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여가수 마돈나가 출연하는 대작 <에비타 designtimesp=4640>가 장안의 화제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아르헨티나 영부인의 자리에까지오른 에바 페론의 삶을 담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것이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두가지 모습으로투영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성녀로 보지만 또 한편에서는 온갖 사치를 다 부리며 아르헨티나의경제 몰락을 부추긴 악녀로 평가한다.◆ 개발국 외자는 산업 일으키는 종자돈영화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가득한 영국국기가 휘날리는 저택에서 에바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배고픈 것은 너희들 때문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사라져 버리고 정원이 텅 비는 것이다. 페론 정부가 아르헨티나 국민과 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외국 기업을 아르헨티나에서 몰아냈던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처럼 6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은 민족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외국 자본을 몰아냈던 때가 있었다.20∼30년이 지난 현재 중남미 국가들의 상황은 바뀌었다. 서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듯 노력하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선진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외 자본을유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5년간 동독 지역에만 1조달러(약 8백조원)를 쏟아부어도 끄덕없는 세계 3대경제대국 중의 하나인 독일조차도 외국 기업 유치에 국력을 쏟고있는 것이다. 투자기업에 대한 토지의 저렴한 임대, 투자 비용 보조, 환경부담금 경감, 세금감면, 고용 안정, 직업 훈련을 통한 질높은 노동력 제공 등을 내세우고 있다.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한 산업 및 경제 활성화 효과를 충분히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각국이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고는 있지만외국 자본 도입에 관한 문제는 음양 양면을 가진 「뜨거운 감자」다. 너무 많아도 문제, 너무 없어도 문제다. 외국 자본 유입에 대한 논의는 특히 감정적으로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는더욱 다루기 곤란한 문제다.어쨌든 최근 세계 각국이 외국 기업의 자국내 진출을 반기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세가지다. 선진 외국 기업으로부터 신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고 고용 창출 효과로 인해 지역 경제가 부흥하며 외국자본이 투자됨으로 인해 국제수지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 등의 장점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외국 자본은 산업을 일으키는 종자돈(시드머니)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많은 동남아시아국가들이 외국 기업의 자본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중국이개방 정책을 폄으로써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진 외국 기업이 진출함으로 인해 지역 경기도 활기를 띠고일자리도 늘고 산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서비스업 투자건수 많아 소비수준만 높아져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즉시 송금하고 진출국에 재투자되지 못할 경우 외국 자본은 결코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특히 외국 자본에 대한 종속이 심해지면서 자립 경제의 기반이 흔들릴 정도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라면 또다른 문제가 있다. 국내 생산을 늘리는 역할이 아니라 소비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할 경우에는 어쨌든 공장이 설립되고 제품이 생산돼국내 생산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러나 서비스 자본일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유통업이나 음식점업 숙박업 등과 같은 서비스 자본의유입은 국내 생산을 촉진시키기 보다 국내 소비를 촉발시킨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우리나라는 높은 지가와 고금리, 행정규제 등으로 외국 기업이 투자하기 꺼리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국내 기업들조차도 사업하기 힘들다고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판이다. 그럼에도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은 꾸준히 늘어난다.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다.생산기지로는 「빵점」인데 소비시장으로서는 더없이 좋다는게 외국 기업들의 판단인 듯 하다.특히 89년 이후 외국 서비스 관련 투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정부의「도소매업 3단계 개방계획」의 영향이 컸다. 국내 유통시장은81년 7월부터 96년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개방돼 왔다. 81년7월에 처음으로 단일품목을 취급하는 점포규모 1백평 이하의 도소매업체에 대해 외국인 투자가 허용됐다. 82년에는 단일품목을 취급하는 2백평 이하의 도소매업체로 매장 규모가 넓어졌다. 84년에는취급 품목 제한이 철폐되고 매장 면적도 7백㎡ 미만으로 확대됐다.그러나 이런 허가 조치들은 사실상 서비스 관련 외국 자본의 국내유입을 막는 것이었다. 매장 규모와 점포수가 제한됨으로써 선진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하는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정부의 이런 금지 조치들은 88년 「3단계 대외개방계획」이 수립되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89년에 외국기업 국내지사의 수입판매업종이 확대됐고 91년에는 소매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선별적으로 허용됐다. 또 한 회사당 매장 면적 1천㎡ 미만에 점포수 10개까지 가질 수 있게 됐다. 91년 허용 조치에 따라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도 직매장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 틈에 샤넬 에스티로더등 외국 화장품회사와 휠라 베네통 등의 의류업체들이 국내에 직접진출했다.93년에는 유통업에 대한 투자제한을 대폭 축소, 이전까지 「무엇무엇만 허가한다」는 포지티브시스템에서 벗어나 「무엇무엇만 안된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투자제한이 바뀌었다. 이 조치로 네거티브 리스트에 속하지 않는 유통 관련 업종이 대폭 개방됐고 매장면적과 점포수도 한 회사당 3천㎡ 미만, 20개까지로 확대됐다. 마지막 허용 단계가 96년의 유통시장 전면 개방이었다. 점포수와 매장면적에 대한 제한이 완전히 철폐됐다. 현재 남아있는 제한은 백화점과 쇼핑센터에 대한 직접 진출과 몇몇 도소매업종들이다.외국인이 매장을 갖는데 규제를 뒀던 지금까지의 정부 조치는 외국의 유통업체 뿐만이 아니라 직매장을 가져야 하는 여러 소비재 기업들의 진출도 막아왔다. 화장품 의류 외식업체 등이 대표적인 예다. 96년 이전에는 외국인이 매장을 갖는데 여러 가지 제한이 많아서 매장을 가져야 하는 외국 기업들은 주로 국내 기업에 라이선스권을 주거나 국내 기업과 합작하는 형태로 진출했다. 이제 매장 면적과 숫자에 대한 제한이 없어짐에 따라 많은 외국 기업들이 직접진출 쪽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서비스 분야에 대한 외국 자본의 급격한 증가가 국내 경제에 대해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실히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국의 영화사들이 국내에 직접 진출, 직배 체제로 돌아선 후 국내 관람객들이직배 영화를 보기 위해 낸 관람료의 절반은 고스란히 미국에 송금된다. 폴리그램 등 음반사와 암웨이 등 다단계판매회사도 마찬가지다. 투자 효과나 경기활성화에 기여하는 면은 거의 없는 반면 국내소비자들의 주머니돈을 털어 외국에 내보내는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하고 있다.물론 국내에서 판매는 물론 생산도 하며 현지화하는데 주력하고 직매장을 설치, 선진 유통 노하우를 전수하는 소비재 또는 유통 관련외국 기업도 많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보다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건수가 많고 또 계속 늘어난다는 것은우리의 소비수준만 턱없이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유통시장 개방과 외국 서비스 자본의 유입은 시대적 흐름이고 또많은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머니만 털어 외국에 갖다바치는 꼴이 돼서는 안된다. 「생산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소비 시장으로는 최고」인 투자지역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독일인이 놀기만 좋아해 오락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독일헬무트 콜 총리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