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카시오」 시계의알람소리에 잠이 깨는 일은 벌써 몇년째 계속돼온 하루의 시작이다. 그이를 깨운 후 부엌에 들어가 「몰리넥스」 커피메이커로 모닝 커피를 끓이고 「필립스」 토스터로 토스트를 굽는다. 모닝커피로 잠을 좀 쫓은 뒤 샤워를 한다. 얼마 전 친구의 권유로 구입한「암웨이」 샴푸와 비누는 쓸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다단계판매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 다른 제품은 못 쓸것 같다.샤워 후 「내쇼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어느새남편이 샤워를 끝냈는지 옆에서 면도를 한다. 지난번 생일날 선물한 「브라운」 면도기다. 남편은 면도가 부드럽게 된다며 무척이나좋아했다. 「클라란스」로 간단히 기초화장을 끝내고 「샤넬」 파운데이션과 「랑콤」 립스틱, 「크리스티앙 디오르」 아이섀도로색조화장까지 마쳤다. 오늘은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이라 저번 백화점 바겐세일 때 큰 맘 먹고 구입한 「막스마라」 투피스를 꺼내입었다. 나가는 길에 산뜻한 기분을 내라며 남편의 귀 언저리에 「폴로스포츠」 향수를 뿌려줬다」.다른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날 한국이 처한 상황이다.수입품은 우리의 일상생활 깊이 침투해 있다. 화장품이나 샴푸에서부터 알람시계 헤어드라이어 의류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입품 천국에 살고 있다. 경기는 어렵다는데 소비재 수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신발 완구류 등 저가품도 상륙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입은 지난 94년 이후 매년 20%를 웃도는 높은증가세를 지속해왔다. 94년에 소비재 수입은 1백8억달러로 전년에비해 24.3%가 늘어났으며 95년에는 1백38억달러로 27.8%가 증가했다. 소비재 수입 증가세는 경기가 거의 바닥까지 추락한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11월까지 수입된 소비재 규모는 1백52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5%의 증가율을 보였다. 총수입에서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율도 95년 10.2%에서 지난해(11월까지)에는11.2%로 높아졌다. 경상적자가 2백20억달러에 달하게 된데는 소비재 수입 증가의 책임이 크다는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매년 소비재 수입이 늘어나면서 수입품이 내수시장에서 차지하는시장점유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제품들이 점점 더 수입품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소비재의 수입침투도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수입침투도란 해당수입품의 내수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이 자료에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면도기의 경우 수입품의 시장 침투도는98.1%에 이른다.우리가 사용하는 면도기 대부분이 외제라는 얘기다. 커피메이커와토스터는 10개 중에 8개, 전기다리미는 10개 중에 6개, 휴대폰은10개 중에 5개가 수입품이다. 헤어드라이어는 10개 중에 4개가 외제며 향수는 10개 중에 2개가, 샴푸는 10개 중에 4개가 수입품이다. 더군다나 소비재수입증가율을 민간소비지출증가율로 나눈 소비재수입탄성치는 지난 93년 0.3%에서 94년과 95년에 각각 1.7과 2.1로해마다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소비재수입이 민간소비지출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실제로 한국은행이 조사한 「최근의 가계소비동향 및 특징」에 따르면 가계의 재화 소비(서비스소비 제외) 중에서 수입재화 소비가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90년의 경우 전체 가계 소비지출 중 소비재 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6.9%였다. 이 수치가95년에는 9.6%로 증가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11.3%로 또다시 늘어났다. 재화를 구입하는데 쓰는 전체 지출 중에서 11.3%를 수입품을사는데 쓴다는 얘기다.소비재 수입품이 급증하고 있는 일차적인 이유는 시장개방에 있다.수입자유화로 개방의 폭이 넓어지면서 수입품이 몰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시장개방으로 수입이 늘어난 대표적인 상품으로 1차전지와 주류 담배 화장품 자동차 등을 들 수 있다. 1차전지의 경우시장이 개방되기 전에는 로케트전지와 서통의 썬파워가 거의 시장을 장악했지만 80년대 말 시장이 개방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로케트전지의 시장점유율은 35%로 떨어졌다. 서통의 경우 썬파워 브랜드와 영업망을 아예 미국의 듀라셀이라는 회사에 넘겼다. 현재 썬파워의 시장점유율은 30%다. 나머지 시장을 미국 에버레디사의 에너자이저가 차지하고 있다. 1차전지 시장이 80년대 말에 개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너자이저는 급속도로 성장한 셈이다.주류와 담배 화장품 자동차 등도 80년대에는 높은 세금과 수입 제한, 국내의 유통망 제한 등으로 수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가 시장개방이 이뤄진 후 급증했다. 이들 품목은 90년대 들어 일년에 50∼1백%의 수입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화장품과주류 담배 등이 전체 소비재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 들어 관세가 인하되고 국내 판매망이 구축되면서 이들 수입품이 전체 소비재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품질 상품이 설자리는 항상 있다시장개방으로 가전제품과 가구 골프용품 스포츠용품 등 사치성 소비재도 급증하고 있다. 고가 수입 의류의 인기도 시들 줄을 모른다. 이런 사치성 수입 소비재는 국산보다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는브랜드 이미지나 인지도가 국산보다 높기 때문에 선택되는 경우가대부분이다. 과시성 소비가 많다는 말이다. 선진국으로부터 수입되는 고가품과는 달리 국내 산업의 가격경쟁력저하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중저가품도 늘어나고 있다.의류와 신발 완구류가 대표적이다. 완구류의 경우 중국산이 전체수입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신발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수입품이 매년 늘고 있다. 의류의 경우 국내 의류업체가 인건비 부담으로동남아시아 현지공장에서 생산, 국내로 역수출하는 수입품이 전체수입품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생산을해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상황이 아주 암담한 것은 아니다. 소비재 수입품이 꾸준히늘고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는 사례는 많다. 우선 롯데제과의제크 비스킷을 들 수 있다. 94년말부터 리츠라는 수입 비스킷이 큰인기를 끌자 롯데제과는 리츠보다 더 깔끔한 맛과 먹기 쉬운 포장의 제크를 만들어 대항했다. 1년이 지난 결과는 제크의 대승리다.지난해 리츠는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고 제크는 히트상품으로 부상하며 비스킷시장을 거의 평정했다.완구류시장에서는 모닝글로리를 꼽을 수 있다. 모닝글로리는 품질과 디자인 고급화에 승부를 걸어 국내 문구류시장의 10%를 점하고있다. 일본에까지 진출해 일본 시장 공략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산이 위협하고 있는 완구류시장에서는 미미산업의 선전이두드러진다.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미미인형으로 미미산업은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10살 미만의 여자 어린이들에게 미미인형은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이제 수입자유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국내 시장 자체가 세계화됐고 국내 기업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직면했다. 무한경쟁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나름대로 모색해야 한다.롯데제과의 제크나 모닝글로리 미미인형 등 수입품의 기세를 꺾고꾸준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상품의 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한가지다. 품질과 차별화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이다. 화장품이나 의류의 경우 국산품이 외제에 비해 품질이 떨어져서 외면당하지는 않는다. 외제의 강점이라면 브랜드 이미지가 좋고 고급스럽다는점이다.완구시장과 신발시장의 경우 중국산과 동남아시아산 중저가품이 급증하고는 있지만 선진국의 고가품 수입도 그에 못지않게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이 무한경쟁시대에서 나아할 길은 품질 향상과 고급화밖에 없다. 소비자들에게수입품 구입 자제를 외치기 전에 기업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게 소비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