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사회단체가 서울에 있는 여자중학교 한 곳을 골라 장래희망 직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중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가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30%에 가까운 학생들이 지지표를 보냈다는 소식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줄곧 반면 1위였던 교사는 여기서한참 처져 2위로 내려앉는 수모를 당했다. 약사 등 다른 고상한(?)직업들도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청소년들의 직업관이 근본적으로바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설문내용은 달랐지만 지난달 말 한 여성단체가 중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연예인이 이들의 행동이나 패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중학생 10명 가운데7명이 가요프로그램에 나오는 스타를 보고 최신유행을 배운다고 대답, 크게 달라진 세태를 반영했다.스타를 꿈꾸고, 스타를 닮으려는 것은 이들 중학생만이 아니다. 신세대들은 누구든 한번쯤 그런 희망을 가져보는 게 요즘의 분위기다. 심지어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도 연기학원을 들락거린다. 지난해 한 케이블TV방송이 주관한 미시탤런트 선발대회에는 무려 1천5백여명의 주부가 스타의 꿈을 안고 몰려들었다. 무시하듯 내뱉던딴따라라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한번 스타의 길에 들어서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기본이다. 보통 사람이 평생 걸려얻을 것을 단 한방에 벌수도 있다. 명예와 인기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어디를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의대상이 된다.연기학원에 신세대들의 발길이 몰리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연극영화과는 대학의 최고 인기학과다. 대학에 따라 약간씩다르지만 줄잡아 50대1이 넘는다. 방송국의 탤런트모집에는 아예수천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룬다. 방송국 문턱이 닳을 정도다. 경쟁률만도 수백대 일에 이른다. 낮게는 2백대 1에서 높게는 6백~7백대1에 이른다. 합격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아예 공개모집 때마다 시험을 치는 스타신드롬 추종자도 부지기수다. 연예고시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공식적인 통로는 아니지만 음반기획사나 광고에이전시에도 스타를꿈꾸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명 기획사에는 하루에도몇통씩 자신을 키워달라는 편지가 날아든다. 노래를 직접 불러 녹음한 데모테이프도 수시로 전달된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아예사무실로 쳐들어와 담당자 면담을 요구하는 대담성을 발휘하기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능력있는 사람은 일정한 훈련기간을 거쳐대중 앞에 나서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상품을 만들듯이 지망생을 조련해내는 방식이 유행병처럼 번지면서 스타만들기의 새로운유형이 관심을 끌기도 한다.◆ 스타등극의 주인공은 ‘신의 아들’?그러나 이런 공식, 비공식 등용문을 통과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해도 스타로 성장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한해에 20명 안팎을 선발하는 방송사 탤런트시험의 경우 잘해야 1~2명만이 주연급으로 성장한다. 여의주를 잡을 확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나머지 18~19명은 단역에 머무르거나 아예 말을 바꿔타야 하는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스타등극의 주인공을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원자가 물밀듯 밀려드는 것은 역시 제대로만 풀리면 상상도못했던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연예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각광을 받는 것도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스타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방송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연예산업은 이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분야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덩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외형 면에서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이파악하고 있는 연예산업의 시장규모는 어림잡아 10조원대. 영상산업 3조5천억원을 비롯 해 방송 대중음악 영화 패션 등의 연예 관련분야를 합칠 경우 그 정도는 충분히 된다는 계산이다.현대 대우 등 대기업들이 연예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만 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안고 앞을 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특히 삼성은 얼마전 인기절정의가수 엄정화를 영입, 대기업의 매니지먼트 시장 진출에 새로운 획을 긋기도 했다. 다행히 엄정화는 삼성의 기대대로 <배반의장미 designtimesp=5120>로 빅히트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대기업들도 매니지먼트사업의 잠재력을 믿고 가능한 한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그러나 연예산업 열풍의 현장 한켠에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스타 우상화 풍조다.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스타를 부모나 스승보다 더 중요시 한다. 아예 지방에서무작정 상경, 스타의 얼굴 한번 보고자 주변을 배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번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발표를 했을 때 청소년들이 보여주었던 집단행동은 이런 단적인 예다. 전문가들은 스타를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너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한탕주의를 염려하는 의견도제기된다. 최근의 연예계가 지나치게 한건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정신의학자인 이신배 박사는 『스타신드롬이 일고 있는 것은 시대 흐름상 당연하지만 최근의 경향을 보면 과열된듯한 느낌이 든다』며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통해 이러한 잘못된사고방식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