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정보를 돈으로 바꾸려는 농가」. 지난 95년 충북 진천군 농촌지도소가 농민들에게 배포한 한 자료집에 실린 내용이다. WTO로농업시장이 개방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농민들에게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철학과 농업경영관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세계속의돈 잘 버는 농가 10계명」의 한 계명이다. 온통 천수답으로 하늘만보고 농사를 지었던 옛날과 달리 수시로 일기예보를 접할 수 있는요즘에도 역시 「하늘의 조화」는 돈을 주고 살 정도로 중요하다는것이다.비단 농업 뿐만이 아니다. 『경제와 기상이라면 예전에는 농업 수산업 등이 주체였지만 이제는 기업경영의 과정에서 기상정보를 단계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게 기상청 한관계자의 말이다. 기상정보가 산업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활용하면 봄바람이지만 무방비이거나 잘못 예측했을 경우 태풍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고도화·정보화되어도 하늘을 읽는 세련되고 정확한 눈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업계, 특히 가전·빙과·건설·유통·레저업체 등에서는 「하늘을 제대로 읽어야 시장을 잡는다」 「날씨가 영업상무」 라는 둥 날씨의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날씨가 ‘영업상무’실제로 날씨가 기업경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감초처럼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지난 94년 가정용 에어컨시장에 처음진출한 만도기계다. 당시 만도기계의 위니아에어컨상품개발부는 일본기상청의 장기예보를 일본의 한 기상정보전문업체로부터 입수했다. 그해의 여름날씨가 유난히 무덥고 오래 갈 것이라는 것이다.에어컨판매에서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5∼20% 수준이라는게 업체들의 평가. 그러나 이상고온현상과 같이 기상이 평년과 달리 급변하면 최고 40%까지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92∼93년만 해도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됐다. 94년에도 기상이예년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그러나 입수한 기상예측을 정밀분석한 만도측은 무더운 여름날씨가계속되면 에어컨수요도 늘 것으로 판단하고 과감히 생산량을 늘리고 판매전략도 새로 수립했다. 에어컨에 필수적인 냉매컴프레서도집중적으로 구입했다. 반면에 기존의 에어컨제조업체들은 계속된경기불황으로 재고물량이 누적된데다 2년간 계속된 여름철 이상저온으로 생산물량을 줄였다.만도측의 예상은 적중했다. 봄이 끝나자마자 이상고온현상이 나타났다. 서울의 기온이 연일 34℃를 웃돌고 열대야현상이 계속되는등 폭염이 계속됐다. 덩달아 에어컨수요가 폭증했다. 만들자마자무섭게 팔려나가는 에어컨으로 만도의 생산라인은 쉴 틈이 없었지만 냉매컴프레서를 확보하지 못한 다른 업체들은 손을 놓을 수밖에없었다. 시장진입 첫해에 판매계획에 비해 50% 이상이나 더 판매한만도의 「위니아신화」는 이렇게 생겨났다. 이때의 쓰라린 경험으로 L사의 경우 1억원의 비용을 들여 미국 일본 등 기상예보 선진국으로부터 전세계 주요도시의 여름철 날씨정보를 수입하며 또 다른가전업체인 S사의 경우 일본 오키나와와 괌기지의 날씨자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기업들에 기상정보의 중요성을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음료나 빙과류 호빵 등과 같은 계절상품을 만드는 제과업체들도 기상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날씨가 70%, 경기가 30%의 비율로 작용한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올 정도다. 특히 6∼8월까지 3개월간의매출이 연간총매출액의 40% 정도를 차지해 한철 장사로 1년을 버틴다는 말이 나오는 빙과류의 경우 기상정보에 더욱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날씨가 나쁘면 하루 평균매출액이 4억∼5억원에 불과하지만 무더운 날씨일 경우 30억∼45억원까지 급등하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빙과류는 온도에 따라 잘 팔리는 제품도 조금씩 차이가난다. 25℃ 이하에서는 콘, 25∼30℃에는 바, 30℃ 이상에는 펜슬형제품이나 샤베트 빙수 등이 잘 팔린다는 것이 빙과업체들의 분석이다. 그만큼 기온 1℃의 차이에 따른 판매전략도 세분화된다.때문에 보다 정밀하게 미래의 날씨에 가장 근접하기 위해 외국의기상정보를 활용하거나 자체정보와 취합해 날씨를 예측한다. 이러한 기상예측은 제품개발과 판매에 곧바로 연결된다. 롯데제과의 경우 일본기상청의 자료를 근거로 과거 10년간의 기상정보데이터를구축해 해당연도와 가장 비슷한 연도의 기상추이를 기본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해태제과의 경우 외부기상자료에 자체적으로 데이터화한 기상자료를 혼합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빙그레의 경우해외기상정보를 이용하고 있다.◆ 기온 1℃ 차이 판매전략도 세분화날씨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확인되면서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기상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의 경우 기상정보와 판매정보를 POS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점포에 제공하고 있다. 일부 편의점은 자체적으로 기상과 판매에 따른 조사를 하기도 했다. 대구백화점의 경우 날씨가 추워지면 음식코너를, 더워지면 반소매셔츠와청량음료매장을 확대하는 탄력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부산 현대백화점은 지난해에 「기상에 따른 매출추이」라는 조사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 의류매장의 경우 전체적으로 매출이감소했으며 특히 남성복과 여성복은 맑은 날에 비해 30% 정도 떨어졌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유통업체 뿐만이 아니다. 비가 오면 울상을 짓던 레저업체도 적극적인 기상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에버랜드의 경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빌려주고 색깔에 따라 시설물 무료이용 등 혜택을 제공하는 레인마케팅을 선보였다.날씨가 경제현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기상예측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특히 기상이변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정확한 기상예측의 중요성은더욱 커지고 있다. 기상청 산업기상과의 이종국과장은 『농업 항공해양 수산 유통 건축 레저 등 기상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산업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각 기업체들의 기상정보에 관한 관심이나 활용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주)기상정보센터의 김가연상무도 『의류 빙과 전자회사 등에서 장기기상예보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현재계약을 맺고 장기적인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없지만 앞으로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생산 판매 등에 가장 필요한 장기예보의 경우 아직 미국 일본 등 기상예보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게 현실. 그래서 『과거의자료와 현재의 기상예보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분석해 미래의 기상을 예측하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게 이과장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