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0년 1월 1일이 과연 대재앙의 날이 될것인가. 정부 각 기관에서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며 대답은 『아니다』라는 쪽으로기울고 있다. 서기 2000년문제를 직접 책임져야 하는 대다수 전산담당자들은 『이미 데이터베이스의 연도표시를 네자리로 변경했다』면서 큰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서기2000년문제가 전산실인력만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만한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석연치 못한 인상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온다.최근 몇년간 국내에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대형사고가 빈발했다.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는가 하면 백화점이 붕괴되기도 했다.배가 침몰하고 열차탈선사고는 잊을만하면 발생했다. 도시가스가누출돼 땅속에서 폭발, 많은 인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사고가 날때마다 원인을 분석하며 대책을 세웠지만 대형사고는 끊이지 않았다.『다음사고는 지하철이다』라는 조소어린 소문도 돌았다.그러나 정보산업계 관계자들은 『다음 사고는 정보시스템이 될수있다』고 말한다. 지난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깔리기 시작한 국내정보시스템은 대부분 최저입찰제로 도입됐다. 유능한 인력의 아이디어와 성실함을 필수로 하는 소프트웨어산업의 특성을 무시했기때문이다.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통부, ‘문제 없을것’ 조언에만 의존국내 정보시스템의 부실은 정보관리체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예컨대 전산실에 운영시스템의 소스코드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스코드를 3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최근들어서다. 이전에는 문서화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프로그래머가 사라지면 대책이 없다. 2000년문제는 기존 시스템의 소스코드를 분석하고 변경해야 하는 작업이 필수적임을 감안할 때 바로이점에서부터 2000년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연도코드를 네자리로 바꾸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다. 가장 간단한방법은 두자리로 된 것을 네자리로 바꿔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연도표시 길이만 변경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논리부분에 손을 대지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테스트부담이 적다는 점도 강점이다.그러나 관련되는 모든 데이터 파일을 수정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이에따라 사용하는 디스크용량도 늘어날 경우 하드웨어를 수정해야하는 등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법은 날짜 구분점을 설정하는 것이다. 연도가 「50년」 이하면 이를 「2050년」으로 인식하도록 하고 「51년」이상이면 「1951년」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데이터파일을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통일된기준이 없는 경우 데이터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논리부분을 수정해야 하고 수정프로그램을테스트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끝으로 사용되지 않는 1비트를 활용하여 1900년과 2000년을 구분하는 방법도 있지만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적고 응용프로그램에서처리절차가 복잡해 활용도가 낮다.정부기관의 전산담당자들은 날짜구분점을 사용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인력과 비용이 적게 들어 전산실자체인력만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94년에 구축한 관세청의 통관시스템, 외무부의 업무용 전산시스템, 병무청의 징병검사프로그램 등에 적용한 방법이다.그러나 2000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는 경우다. 재경원의 경우 응용프로그램의 연도코드를 네자리로 변경하고 중앙컴퓨터는 올해 새 시스템을 들여온다. 사용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올해 데이터베이스 응용프로그램뿐 아니라 시스템까지 업무재개발 차원에서 새로운 것을 들여온다.◆ 인력·비용 적어 날짜구분점 사용 선호그러나 법무부 출입국관리실은 2000년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못하고 있다. 81년부터 축적된 자료의 규모가 방대해 섣불리 손댈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시스템은 이미 단종된 「프라임」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연도코드를 수정하기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들여오는 것이 효율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산하기구가 많은 내무부의 경우 아직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방의원들에 대한 홍보활동을 강화, 예산을 배정받는데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구상이다.이처럼 각 정부기관들이 전산실을 통해 별도의 방안에 따라 서기2000년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가운데 총무처 행정전산과는 뒤늦게범정부차원의 2000년 연도표기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세워놓고 있다. 총무처는 올 상반기중으로 각 부처의 전산담당자들을 대상으로실태조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총무처 행정전산과 담당자는 『내부인력으로 할수 있는 일과 외주를 줘야 할일을 구분해 올 5월에 예산을 신청, 12월 국회심의를 거쳐 내년부터 예산을 할당받아 작업을 시작할수 있다』고 밝혔다.정부 부문을 제외하고 연도계산에 가장 민감한 곳은 금융권이다.예금이나 대출의 이자계산등의 혼란에 따른 막심한 손실이 예견되기 때문에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자체전산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에 들어갔다.2000년문제로 카드사용에 문제가 있었던 신용카드회사들은 일찍부터 시스템개체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국내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카드를사용할 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거래승인을 낼 때는 미리 카드회사의 호스트컴퓨터에 승인을 요청하지만 외국가맹점은 승인없이 카드로 거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맹점 단말기의연도코드가 두자리로 돼 있다면 거래승인이 나지 않을수 있다. 또한 대형가맹점의 시스템이 2000년문제에 대한 대비를 세워놓지 않은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가맹점단말기 두자리연도도 거래승인 안나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은 회계관련 온라인시스템을 재구축하면서2000년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침이다. 기존 중앙집중식 체제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며 클라이언트서버방식을 부분적으로 도입하는데98년 말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중순「Year2000팀」을 구성, 검토에 들어갔다.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연도코드는 이미 네자리로 구성돼 있지만 응용프로그램과 시스템프로그램은 두자리로 돼 있어 수정이 불가피하다. 기업은행은 지난 93년 종합온라인시스템을 구축할 때 업무용시스템의 연도코드를 네자리로 구성했다. 현대 삼성 LG 대우 두산등 국내 대기업그룹도 서기2000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팀을 두고 운영중에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간곳은 없다.대부분의 정부기관의 전산담당자들은 2000년의 문제는 없다고 자신한다. 반면 조달청과 같이 업무전산화가 덜된 곳은 아예 계획도 세워놓지도 않고 있다. 상당수의 부처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2000년문제에 대처하고 있는데 총무처는 5월까지 실태조사를 마치겠다고 한다. 꼬여들어가는 2000년문제의 한 장면이다.정보시스템은 관성이 있다. 처음 구축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모든자료가 축적되고 노하우가 쌓인다. 상이한 자료구조를 바탕으로 진화하는 각 부처의 정보시스템은 훗날 통합하려 할때 막대한 대가를치르게 될 것이다. 호환성이 없는 데이터를 모두 재가공해야 하기때문이다. 2000년 연도표기 수정방법이 다르면 데이터도 호환이 안된다.각 부처의 전산실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독자적인 2000년해법은부처간 데이터의 호환성뿐 아니라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0년 1월1일이 됐을 때 정말로 문제가 없는지 별도로 가상시스템을 설정해 테스트해봐야 한다. 테스트의 기본틀을 만드는 것부터 2000년 1월1일 당일, 전날, 다음날 등 여러가지 경우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이다.2000년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수요가 98년에 집중적으로 몰린다는데에도 있다. 98년에야 예산이 집행되는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지난해말부터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 대기업들의 작업이 98년에집중적으로 몰릴 것은 분명하다.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 기업의 2000년 준비상황과 필요인력수급등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부는 단지관련전문가들의 「문제없을 것」이란 조언에만 의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김원식 산업자원 과장은 『당사자가 책임지고 풀어야 할 일』이라며 『개별 기업의 일이지 정부의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정부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각 부처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민간기업이나각 부처가 참고할 가이드라인이나 참고할 만한 매뉴얼을 제공하는수준에 그칠 뿐이다.그러나 정통부의 이러한 입장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2000년문제는 정보시스템만 개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예기치 않은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특히 2000년 1월초에 집중된다.전산사고는 사용자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게 마련이고 책임소재를둘러싼 분쟁이 일것은 명약관화하다. 2000년문제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할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미국의경우 정보기술협회에서 컴퓨터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에 2000년문제가 없음을 인증해 주고 있다. 인증받은 제품은 사용자의 입장에서적어도 2000년문제만큼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점도 커다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당초 정보통신부는 정보화기획실 주관으로 국가자원정보 센서스를실시할때 2000년문제도 함께 다룰 예정이었으나 최근 이 센서스자체를 백지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12월통산성이 정보산업관련 업계단체들과 함께 「2000년문제검토협의회」를 발족,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용자들에 대한 계몽활동에 들어갔고 일본 정보산업협회(JISA) 역시 이미 지난해 6월에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2000년문제 실태조사를 마쳤다.새로운 천년을 맞는 한국이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참사를 당할 것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남은 35개월간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달려있다.★ 2000년 문제의 기원두자리 표기는 자원절약 '아이디어'많은 사람들이 2000년 문제로 골치를 않고 있다. 처음부터 연도를네자리로 표기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텐데.『초창기의 프로그래머들은 왜 네자리로 연도코드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품었을 의문이다. 게다가 컴퓨터란게 미국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사람들이 모여 고안한 장치가 아닌가.이런 의문은 1946년 탄생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의 모습을 보면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가 개발한 30t짜리 컴퓨터 에니악을 미 국방부에 인도한가격은 48만7천달러였다. 당시의 화폐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환율로 계산해도 족히 4억원에 달한다.에니악 이후 등장한 컴퓨터들은 성능도 많이 개선되고 가격도 크게내렸지만 중앙처리장치를 비롯한 각종 저장장치 메모리반도체등 컴퓨터의 주요부품의 가격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 비싼가격을 유지했다.1960년대 대형컴퓨터가 보급될 당시 역시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시 프로그래머의 미덕은 가능한한 파일의 크기를 작게 하는것이었다. 1백줄로 처리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10줄이하로 줄일수있는 사람은 영웅이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공간도 되도록 작게하는 것이 황금보다 더 비싼 메모리를 절약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게다가 당시에는 장기주택자금이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장기채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금융증서는 만기일이 2000년 전이 대부분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연도코드를 두자리로만 표기해도 문제없는데 굳이한세기가 바뀔 것을 염려하여 네자리로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오히려 연도코드를 두자리로 표기해 컴퓨터의 자원을 절약할수 있도록 한 것이 「위대한 아이디어」에 속했다.메모리 반도체가격이 1메가당 1달러선에서 오르내리는 시대에서야잘 이해가 안가겠지만 연도코드를 네자리로 하지않고 두자리로 함으로써 절약한 자원은 2000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갈 비용을상쇄하고도 남을만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지금이야 개인용컴퓨터도 메모리용량이 32MB에 달하고 저장장치도기가바이트급이지만 50~60년대의 컴퓨터에 메모리가 1MB넘는 것은대단한 일에 속했다. PC가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초가 돼서도 컴퓨터황제라 불리는 빌 게이츠조차 『메모리용량은 640KB면 충분하다』는 역사적인 실언을 남겼다.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2000년문제가 대두된 것을 고려하면30~40년전의 엔지니어가 2000년 문제를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을이해할 만하다. 설사 2000년문제를 인지했다 하더라도 어느쪽을 선택했을지는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