뉴욕출신 상원의원 패트릭 모이니한(Patrick Moynihan)의제의로 법제화가 이뤄지고 있다. 또 미국의 국방부나 총무부서 같이 아주 중요한 업무를 컴퓨터에 의존해야하는 부서에서는 모든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구매에 있어서 2000년 이후의 작동보증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