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생산라인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팝송을 들으면서 일하는 근로자가 있다. 심지어 작업도중에 야구경기를 시청하는 근로자도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쉬엄쉬엄 놀면서 일하는데 회사가 무슨수로 살아남겠느냐.』최근 국내 어느 기업이 경영위기에 처하자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그럴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그는 경영위기의 책임을 근로자들에게 추궁하고 싶어 이런 얘기를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인력이 남아도는데도 회사가 손쓸 수 없다면 결과는 뻔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이 관리의 지적대로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점이 지금에 이르러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정부가 노동계의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3월 노동관계법을 전면개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정부로서는 기업의 경쟁력만 생각해서는 안된다.근로자들의 고용안정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노동행정을 맡고 있는 노동부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안정에 치중하다 보면 경쟁력이 약해지고 경쟁력을 앞세우면 고용불안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경쟁력·고용안정 함께 고려해야최근 비정규근로자가 늘어나면서 노동당국의 고민도 커졌다. 단시간근로자(파트타이머) 파견근로자 계약근로자 재택근로자 등 비정규근로자가 늘면 그만큼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불안해진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언제 밀려날지 모르기 때문.그렇다면 정부는 고용불안을 줄이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여의치 않다.이유는 간단하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것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비정규직을 줄이라고강요할 일이 아니다.노동정책의 큰 흐름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동법을 고쳐 고용조정(정리해고)을 허용한 것도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이미 계약직근로를 활성화하기위한 방안을 내놓았으며 근로자파견법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고용형태를 다양화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임시직 일용직과 같은 비정규근로를 촉진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 셈이다.계약직근로에 관한 정부 입장이 바뀐 것도 이같은 정책변화의 일환이다. 노동부는 최근 근로계약기간에 관한 행정해석을 변경, 계약기간을 1년이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판례를 받아들여1년을 초과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해도 계약이 유효하다고 보기로 한 것이다.근로기준법에는 정규근로자(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근로계약기간을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종래에는 계약직사원을 채용한 뒤 1년이 지나면 법률상으로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할 수 없었다. 이런 부담 때문에 계약직을 채용할 때 1년을 초과하는 장기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근로계약기간을 보다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계약직 채용도 활발해지게 됐다.파견근로제 역시 고용형태를 다양화하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정부는 지난 3월 노동관계법을 개정할 때 1년내에 근로자파견법을제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노동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에서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20만명에 달하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법 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의 입법 의지도 확고하다.노동연구원은 이와 관련, 최근 발표한 「노동시장 유연화방안」에서 파견근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용보호규제가강한 선진국에서도 이미 파견근로제가 입법화됐으며 최근에는 파견근로를 보다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법이 제정되면 근로자파견업이 양성화돼 상당수 정규근로자가 파견근로자로 대체될게 분명하다. 파견근로제의 장점은상황에 따라 인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점이다. 따라서 핵심부서가 아닌 지원부서의 일부 근로자를 파견근로자로 대체하는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다.정부의 고용정책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그러나 파견근로제 입법화에서 보듯 근로자를 보호하는데도 역점을두고 있다. 내년중 제정될 예정인 근로자파견법에도 차별금지를 비롯, 임금수준 근로조건 사회보험 등 파견근로자 보호조항들을 담게된다. 단시간근로자 보호방안은 지난 3월 근로기준법 개정때 이미마련됐다. 개정 근로기준법에는 단시간근로자를 근로시간에 비례해보호한다는 원칙이 명시돼 있다.◆ 교육훈련 지원·고용인프라확충 시급근로기준법상 단시간근로자란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당해 사업장의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1주간 소정근로시간에 비해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 이들에게는 근로시간이 현저히 짧은경우(주당 15시간 미만)가 아니면 근로기준법상의 각종 보호조항이 대부분 적용된다. 다만 퇴직금 주휴 연월차휴가만 배제된다.정부가 근로기준법에 이 같은 보호조항을 마련한 것은 최근 수년간단시간근로자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 지난 80년 23만여명이던 단시간근로자는 90년 46만여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7만여명에 달했다.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많은 편이 아니다. 주당근로시간35시간 미만의 단시간근로자가 총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0%.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 비율이 이미15~20%에 달했다. 다시말해 단시간근로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크다는 얘기다.비정규직이 늘어남에 따라 고용불안 해소방안도 절실해졌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만큼 재취업할 기회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실직 확률이 2.06%로일본(0.38%) 프랑스(0.34%) 독일(0.57%)보다 월등히 높다. 재취업할 확률(37.4%)도 일본(17.1%) 프랑스(3.4%)독일(9.0%) 등을 능가한다. 이처럼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점이미국경제의 강점이다.우리 정부가 실직자를 위해 마련해 놓은 방안은 크게 2가지. 통상적 지출을 계속하며 구직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소극적 방안과 손쉽게 재취업할 수 있도록 취업을 돕는 적극적방안이 있다.지난해 7월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실업급여는 이제 정상궤도에 들어섰다. 비자발적 실직자는 지방노동관서에 신고함으로써 구직기간중일정액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적극적 지원책으로는 실직자 또는 실직예정자가 창업교육이나 재취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교육훈련비를 지원하는 방안, 고용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그러나 이같은 지원방안들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고실업시대를 맞아 앞으로 보강해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비정규직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다. 서비스업 비중이커지고 여성 취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책이 이 추세에 뒤처지면 근로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실직자들은 거리를방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