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굵직한 기업들의 부도로 은행이 멍들고 있다. 시장개방을 앞두고 힘을 키워도 부족한 판에 이리 물리고 저리 터지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결정타는 한보의 몰락이다.한보의 일부채권은행들이 정부의 「추가 자금지원」에 반발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미 한보에 물린 돈만도 감당키 어려운데 깨진독에 물붓기식으로 언제까지 계속 자금을 지원하느냐는 것이다. 제일은행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은행권이 한보에 추가로투입해야할 돈이 얼마가 될지 현재로선 알수없다』고 밝혔다.최근 한 신용평가회사는 시중은행의 실질적 부실여신은 은행감독원집계보다 5배이상 많은 13조원~15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96년말 현재 6대 시중은행의 부실여신규모는 1조5천7백64억원이다. 부실여신외에 6개월이상 연체된 여신까지 포함할 경우 불건전여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부실기업에 여신을 제공한 은행들이 속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같은 결과가 빚어졌는가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정치권의 실세와 은행장, 관련기업인의 연결고리가 속시원하게 밝혀지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한보의혹수사가 마무리되고있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몇몇비리와 연루된 은행장과 「깃털」들이 구속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5조원 대출에 책임질 사람을 찾아야한다.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도 최근 사설에서 한국의 관치금융관행이한보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정책금융에 길들여진 기업과 한국의 은행들은 주체적으로 경영을 하지못하고 은행장들은 정치권의눈치를 보는데 급급한 실정이다.노태우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도 정책금융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보철강의 경우 투자규모에 비춰볼 때 아무리 이익을많이 내도 자본비용을 메우기 힘든 상황에서 은행에서 수조원의 자금을 투입했으니 한국 은행들의 명예는 곤두박질치게 됐다. 이번한보사태로 무디스와 S&P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관련 은행들에대한 신용도를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깃털」들 구속으로 구조적문제 해결될까?은행부실의 또다른 요인으로 은행장의 전횡을 꼽을수 있다. 정치권이나 권력핵심의 도움으로 은행장에 오르면 대출결정부터 은행인사권까지 쥐고 흔들게 된다. 오직 권력실세의 눈치를 볼 따름이다.무리한 대출이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경우처럼 대출규모가 불어날수록 물리는 액수도 커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비화된다. 은행장이 계속 외풍에 시달릴 경우은행경영이 정상화되길 바랄수 없다. 은행부실은 국가 전체의 부실에 따른 것이고 기업부실이 은행부실을 촉발시켰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60년대들어 급속히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자금 초과수요 현상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 점이 없지않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금리도 하락하는 추세이다. 자본자율화가 진행돼 능력만 있으면 외국에서 저리의 자금을 얼마든지 끌어쓸 수 있다. 은행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있다는 얘기다.은행마다 서둘러 종합건강진단을 받아봐야한다. 체면에 얽매여 쉬쉬하며 이번 사태를 덮고 넘어가면 도산하는 은행도 나올수 있다.금융개혁위원회도 우리 은행들이 처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개혁 스케줄을 마련해야한다. 은행들의 체질개선이 먼저고 그 다음 합병등을 유도하는게 바람직한 방향이라는게 은행관계자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