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교 30돌이었던 지난 95년 한국의 LG경제연구원과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는 공동으로 양국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일본 비즈니스맨들중 가까운 장래(5~10년)에한국이 일본경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란 응답이 34.5%나 됐다. 나아가 이미 위협적인 존재라는 응답도 28.6%로 상당히 높았다. 일본비즈니스맨들은 한국이라는 이웃나라에 대해 상당한 경계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일본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는지는 알수 없다.매년 한해의 무역수지를 정리할 무렵이 되면 대일무역적자는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인양 줄어들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훌륭한 활약상을 보이는 한국업체들이 유달리 일본내에서는 힘을 쓰지못한다. 한국의 수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불가피하게 늘어난다는 구조적인 한계론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메이드 인 코리아」는 일본시장에서 위상이 드러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다.과연 일본시장을 뚫고 들어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경비즈니스는이번 기획취재에서 일본에 높은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기업관계자들에게 이같은 방안에 대해 문의했다. 그 결과는 일본시장이라고특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곳이란 생각을 버리고 비즈니스와마케팅의 기본기에 충실한 전략을 펴면 얼마든지 일본시장도 뚫을수 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일본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시장공략의 포인트는 △철저한 현지화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철두철미함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진실된 자세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현지인 구별없이 채용·제품 규격화철저한 현지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현지인 고용이다. 한국에서파견된 영업사원이 일본시장을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언어상의 문제도 발생할 뿐 아니라 상거래의 관행이나 문화의 차이에서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을 파악하는데는 같은 일본인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한국업체로는 유일하게 일본백화점에 의류를 입점(入店)시키고 있는 데코의 곽승민과장(해외사업본부 일본담당)은 『선진국에서 옷이라고 하는 것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이를 재빨리 파악,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많은 일본인 직원들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지사장을 제외한 전직원이일본인이다』라고 말했다.데코는 자신들의 제품이 들어가는 일본내 각 매장과 한국본사를 통신망으로 바로 연결해 현지에서 주문한 옷은 전혀 재고가 없는 디자인 제품이라도 5일이내에 배달해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퀵 리스폰스(Quick Responce)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한국GMB의 구봉집 상무도 『외국에서의 영업에는 아무래도 현지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며 『재일한국인, 일본인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채용한다』고 말했다.정안농산의 김용운 사장은 『한국사람은 김칫국를 먹으면서 「얼큰하다」 「시원하다」는 표현을 쓰지만 이것이 무슨 맛인지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마찬가지로 일본시장에서 김치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은 어떤 맛을 보기위해 김치를 사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결국 그 결론은 「담백함」이기에, 가능한 한 매운 맛을 억제하고빠른 납품으로 신선함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설명이다.또 한동기계의 임동희 사장은 『모든 제품이 마찬가지겠지만 공업제품에는 일본만의 규격 표준이라는 게 있다』며 『이같은 수출현지의 표준화문제를 제품생산에 반영시키면 생산원가를 낮추고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인, 직접 방문 시험·시장조사후 결정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철두철미함은 일본인들의 민족적인 특성과도 관계가 있는 지적이다. 그들은 이어령 교수가 분석했듯 축소지향적이고 작은 것도 꼼꼼히 따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일본으로수출을 하면서 통관과정에서의 철저한 검사는 이번 기획취재의 대상이었던 모든 업체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었다. 묘비석을수출하는 동일석재의 오찬규 과장은 『당초에 주문했던 모양이나재질에서 조금만 차이가 나도 바로 클레임이 걸려온다』며 『제품한두개라도 「바꿔주면 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전했다.컨트롤센서를 수출하는 오토닉스의 박환 기 사장도 『워낙 품질관리를 엄격히 요구하기 때문에 일단 일본시장에서 합격한 제품이라면 어느나라에서도 합격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또 업체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자신들이 직접 제품생산과정을 보고 성능시험을 거쳐본 후에도 서너차례의 검토를 거칠 정도여서 처음 거래를 트는데 다른나라 업체에 비해 월등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였다. 소프트맥스의 정영희 사장은 『이쪽에서 충분한자료를 제공했음에도 직접 방문해 시험을 하고 한국의 시장조사를통해 가격 등을 검토해본 후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클린룸장비를 수출하는 신성이엔지의 박노웅 과장도 『기술개발이후 일본업체보다 월등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실험결과를 계속 보냈지만 별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결국 직접 바이어들을 불러들여 눈앞에서 실험과정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납기엄수에서 품질약속까지 믿음이 우선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비단 일본시장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상거래에서 특징적인 것중하나가 지속적인 거래이다. 기본적인 납기엄수에서 품질약속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줄 수 있는 지속적인 관리는 필수적이다. 진로저팬의 김태훈지사장은 『일본은 유통구조가 폐쇄적인 것으로 정평이나있는 동네로 한국업체들은 대개 초기에는 작은 규모의 유통업체와 손잡고 일본시장을 뚫어가지만 좀 된다싶으면 보다 규모가 큰유통업체로 바꿔버린다. 그러나 이내 소문이 나 버리고 거래못할회사로 찍혀 더 이상 시장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작은 유통업체라고 해도 유통업체와 함께 성장해간다는 자세로나가야 한다는 얘기다.필터제조업을 하는 (주)우다의 김호경 사장은 『일본인들은 초기에외제에 대한 반감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한번 사용해서 우수성이인정되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며 『거래처든 소비자든 일단 신뢰를 갖게 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납기를 지켜야한다는 주문은 모든 업체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물론 일본업체중에는 거래결정과정이 너무 복잡한 곳이 많고 한국제품에 대해 이유없이 품질이 나쁠 것이란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도있다. 그러나 철저히 원칙을 지키려는 특성이 강하며 비즈니스의기본원칙을 충실히 따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같은 기본원칙에맞춰주는 일이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