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안들이나오고 있다. 그러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시간이 가면서 경제문제가 정치문제 내지 사회문제처럼 흘러가고 있는 점이다.제3자 인수설과 같은 음모론이 매스컴에 공공연히 등장하고 이를받아서 갖가지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들을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민운동은 국민의 뜻을 실었다는 공개질의서를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고 있다.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시민운동은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리라추측된다. 게다가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특정인을 겨냥해서 행해지고 있는 정부 때리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없다.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고심하고 있는 문제가 경제문제인지 아니면정치문제인지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기아그룹의 어려움을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가 이제 경제문제조차 정치적인 해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변모해 가고 있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문제가 얼키고 설킨 실타래 처럼 보여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때면, 우리는 정확한 원칙을 갖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매사를 편법과 편의에 따라 접근하다 보면 항상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이번 일 역시 시장경제원리라는 명확한 잣대를 갖고 해결책을 찾으면 문제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같은 원칙을 적용하다 보면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서운한 점과 분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그러나 경제문제란 늘 얽히고 설킨 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갑에게 혜택을 주다 보면 을에게 손해를 입히는일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잣대를 갖지 않는다면 매번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우선 시장경제원리라는 것은 자기 선택과 책임을 뜻한다. 때문에채권은행단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자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경영의 승패는 누군가 책임을 지는데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경영을 이끌어 왔던 사람들이 어떤형식으로든지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의 형식은 이해당사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다음으로 필요한 일은 구조조정이 채권단이 인정할 정도로 추진돼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에서 특정집단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실질적인 임직원의 감원이 불가피할 것이다. 여기서 노조 무력화와같은 정치적인 구호를 앞세우기 이전에 노조도 기업의 어려움에 책임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노조 문제란 원래 내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6일 한중앙일간지에 실린 박찬영씨의 글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우리모두가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같은 생각을 공유하는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노조측은 무분규 선언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반발했지만, 이것이바로 오늘의 기아사태의 절반을 책임져야 하는 기아 노조의 모습이다. 노조는 지나치게 회사의 인사권과 경영권에 간여하면서 매년노사분규에 앞장서 왔다. 대기업 노조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설마우리를 도산시킬 수는 없겠지」하는 것이다. 이 점을 믿고 심한 투쟁을 일삼아 임금은 미국 수준까지 올려 놓고 생산성은 일본의 절반 수준으로 버티는 것이다. 이들 기업에 시장경제원리를 철저히적용하지 않는한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려울 것이다.』다음으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일은 사업활동에 절실히 요청되지않는 부동산 등의 자산매각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본사의 매각이 포함돼야 하는 것은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어느 것 하나 아깝지 않은 건물, 땅, 그리고 계열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과감한 자산매각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산처분 과정에서한시적으로나마 정부가 도움을 줄수 있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관치금융이라는 한계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관련 금융기관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기아에 대한 요구와 비슷한 구조조정책들이 금융기관에서도 실시돼야 할 것이다.이같은 조치들이 시행된다면 정부는 관련기업들을 돕기 위해 재정자금의 지원과 같은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자금의 지원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이기 때문에 충분한 합의와 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