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업 애니메이션을 기획-제작한 업체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대개가 일본 아니면 미국의 업체들이다. 「일본과 미국에 이어 한국이 제 3위의 애니메이션 제작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숫자의 장난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한국이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은 거의 전부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제작물량은 일본과 미국의 이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사정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전세계의 상업 애니메이션 시장의 90% 이상은 일본과 미국 업체들이 양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애니메이션은 상업적/비상업적, TV용/극장용/광고용으로 나눠지고제작 방식에 따라서도 셀 애니메이션과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으로구분된다. 일본은 특히 상업 애니메이션과 셀 애니메이션에 대단히강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나 유럽 등에서는 뜻있는 작가들이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고 광고를 수주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예술작품을 만들곤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경우를 보기 드물다.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규모는 1천5백억엔(1조2천억원)대에 달한다. 여기에는 TV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제작 및 배급수입, 비디오용애니메이션의 유통, 광고 및 교육용 애니메이션 등이 포함돼 있다.그러나 연간 2조엔 가까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캐릭터 상품시장과 4천억엔 규모의 게임시장 등 애니메이션 연관 시장까지 모두 합칠 경우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일본 업체들은기본적으로 TV 시리즈물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TV가 흑백이었던시절에는 컬러영상을 주무기로 삼는 극장개봉용 대작의 비중이 컸지만 TV의 컬러방송이 가능해진 다음부터는 TV 시리즈물이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의 주수입원이 됐다.◆ 주제가 음반판매 수입 무시못해한편의 상업 작품을 기획할 때에는 다양한 사안들이 검토된다.TV용 시리즈물일 경우 방영 시간대와 시청자의 연령층에 맞춘 기획검토가 시작된다. 만화나 소설 등 기존의 작품을 이용할 것인가,오리지널 창작물로 나갈 것인가, 스폰서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등의고민 끝에 다양한 기획안 중 하나가 선정되고나면 그 다음에는 TV방송에 스폰서로 참가하는(TV 광고를 내보내는) 업체들과 함께 머천다이징이 시작된다. 새로운 시리즈가 방영되기 약 1개월 전부터출판매체 및 방송을 통한 작품의 예고가 시작되고, 장난감이나 과자, 학용품 등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 디자인을 응용한 캐릭터 상품들의 제작이 시작된다.이리하여 본방송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방송 시작과 끝, 그리고 도중에 들어가는 광고를 통해 캐릭터 상품들의 선전이 이루어진다.같은 시간대에 강력한 라이벌 방송이 없고 사전 홍보만 일정 수준으로 이루어지면 첫 방송은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거둔다. 그렇기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은 특히 시리즈 1회와 2회에 많은 예산을 책정하여 뛰어난 질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한다. 처음 2주간, 혹은 1개월간 시리즈를 시청한 시청자들이 작품 내용에만족하면 기본적인 시청률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 스폰서 업체들은 새로운 방송의 인기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사의 마케팅 전략에 이를 이용한다. 앞서 언급한 캐릭터 상품의 제작은 당연히 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 자사 광고 모델로 방송중인 작품의 주인공을 이용한다든지, 기타 제품의 판촉행사나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해당 작품을 응용한다는 식이다. 시청률만 높다면 새로운 스폰서가 참가하기도 하고 공익광고 등을 통해 예상 외의 수익을 거두어들이기도 한다.주제가 역시 중요한 「상품」이다. <들장미 소녀 캔디 designtimesp=5103>의 주제가음반이 1백만장을 돌파한 이래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음반중 밀리언셀러가 눈에 자주 띄고 있다. 일본의 레코드 시장은 5천억엔(4조원)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따라서 음반의 판매에 의한 수입도 무시할 수 없다. 80년대 들어서부터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작품중에 사용된 배경음악까지담아서 음반을 판매하는 경우도 눈에 띄며 인기 작품의 배경음악은방송국에 관계 없이 제작 중인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모습을 볼수있다.보통 TV 시리즈물 기획은 6개월분, 총 26회를 기본 단위로 이루어진다. 이는 전세계 방송사들이 모두 행하는 봄·가을 방송 개편에맞추기 위한 것이다. 첫 방송이 시작되는 자국내 방송국에서의 시청률이 높을 경우 방송이 시작된지 3개월 가량 지난 시점에서 시리즈물을 반년가량 더 늘리는 식으로 조금씩 기획을 변경하기도 한다. <드래곤 볼 designtimesp=5106> 시리즈는 1986년 방영을 시작하여 반년씩 시청률분석을 기초로 한 방송국과의 협의를 통해 방영기간을 반년씩 늘려10년을 넘긴 케이스다.반대로 시청률이 기대 이하로 저조할 경우에는 급히 기획을 변경하여 2주~1개월 가량 일찍 종영시킬 수도 있다. 지금은 불후의 명작처럼 일본에서 떠받들려지고 있는 <우주전함 야마토 designtimesp=5109>의 경우가 그랬다.TV 시리즈의 시청률은 방영기간을 결정하고 방영기간이 길다는 것은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해당 작품의 상업적 가치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스폰서는 장수시리즈를 원하겠지만 로봇 장난감을 만드는 업체는 6개월 단위나1년 단위로 새로운 시리즈가 자꾸 창출되어 새로운 로봇 장난감을만들어 매출 확대를 원하기도 해 스폰서마다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일본에서의 TV용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연간3백50억엔(2천6백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TV 애니메이션을 제작, 방송국에 판매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애니메이션 업체들의주수입원은 아니다. 스폰서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과 캐릭터 사업을 통한 수입이 업체의 주된 수입원인 것이다.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업체인 도에이동화가 1993년 매입한본사 건물은 「세일러 문 빌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세일러 문 designtimesp=5112>이라는 TV 시리즈의 히트 이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택에 도쿄 시내에 빌딩까지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일러 문 designtimesp=5113>상품의 라이선스 계약 기업은 일본 국내에만 1백개 업체가 넘으며아이템 수는 1천2백종류를 넘는다. 이런 식으로 일본 국내에서 캐릭터 상품이 형성하고 있는 시장은 그 규모가 2조엔(약 16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TV시리즈 인기따라 방영기간 결정컴퓨터 및 비디오 게임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일본의 비디오 게임은 3천5백억엔(약 3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컴퓨터 게임까지 합치면 게임 시장의 규모는 4천억엔을넘는다. 게임 역시 인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이용할 경우 판매율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기존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방영을 시작한 TV 시리즈물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인기를 확보하면극장용 작품의 제작이 신중하게 검토된다. 극장용 작품은 주어지는제작 환경에 따라 러닝타임이 5분, 30분, 1시간짜리 등으로 다양한데 보통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들의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 전후다.극장물은 대형화면과 시간당 더욱 많은 제작비를 들인 고품질 영상, 그리고 TV에서는 볼수 없었던 새로운 스토리 등을 무기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극장용 작품은 극장의 흥행수입을 통해 기본적인제작비를 충당하고 이익은 TV 시리즈에서는 볼수 없었던 새로운 등장인물이나 로봇, 우주선 등을 머천다이징에 활용해 벌어들인다.러닝타임 30분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4편 제작하여 동시상영하는 식의 영화상영도 이루어진다. 한번 극장에 들어가면 2시간동안 4가지작품을 보도록 한다는 것이다. TV 시리즈의 제작과 극장용 작품의제작을 통해 거두어들이는 기본적인 수익은 투자비용 회수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수익을 남기는 것은 영상물의 1차 유통 이외의 영업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스폰서들이 거두어들이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 외의 새로운 스폰서를 잡거나 자체적인 영업활동에 의한 캐릭터 산업의 확대가 필요하다. 새로운 캐릭터 상품의 개발 및 판매를 할 업체의 수를 늘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한번 방영되었던 작품의 2차 유통도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난청지역 문제 때문에 NHK 이외에는 전국 방송이 불가능한 일본에서 인기작품이 언론이나 PC 통신, 인터넷 등을 통해 소문이 퍼지면 이를보고 싶어하는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이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비디오와 지역 민방, 케이블 TV이다. 특히 비디오는 수집 대상이되기 때문에 상당히 큰 시장을 형성한다. 비디오용 애니메이션은출하액을 기준으로 5백40억엔(4천3백20억원)대의 시장을 형성하고있으며, 이중 절반이 TV 시리즈를 비디오로 만든 애니메이션 유통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작품의 2차 유통은 중요한 수입원으로 자리잡고 있다.이미 제작된 애니메이션 작품의 해외 판매도 전통적으로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를 잡아오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전세계를대상으로 애니메이션을 판매하는 수출국이다.◆ 만화주인공 가면무도회 ‘커스춤 플레이’ 개최TV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에서 비롯되지 않은 독자적인 기획을 통해만들어진 작품도 물론 있다.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매년 1편씩만들어내고 있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튜디오지브리가 제작한 작품은 일본 국내에서만 개봉되는데도 불구하고관객동원만으로도 수익을 남길 만큼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들극장용 작품 또한 사전홍보와 마케팅 계획에 많은 공을 들인다.TV에 비해 불리한 점은 TV 방영은 기본적으로 6개월간 할수 있지만극장 상영은 1개월 전후이기 때문에 작품이 캐릭터 상품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지명도가 높은 원작(특히 만화)을영화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극장 상영이 끝나면 해외 수출을 꾀함과 동시에 반년에서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자국 내에서비디오로 출시하고 또 시간이 더 지난 다음에는 TV로 방영되도록한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의한 배급수입은 연간 90억엔 (7백20억원)이다.TV용작품이 매주 연결되는 것처럼 극장용작품에 시리즈 개념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없지 않았으나 극장용 작품을 한편 제작하는데에걸리는 시간이 길고 관객들이 반년이나 1년 전의 내용을 기억했다가 연결지어서 보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대부분 실패했다. 90년대 초에 일본의 극장에서 개봉되었던 삼국지 시리즈는 흥행에서 실패했고 그 뒤 TV로 방영됐던 삼국지 시리즈는 성공적이었던 것이대표적인 사례다.또 일본에서 처음 상업성이 인정된 비디오 애니메이션 (OAV,Original Video Animation) 역시 상당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있다. TV나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 출시용으로 직접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TV와 극장이 소화해내지못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는 니치(Niche)성에 있다.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 영상물 유통과 캐릭터 산업 뿐만 아니라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회와 테마파크, 음반과 콘서트, 관광 산업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로 애니메이션의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주인공으로 분장, 가면무도회의 분위기를 내는 「커스춤 플레이」는 일본에서 시작되어지금은 미국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만화클럽들이 창작 만화집을 판매하는 「코믹 마켓」은 매번 1백만명 이상의 참관객을 동원하는등 자생적인 시장도 생겨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작품에 관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것 또한 이러한 범주에넣을 수 있겠다.물론 작품을 창작해 팬을 만들어내고 관련 시장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크레용 신짱 designtimesp=5132>(한국명 <짱구는 못말려 designtimesp=5133>)의 판권을가지고 있는 반다이의 경우 크레용 신짱 관련 캐릭터 상품의 매출액이 93년에는 1백70억엔을 넘었으나 다음 해에는 30억엔으로 급감했다. 캐릭터 비즈니스는 영화 흥행이나 TV 시청률 경쟁만큼이나부침이 심하고 예측하기도 어렵다.해외에서의 애니메이션 마케팅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치밀하게 전개된다. 일본 국내용과 해외용의 기획을 따로 한다든지 국내용으로 만들어진 내용을 해외 수출시에는 약간 변형시키는 등의 노력도 가해진다.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어린이 방송극인 <파워 레인저 designtimesp=5136>의 경우 일본 국내에서의 시청률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로봇의 격투장면만 그대로 사용하고 배우를 미국인으로 교체해서 다시 녹화한 결과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미국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은 처음 1년간 10억달러에 달할 정도였다.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들이 상업적 성공에 매번 실패하는 이유중하나는 마케팅 미숙에 따른 부분이 상당히 크다(물론 외국에 비해형편없는 작품수준도 한 몫 했겠지만). 따라서 작품 질의 향상 뿐만 아니라 마케팅 능력의 배양에도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