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 최대의 라이벌 현대와 삼성, 삼성과 현대. 이 두그룹은과연 기아자동차를 사이에 놓고 격돌할 것인가.기아그룹의 최종 운명이 아직 결정이 되지 않은만큼 속단할 순 없는 문제다. 그러나 두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우선 기아그룹이제3자 인수의 길을 걸을 경우 이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현대와 삼성 뿐이라는 것. 또 하나 삼성과 현대가 붙으면 양쪽 모두에게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이유는 분명하다. 기아그룹의 향배는 한국 재계의 맞수 현대와 삼성, 삼성과 현대간의 불꽃 튀는 1, 2위 경쟁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아그룹을 둘러싸고두 그룹은 지금 자존심을 건 한판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실제로 기아자동차를 삼성과 현대, 현대와 삼성 둘중의 어느 그룹이 인수하든 그 그룹은 재계 1위의 자리를 완전히 굳히게 된다.작년말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총자산은 75조2천8백7억원.58조1천2백억원의 현대그룹을 누르고 삼성은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보험회사등 금융계열사의 자산을 제외하면 현대가52조7천8백38억원으로 삼성(45조9천73억원)을 제치고 수위다. 부채 성격의 금융사 자산을 포함시키느냐 여부에 따라 총자산 1위의자리가 바뀐다. 다시말해 금융자산을 포함하면 삼성이 1위지만 순수한 자산 개념으론 현대가 일등이란 얘기다.◆ 현대 인수시 외형상 삼성보다 20조 앞서매출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금융사를 포함한 총매출은삼성(71조96억원) 현대(69조7천62억원)순이다. 하지만 금융사를 제외한 매출규모는 꺼꾸로 현대(67조9천6백39억원)삼성(55조8천6백23억원) 순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현대에 비해보험 등 금융계열사들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 그래서 업계에선 현대와 삼성중 어떤 그룹이 재계의 진정한 1위냐 는데 대해 논란이 일곤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30대그룹별 자산과 매출은 금융부문을 제외하지만 그룹별 전체 외형규모를 비교할땐 금융을 포함시키기 일쑤여서 더욱 헷갈린다. 언론에서 현대와 삼성, 삼성과 현대의 순서를 경우에 따라 달리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국 재계의 양대 산맥인 현대와 삼성, 삼성과 현대간의 서열이 아직 명확히 결정되지 않았다는 말이다.그렇지만 기아자동차가 삼성과 현대, 두그룹중 하나로 편입될 경우이런 혼선은 완전히 없어진다. 기아자동차를 가져가는 그룹이 당연히 1위가 된다. 기아자동차의 자산은 6조9천4백47억원, 매출은 6조6천71억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현대와 삼성그룹 간의 순위 각축에막을 내리게 하고도 남을 덩치다.기아자동차가 현대로 갔을 때를 보자. 현대그룹은 금융사를 제외한자산과 매출이 각각 59조7천8백12억원과 74조5천7백10억원으로 불어난다. 삼성을 완전히 2위로 따돌리는 것이다. 이 경우 현대와 삼성간의 외형규모 격차는 20조원에 달한다. 30대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현대의 자산비중도 현재 15.9%에서 18%로 신장해 명실상부한재계 1위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삼성으로선 좀처럼 역전시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셈이다.삼성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는 어떤가. 금융사를 뺀 삼성그룹의 자산은 52조8천5백20억원으로 현대(52조7천8백38억원)를 앞지른다. 매출의 경우 62조4천6백94억원으로 그래도 현대(67조9천6백39억원)에는 못미친다. 그러나 내년부터 삼성자동차의 매출이 잡히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의 순위 역전은 충분히 가능한상황이 된다. 삼성으로선 재계 1위의 자리를 다질 수 있는 발판이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이뿐만 아니다. 삼성엔 기아자동차 인수가 또다른 특별한 의미를갖는다. 그동안 현대그룹에 비해 턱없이 취약했던 중공업 분야의기반을 탄탄히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현대와의 순위경쟁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삼성은 애초 물산(51년)과 제일제당(53년) 제일모직(54년) 등 경공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70년대 들어 중공업 건설 항공 등으로 눈을 돌리긴 했으나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삼성그룹의 최대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도 바로 중공업의 약세였다. 삼성이 여론의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사업에 신규 진출한 것도 바로이 때문이다.◆ 기아 인수땐 삼성 핸디캡 만회그러나 기아자동차의 인수는 삼성그룹의 이런 핸디캡을 단번에 해소해 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면 그룹 전체의 자산중 자동차 조선 항공등 운수장비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존의 20.8%에서 31.2%로 올라선다. 매출비중도 8.2%에서 두배 이상인17.9%로 늘어난다. 그룹의 사업구조 자체가 그만큼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는 삼성그룹의 향후 성장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기아자동차를 사이에 놓고 현대와 삼성이 초반부터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현대는 기아자동차의 삼성행을 저지하기 위해 「기아 살리기」에 적극 나섰다. 삼성도 현대가 기아를인수했을 때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다각도로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재계 수장(首長)을 자처하는 두 그룹의 보이지않는 자존심 대결이배경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얼마전 「삼성자동차 보고서」나 한보철강 인수 문제와 관련해서 현대와 삼성이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런 맥락이란 해석도 있다.물론 당사자들은 이런 개연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린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아자동차의 경우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처리돼야 할 문제일뿐 감정적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와의 인수경쟁에 대해선 『노 코멘트』라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지금은 기아의 정상화에 진력해야 할때』라며 『제3자 인수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엿보인다.그러나 기아자동차가 어디로 가느냐는 현대와 삼성, 삼성과 현대간의 위상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재계의한 관계자는 『기아자동차의 향배는 더이상 자동차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산업계의 판도 변화를 좌우할 수 있는 폭발력을지녔다는 점에서 재계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고 단언한다.지난 10여년간 조선 중공업 석유화학 반도체 금융에서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여온 삼성과 현대, 기아자동차가과연 두 그룹간의 재계 순위 경쟁을 판가름내는 결정적인 저울 추(錘) 역할을 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