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오너라도 경영사령탑을 2세에게 그냥 물려주는건 아니다. 친자라는 명분외에 알파가 더해져야 한다. 알파란 다름아닌 경영자의자질과 덕을 말한다. 그래야 사령탑이 바뀌어도 경영공백없이 회사가 뻗어나갈 수 있다. 섣부른 「2세체제구축」은 자칫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 오너들이 자식들의 경영수업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재계의 별들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경영자의 조건을 완벽히 갖춘2세를 양성, 자신의 옆에 두길 바란다. 회사를 꾸려가는데 그이상든든한게 없다고 한다.가장 일반적인 오너들의 후계자 양성코스는 해외유학을 마친 2세를서둘러 입사시켜 핵심부서 업무를 익히게 하는 것이다. 실무도 익히고 대인관계에 대한 노하우도 가르치려는 의도이다.◆ 현대그룹, 현장·실무위주로 경영수업지난 95년말 현대자동차총수에 오른 정몽규회장(35)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회장은 용산고 고려대 경영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을졸업한 후 지난 88년 현대자동차에 대리로 입사했다.물론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정회장은입사후 4년동안 회계 기획 생산관리 자재 등 주요부문에서 탄탄하게 기초를 닦았다. 정회장은 92년 부사장으로 승진, 부장회의를 주재하는 등 경영전면에 나섰다. 그는 임직원들로부터 「옥스퍼드 신사」답게 깔끔한 매너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필요할때면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경영자로 통한다. 재계는30년가량 현대자동차를 이끌어온 부친의 자상한 경영수업덕택에 연간매출 13조원의 대기업을 무난하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차남 선협씨(29)도 최근 대우자동차에 입사, 화제가 되고 있다. 보스턴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선협씨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부설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유있게 경영수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룹관계자는 선협씨의 입사가 꼭 경영수업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올들어 성우그룹의 경영사령탑을 맡은 정몽선회장(44)도 바닥부터경영수업을 받은 전천후 경영인이다. 중앙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지난 78년 현대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정회장은 현대건설 등에서 현장경험을 쌓으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81년에는 미국하트포드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정회장은 84년 현대시멘트전무이사로 선임됨으로써 후계자의 위치를 다지기 시작했다.이후 90년 이후 현대 성우리조트설립을 진두지휘하는 등 성우그룹의 출범과 성장을 주도했다. 성우그룹관계자는 정순영 명예회장이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을 펼쳐와 경영수업도 현장과 실무위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흔치는 않지만 연고가 전혀 없는 기업에 입사했다가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회장의 장손인 제일제당 이재현부사장(37)은 경복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후 지난 83년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그후 그는 제일제당 경리과장 관리부장을 거쳐93년 삼성전자 이사로 자리를 옮겨 기획파트에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선대회장은 재현씨가 씨티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는사실을 알고 서둘러 삼성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독립되며 제일제당에 상무로 컴백한 삼성가의 장손인 이부사장은 영상 금융 통신업에 높은 관심을보이며 도약을 꿈꾸고 있다.효성그룹 조석래회장의 장남인 현준씨도 그룹과 무관한 외국계회사에 다니고 있다. 현준씨는 그동안 미국 예일대와 일본의 게이오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효성울타리밖에서 충분한 사회경험을 쌓은 후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회장은 현준씨를 품안에 안고있지는 않지만 경영감각을 다양하게 익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있다.2세이면서 그룹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별도의 회사를 이끌면서 경영감각을 쌓는 경우도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제지고문의 장남인 조동혁사장(47)은 한솔흥진의 경영만을 맡고 있다.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되기전까지 한솔흥진은 삼성소속이었으나 분리이후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주사업은 의료기기 무역 및 빌딩임대관리이다. 그는 그룹의 성장 발전을 위해 합류했지만 그룹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계획이라고강조했다. 조사장은 미국 미들베리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 고려흥진(현 한솔흥진)을 거쳐 94년엔 부친인 조운해씨의 뒤를 이어 고려병원이사장을 맡기도 했다.해외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고 화려하게 입성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신동빈씨는 노무라증권등에서 경영수업을 쌓다가 그룹 경영을 직접 챙기기 위해 귀국했다. 롯데측은 『경영수업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재계에서는 신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서고 낯선 국내사정을 익히려는 다차원적인 포석으로 보고 있다.선경그룹 최종현회장의 장남인 최태원상무(37)는 신일고와 고려대물리학과를 졸업한후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91년미주 경영기획실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최상무는 91년 SKM기획부장, 92년 선경 부장, 95년 이사로 근무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받아왔다. 그는 지난 94년부터 그룹 신규 사업개발팀장을 맡아 선경그룹이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상무는 주로 경영기획실과 신규사업을 맡아 회사전체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력 쌓고 국내 입성하기도선경그룹의 창업주인 고 최종건회장의 차남인 최신원 (주)선경부사장(45)도 81년 선경인더스트리 인사과에서 일한 이후 82년부터87년까지 8년동안 뉴욕사무소에서 광범위한 실무를 익혔다.현대그룹 정몽구회장의 외아들 정의선씨(26)도 미국 일본에서 경영수업을 닦고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올가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MBA 과정을 마치게 되는 정의선씨는 일단 종합상사 정공자동차 등 계열사의 미주지사를 두루 돌아다니며 1, 2년 실무를 익힌 다음 일본지사에서 3, 4년 근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를 빼닮은 외모를 지닌 의선씨는 5년정도의 기간을 두고 해외에서 일하며 국제감각과 실무를 익힐 계획이다.이밖에 오너 2세중에는 그룹의 핵심부서로 곧바로 입성하는 사례도적지 않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최종환 명예회장의 바통을이어받은 최용권 삼환그룹회장(48)이 그 케이스이다. 경기고와 미국 보스턴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최회장은 지난 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 사장 등을 역임하며 후계자수업을 받아왔다. 최회장은 동남아 사우디 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실무를 쌓는 등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금융전업그룹인 대신그룹도 오래전부터 차남 양회문부회장을 승계구도로 확정하고 경영수업코스를 받게 하고 있다. 양부회장은 지난75년 대신증권 공채 1기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이사 등 모든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 승진해왔다. 이밖에 중견그룹인 세풍의 고대원부사장(33)은 곧바로 경영일선에 나서며 공격적인경영스타일을 펼쳐보인 사례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고부사장은창업자이자 조부인 고판남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재계의 한 관계자는 후계자가 어떤 자질을 갖추고 경영사령탑을 맡느냐에 따라 그룹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오너들은 2세들에게 예전보다 한층 냉혹한 경영수업을 강요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