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자기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무엇일까. 사업아이템을 잘 선정하거나 창업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하는 것, 든든한 후원자를 발견하기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있다. 서울 망원동에서 「마스타 바게뜨」라는 건강빵집을 운영하는 황태건씨(37)는 예상외로 건강을 제일 먼저 꼽는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30여 종류의 빵과 과자를 구워내서 판매하려면 무엇보다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샐러리맨생활을벗어나려면 가급적 마흔살 이전에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황씨는 인하대 중문학과를 졸업한 89년부터 지난해 11월 1일 사표를 낼 때까지 줄곧 대한항공에서만 근무했다. 퇴사당시 직책은 화물영업본부 과장. 처음 기계공학을 전공하다 다시 대입시험을 쳐서중문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동료들보다 2~3년 늦게 사회에 진출한것이 직장생활 내내 부담으로 와 닿았다. 물론 40세 이전에 자기사업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입사초기부터 품고 있었다.이같은 구상이 먹거리장사로 구체화된 계기는 지난 91년부터 93년까지 2년간 대한항공 타이베이지점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중국인들의 외식문화를 보면서 먹는 장사는 결코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들었다. 특히 패스트푸드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을 보고 국내에서도성장가능성이 좋겠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베이커리를 택한 것은 우연적인 요소가 강하다. 빵을 유별나게 좋아한 부인 강상희씨(33)와즐겨 먹다보니 『이왕 시작할거라면 맛을 감별할 줄 아는 빵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부인도 좋아하는 일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용기를 북돋워줬다.황씨는 사표를 내기 두달전부터 제빵학원을 다니면서 기술을 배웠다. 학원과는 별도로 직접 제과점에서 한달간 현장실습도 했다. 밀가루를 조달해서 반죽하여 빵을 만드는 전과정과 빵을 소비자에게판매하는 기법 등을 체험했다. 마침내 사표를 내고 지난해 12월17일 「마스타 바게뜨」망원지점을 오픈했다. 베이커리 운영경험이없는 위험부담을 줄이고 또한 건강빵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는판단아래 체인점을 선택했다. 8평규모의 베이커리를 여는데 모두6천만원이 소요됐다. 퇴직금(2천만원)과 27평규모의 목동 APT를 매각한 후 전세금을 제외한 3천만원 그리고 은행에서 1천만원을 대출받았다. 6천만원중 「마스타 바게뜨」체인본부에 기계설비와 인테리어 재료보증비 명목으로 3천만원을 납부했다. 나머지는 가게보증금으로 2천만원, 팝콘기계 아이스크림용 냉장고 등 기타 장비를 구입하는데 지출됐다.처음 한달간은 학원에서 실습하던 것과는 달리 원하는 대로 빵이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밀가루반죽이 손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고객들의 반응도 좋아졌다. 특히 고객층의 특성을 연구한 끝에 개발한 즉석빵이 예상밖으로 반응이 좋다고 주변 상인들이 빵을 간식이 아닌 점심이나 저녁식사용으로 찾는것을 보고 쇠고기를 다져 넣은 버거류나 숯불고기 샌드위치 등을개발한 것도 주효했다.현재 남자 종업원 한명과 황씨의 인건비, 원재료비와 임대료 그리고 기타경비 등을 맞추는데 필요한 일일매출은 40만원 선. 하지만아직 여기까지는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러나 황씨는 점차 주변 고객들에게 빵이 맛있다고 알려지고 있고 친구나 전직장동료들도 많이도와주고 있어 조만간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5년이내 독자브랜드로 중국시장을공략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비비토 서초점체인점 재고없어 좋아요서초동 신동아상가 1층에 자리잡은 어린이패션소품점 비비토 서초점의 이영숙씨(29). 이제 결혼한지 1년 된, 아직 깨가 쏟아지는 신혼의 초보주부지만 생활력에 있어서만은 프로다. 깔끔하고 밝게 치장된 점포에 들어서면 머리핀에서부터 가방에 이르는 1천여종의 어린이패션소품과 캐릭터용품들이 동화나라에 온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이씨의 전업은 패션코디네이터. 여성잡지와 방송국에서 모델과 가수들의 패션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그러나 『1년전 결혼을 하면서가정에만 있다보니 답답한데다 경제적 필요때문에 창업을 하게 됐다』고. 여기에는 남편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이씨의 말에 바로 소규모점포창업강좌의 수강권을 끊어다준 남편덕에 강의를 듣고 사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수강후 소품점을 할 계획으로 시장조사를 한 이씨는 이것저것 알아보던 차에 컨설턴트의 조언을 듣고 체인사업을 시작하는 비비토본사와 접촉해 지난해 11월에 점포를 열었다.개점을 하는데 들어간 돈은 실평수 8.5평 점포의 임대보증금 3천만원, 권리금 3천만원, 로열티 가맹비 인테리어비 초도상품비 등 본사에 들어간 돈 2천4백만원을 포함해 모두 8천여만원. 신혼이라 당연히 돈이 없었지만 시댁과 친정에서 돈을 빌리고 은행에서 융자를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마침 『가맹 1호점이라 본사로부터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주된 고객층을 초등학생에서 중학교1학년생까지 잡고 주변 아파트단지와 초등학교생을 중심으로 영업을 했다. 지금은 주변에 널리 알려져 『하루 평균 3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며 한달에 평균 3백만∼3백50만원 정도의 순이익』을 보는 안정궤도에 들어섰다.영업실적도 좋은데다 인테리어가 좋아 마침 명퇴바람이 불면서 생겨난 많은 예비창업자들이 본사의 권유로 직접 영업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들르는 곳이 되기도 했다. 『남편도 직장에 다니지만 이곳을 보러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명퇴가 무섭구나」하는 것을새삼 느꼈다』는 이씨. 이제 개업한지 4개월이 되는 이씨는 『경제적으로 수입이 확실해 살림을 안정적으로 꾸밀 수 있다』고 창업에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앞으로 지금의 점포를 발판으로 해 영업경험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체인점사업은 재고가없는 장점이 있는 대신 본사가 얼마나 좋은 물건을 뽑아내느냐가관건』이라는 게 이씨의 귀띔이다.◆ 김가네 김밥 덕성여대점좋은 재료 = 많은 손님새옹지마. 덕성여대 정문 못미쳐 자리잡은 「김가네 김밥」 덕성여대점 문미숙씨(40)의 경우가 그렇다. 문씨가 처음 가게문을 연 것은 지난해 5월. 부업삼아 김밥전문점을 하기로 맘을 먹고 시작했다. 이전에 한번 이용한 적이 있는 김가네 김밥점이 떠올랐다. 본사와 접촉하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부업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어가는 돈은 만만치 않았다. 동생에게 돈을 빌리고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융자를 받아 그럭저럭 자금을 마련했다. 처음에 들어간 창업비용은 약 7천만원. 건물보증금 2천만원, 점포권리금 1천5백만원, 인테리어비용 1천3백만원, 본사가맹비 5백만원, 간판비 3백만원, 주방시설비 4백만원, 초도재료비 2백만원, 물품보증금 2백만원 등이목돈으로 들어갔다. 영업장소는 여대에 다니는 동생의 조언을 듣고덕성여대 앞으로 정했다.막상 문을 열자 주고객인 여대생들로부터 반응이 좋았다. 휴일에는데이트족이나 산행을 나온 사람들로 가게가 붐볐다. 젊은층의 취향에 맞게 샐러드김밥 못난이김밥 카레김밥 등 10여종류의 김밥과 분식류가 입맛을 끌어당긴 것이다. 게다가 밝고 깔끔한 실내분위기도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았다. 덕분에 하루 매상이 평균 50∼60만원선을 유지하고 한달 수익이 평균 4백만∼5백만원까지 올랐다. 김밥전문점의 평균마진은 약 40%.그러나 문씨의 경우 약 30%정도. 『맛을 위해 재료를 아끼지 않기때문』이라고. 처음 몇개월간 영업을 하면서 『음식업을 하려면 끈기와 인내심 있어야 한다는 점을 특별하게 느꼈다』는 문씨의 가게는 차츰 매상이 오르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김밥전문점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남편이 14년간 몸바쳐온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한다. 남편의 명퇴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기가 막혔다』는 문씨. 『가슴 한구석이가라앉는 것 같았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자신이)돈을 버니까 약간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그러나 남편의 퇴직은 다시 복을 불러온다. 바로 퇴직금이다. 『당시 퇴직조건이 좋았다』고 말하는문씨는 남편이 받은 약 1억원의 퇴직금으로 부담이 됐던 빌린 돈을먼저 갚았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진 남편도 가게에 나와 일을 돕기도 했다. 얼마간은 가게에서 버는 돈으로 살림을 꾸렸다. 그러다남편을 체인점개설때부터 눈여겨 본 본사사장의 권유로 남편은 관리본부장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퇴직금으로 가게를 마련한 셈이고 남편의 고정적인 수입도 생겼으니 오히려 지금은 돈이 불었고경제적으로도 나아졌다』는 게 문씨의 새옹지마다.◆ 미다래 충무로점길게 보고 장사하라서울 충무로 전철역 부근에서 일식집 「미다래」를 운영하고 있는최연철씨(43)는 요즘 매사가 즐겁다. 지난 94년 8월 동신방직 영업과장을 끝으로 시작한 일식집이 정상궤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13평 규모의 일식집에 하루 평균 4백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94년 9월 사업을 시작하면서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4천만원도 거의 다 상환했다. 무엇보다 직장다닐 때 앓았던 만성두통과 시력감퇴현상이 말끔히 사라졌다.사업시작 3년만에 비교적 안정을 누리고 있는 최씨지만 출발은 여느 샐러리맨들과 똑같았다. 동일방직에서 10년간 근무했지만 갈수록 동료들과의 승진경쟁을 의식해야 하는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면방업계에 불어닥친 불황으로 대대적인 감원이 불가피한 추세였다. 최씨는 여러 주변 정황을 고려한 끝에 샐러리맨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부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표를내던졌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중 미다래 본점을 운영하던친구 처남의 추천으로 일식점으로 결정했다. 사업경험이 없는 초보자에겐 먹거리 이상 좋은 것이 없다는 판단과 일식점이란 전문성으로 일반 음식점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작용했다.업종 선택이 끝나고 나서 착수한 것은 위치 선정. 「먹는 장사는목싸움」이라는 말처럼 좋은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서 3개월간 서울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충무로의 현재 가게를 발견하고도 1주일간 바깥에서 시간대별 요일별 고객움직임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충분히 승산있다고 확신이 들자 권리금이 다소 비싸더라도 과감하게 투자했다. 권리금 6천만원을 포함해서 보증금(2천만원) 인테리어와 주방용기 (2천만원) 등 1억원이 소요됐다. 창업자금은 퇴직금과 우리사주 판매대금 4천만원, 집을 팔아 2천만원, 금융기관에서4천만원을 차입해서 조달할 수 있었다.최씨는 개업하면서부터 홍보전단을 들고 충무로 일대의 대기업본사와 인쇄업체, 기획업체들을 일일이 방문했다. 경비원한테 수도없이쫓겨났지만 그래도 몸과 마음은 회사다닐 때보다도 훨씬 즐거웠다.『내사업이다』라는 생각에 힘든 줄을 몰랐다. 물론 실패를 생각하면 암담했지만 애당초 세밀하게 조사하고 준비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최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 미다래는 충무로 일대에서 꽤 알려졌다. 5천원 미만의 가격으로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할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최씨는 분석한다. 물론주변에 난립한 한식집, 분식집과 구별되는 일식집이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다.최씨는 자기사업을 하고자 하는 샐러리맨들에게 『결코 단기간에승부를 걸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어느 사업을 하든지 안정을찾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과욕은 금물이라고 충고한다.그래서 초기부담을 줄이기 위해 창업자본중 타인자본의존도를 가급적 낮추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먹거리 장사를 시작하려면 일식집부대찌게 설렁탕 등 특정분야에 특화하는 것이 좋다고 경험담을 들려준다. 또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목을 잘 잡는 것이 성공의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