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로 은행은 물론 은행장들의 이미지는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터무니없는 대출을 해준 것도 이해가 가지않는 판에 수억원의돈을 받은 은행장도 생겨났으니 말이다. 정태수총회장으로부터 대출커미션을 받은 혐의로 우찬목 조흥은행장과 신광식 제일은행장이지난 5일 구속됐다. 비록 검찰에서 무사방면되긴 했지만 김시형 산업은행총재, 장명선외환은행장 등도 앞날을 장담할수 없게 됐다.둘다 올해가 임기만료라 연임에 대한 희망을 버려야할 처지다.은행장들이 이같이 험한 꼴을 당하자 「은행장은 파리목숨」이라는비아냥도 나왔다. 그러나 이들을 구속하는 영장에 잉크가 채마르기도 전에 극단적인 경우가 생겨났다. 신한은행은 신행장과 우행장이철창으로 향하던 지난 5일 확대이사회를 열고 라응찬 행장을 차기행장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시중은행에선 처음으로 3연임은행장이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상업은행도 13일 정지태 행장을 3연임행장리스트에 올려놓았다. 파리목숨만 같던 은행장 수명이 어느새 「장수」로 돌변했다. 금융계는 연타석으로 등장하는 3연임 은행장을 놓고 「은행장 수명도 하기나름」이란 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부는 철따라 계절따라 은행장을 희생양으로 갈아치웠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록수처럼버텨냈다. 이유는 간단하다. 탁월한 경영능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먼저 라응찬 신한은행장을 보자. 나행장은 59년 4월 농업은행에 입행, 발을 들여놓은후 대구은행, 제일투금을 거쳐 82년 신한은행 상임이사로 옮겼다. 그로부터 10년후인 91년부터 행장직을 맡아오고있다. 어쩌면 우연이랄까. 신한은행은 91년부터 6년연속 은행감독원 경영평가에서 「최우수은행」을 차지했다. 순이익규모도 늘 1,2위권에서 맴돌고 있다.신한은행의 성공비결로는 여러가지가 거론된다. 다른 시중은행과는달리 재일교포출신들이 47%의 지분을 갖고있는등 확실한 경영주체가 있는데다 이희건회장이라는 걸출한 「바람막이」가 있다는 점이우선 꼽힌다. 또 후발은행인 탓에 경제개발의 짐을 떠맡지 않아 부실발생요인이 그만큼 적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모두 옳은 분석이다.◆ 합리적 경영으로 대출청탁등 거절그러나 신한은행의 성공비결을 논하려면 나행장의 뛰어난 경영능력을 빼놓을수 없다. 나행장의 경영스타일은 합리적인 것으로 정평이나있다. 인사는 물론이고 대출청탁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예를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보그룹에 물린 신한은행의 부실채권이30억원에 불과하다는게 단적인 증거다.나행장은 성실함의 대명사로도 통한다. 고졸(선린상고)출신으로행장에 오른 입지전이 그렇고 폭넓은 대인관계가 그렇다. 물론 나행장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95년말 비자금사건으로곤경에 몰리면서 최대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간의 경영성과를 인정해주는 정부와 금융계의 도움으로 나행장은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모두 경영을 잘한 덕택이었다.이 점에선 정지태 상업은행장도 마찬가지다. 정행장은 93년 1월 취임이후 한양부도 등으로 위기에 빠진 상업은행을 3년만에 정상으로끌어올렸다. 93년당시 상업은행은 7대시은중 업무이익·당기순이익최하위였다. 반면 부실여신은 최대였고 주주들에 대한 배당을 한푼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정행장은 취임 첫해 한양을 주택공사에 성공적으로 넘기고당초 97년까지로 예정돼있던 자구노력을 2년 앞당겨 95년말 완료했다. 상업증권을 3천5백억원이라는 높은 값을 받고 제일은행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선발 시중은행중 당기순이익 2위와 부실여신 최소를 기록,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금은 당당히 리딩뱅크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대형은행치곤 한보그룹에 물린여신이 거의 없어 다른 은행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정행장은 신상필벌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잘못을 범했을 경우 엄중히 문책한다. 한양부실 혜화동지점사건 등으로 얼룩지고 낮아진 생산성등의 문제를 원칙경영이란 해법으로 풀었다. 그래서 그는 원칙주의자란 소리를 듣는다.정행장의 이런 노력은 지난해 「상복」으로 나타났다. 10월 29일저축의 날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2월엔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최고경영자대상을 받았다. 한국천주교회는 가톨릭실업인대상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상복의 결정체는 3연임으로 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