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뼛주뼛하게 일어선 머리카락. 유순하거나 순박해 보이는 대신 뭔가를 추구하는 듯한 강렬한 눈매. 외모에서 느껴지는 것만으로는개그맨이라는 직업이 갖춰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오히려 총기가 넘치는 패기만만한 얼굴이다. 「행시출신의 개그맨」이란 꼬리표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노정렬(26)씨. 사람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얼굴이 전혀 희극적이지 않다고 말하자손을 내젓는다. 『개그는 개구(開口)다. 얼굴로 하는 게 아니라 기발하고 번뜩이는 재치를 갖고 코믹하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강변한다.여의도 방송가에서 「깔끔하고 쓸만한 개그맨」이라는 소리를 듣는노씨가 개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해 7월. MBC 개그맨공채시험에 합격하면서다. 개그맨이 되자마자 신문과 방송의 집중적인조명을 받았다. 「MBC 코미디언실이 생긴 이래 가장 빠르고 화끈하게 뜬 신인」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서울대 신문학과 졸업, 대학재학중 행정고시합격. 언뜻 보기에 어깨에 힘깨나 주는 사람의 이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고시합격생이개그맨시험을 통해 이른바 「딴따라판」이라는 연예계에 뛰어들었으니 그 자체가 관심이었을 것』이라는 게 노씨 나름대로의 짐작이다.◆ 연수도중 ‘끼’ 꿈틀 … 개그맨 ‘동경’대전에서 태어나 고교(명석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신문학과에 입학한 게 지난 89년. 여느 대학생들처럼 인문대 연극반이었던 「연극극회」와 풍물패활동 등 교내활동에 몰입하면서 대학시절을 꾸미는데 충실했다. 재학중 군에 입대한 노씨는 군제대후 복학할 때까지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응시한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95년의 일이다. 자긍심만으로도 배가 부른, 장미빛 미래를 그리던 시절이었다.『평생 안정된 직장을 얻은 것 같은 안도감을 가졌다. 그때만 해도개그맨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그러나 행시합격후 들어간 연수에서 생각이 바뀌고 노씨의 「끼」는 꿈틀거린다. 『연수도중에 평생 몸을 담기에는 공무원사회가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연수도중 휴직원을 제출하고 개그맨시험을 준비하는 「사고」를친다. 『방송에서 개그맨출신으로 사회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대본에 정해진 것만이 아닌, 자유스런 대사를 즉흥적으로 할수 있는 가장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라는 생각으로 동경심이 생겼다』고. 이때부터 소재개발을 위해 후배들에게 개그재료를 공모하고TV의 코미디프로를 모니터하는 등 주변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라면무조건 챙겼다.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보다도 더 힘들었고 노력도훨씬 많이 했다』고 말할 정도다.결국 원하던 개그계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고마움을 다른 데에 돌린다. 『행정고시를 패스한 제자가 개그맨이 되겠다는 소식을듣고 연예매니지먼트사에 소개시켜준 대학은사(박명진교수)와 매니지먼트사의 도움이 컸다』고. 특히 노씨는 매니지먼트사인 디지탈미디어(주)에 대해서는 남다른 고마움을 표현했다. 『매니지먼트사에서 방송용 개그에 대해 많이 배웠다. 재야(아마추어 시절)에서익힌 투박한 개그들을 방송용으로 갈고 닦아 세련되게 만드는데 큰도움을 받았다.』데뷔후 MBC-TV의 「일요일 일요일밤에」 「웃는 세상 좋은 세상」「웃으며 삽시다」, MBC 라디오의 「황인용의 FM 모닝쇼」 「엄길청의 손에 잡히는 경제」, 케이블방송인 동아TV의 「쇼 미시공화국」 등 마당을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특히 「웃으며 삽시다」에서는 「노정렬의 데드라인」이라는 고정코너를 맡기도 했다. 방송가에서 신인에게 출연자나 진행자의 이름을 건 코너를 주는 것은 파격적인 일. 그만큼 방송사측의 기대가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3회만 방송되고 「노정렬의 데드라인」은 폐지된다. 『최선을 다했지만 드라마스타일로 포맷이 바뀌면서 코너가 사라졌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다시 그런 코너가주어진다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노씨의 말이다.6개월간 시사개그코너를 맡았던 「황인용의 FM 모닝쇼」도 애착이많이 갔던 프로그램.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덩달아 흥이 나서 새벽 2∼3시까지 원고를 쓰고 소재를 찾는 등 노력도 많이 했다』고. 이때 방송한 원고를 모아 얼마전에 「말하면 뭐해 속만 상하지」라는 시사개그칼럼집도 냈다. 지금은 MBC-TV의 「테마게임」과「오늘은 좋은 날」에 출연중이다.최근에 코미디프로그램을 보면 시사개그나 스탠딩개그 등 순발력과기지를 필요로 하는 코너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하나의 초미니코믹드라마를 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드라마화하는 경향이다.물론 여기에는 탤런트·가수 등이 코미디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기는 등 영역파괴가 이뤄진 점도 작용하고 있다. 『개그맨으로서 시사개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강하다고 생각한다』는 노씨로서도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코미디의 생명은참신한 아이디어와 순발력, 재치와 기지가 넘치는 대사나 연기다.여기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코미디프로가 모두 드라마화하는 경향이다. 주어진 대본에 따라 착실히 연기를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연기자나 스태프들 모두가 힘을 덜 들이고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촌철살인의 맛은 없는 것 같다』는 게노씨의 말이다.◆ 고정수입 없는게 흠, 일에대한 만족도 높아연예인들은 대중들로부터 얻는 인기를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는 일종의 자양분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항상 대중의취향에 민감하고 그것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인기없는 연예인이란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중과의 접촉이 매스미디어시스템자체에서차단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가 곧 「인기」인 셈이다. 예외일 수는 없다. 『데뷔 초반에 받은 과분할 정도의 관심이 사실부담이 됐다. 이를 극복하는데 반년이상이 걸렸다』는 노씨. 자신에게 쏠렸던 관심을 『거품』이라며 『지금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만큼 의지와 노력도 남다르다. 『화장실에 가서도아이디어로 고민하고 보다 튀는 것을 찾으려고 하루종일 머리를 짜내고 있다』고 말한다.남을 웃기는 게 천직이라지만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연예인은 자유직업인만큼 고정수입이 없다는 게 어려움이다. 그런 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가계를 꾸려나가는 아내가 고맙다』고. 이 말에 바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수입이 어떻게 되느냐」고. 사실 일반인들이 연예인들에 대해 가장궁금해하는 부분중의 하나가 수입이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지금은 방송출연료가 전부라고 할 수있다. 공무원일 때 받던 봉급보다는 많지만 지금 잘나가고 있는 스타들에 비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은노씨에게서 겨우 끌어낸 답이다.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행시를 보고 만족감을 느낀 것 보다 개그맨이 된 뒤에 느낀 만족감이 크다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만족보다는 하고있는 일에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진정한 프로만이할수 있는 생각이다.데뷔 1년을 갓 넘긴 햇병아리 개그맨이지만 나름대로의 방송생활관도 「튼튼」하다.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리던 때에 비해 지금은시절이 변했다. 지금도 무엇보다 「끼」가 중요하지만 끼 못지 않게 공인으로서 스스로를 잘 추스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지론이다.끝으로 앞으로 바라는 것을 묻자 거침없이 나온 대답. 『무엇보다도 대중성과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린 시사토크쇼를 진행하고 싶다.이를 위해 결코 조급해하지 않고 장래를 길게 보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