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계속되면서 취업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근로자는 줄고 있는반면 비정규직근로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고용불안으로 치부해야 할까, 아니면 하나의 흐름으로 보아야 할까?종전에는 기업체의 감원대상이 주로 생산직이었다. 원인은 생산설비의 「자동화」. 생산현장의 단순한 작업을 자동화설비가 이어받음으로써 단순한 과업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인력의 설자리가 자꾸좁혀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이트칼라에게도 자동화에 필적하는 괴물이 나타났다. 「정보화」의 흐름이다. 정보화가 추진됨에따라 종전의 화이트칼라가 수행해 온 단순·반복적인 과업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정보나 업무의 흐름을 중심으로 화이트칼라의업무를 재설계하는 방안이 리엔지니어링 또는 리스트럭처링이라는이름의 괴물이다.리엔지니어링이든 리스트럭처링이든 그 제도의 핵심은 필요한 부문또는 고부가가치업무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저부가가치업무나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없애는 일이다. 상식대로라면 불필요한 부문의 인력을 삭감하고 필요부문에 대해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신 등 특정부문에서는 사람을 구하기가힘든 반면 어떤 부문에서는 남아돈다. 왜 이러한 상황이 생기게 되었는가?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상품의 수명주기가 단축되고, 경영다각화에 의해 신규사업에참여하는 기업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 역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즉 새롭게 진출한 사업부문의 인력은 양성되지 않아 항상 부족하고, 사양업종에 종사하는 인력은 일자리가 자꾸 없어지게 된다. 일자리가 없어져도 다른 곳에 갈 데가 없다. 갈 곳이있다하더라도 단순서비스직이고 그것도 하향취업일색이다. 여기에서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선 효율을 높여야 하고 종업원은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율배반적 문제가 생기게 된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용형태를 스톡형에서 플로형으로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톡(Stock)형 고용이란 자기자신의 급료에 상당하는만큼도 벌어들이지 못하는 사원을 조금씩교육하고 순환근무시켜 제 몫을 할 때까지 육성한 다음 연공서열에따라 승진 승급시키는 제도이다. 임금면에서 보면 저부가가치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연공에 따라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서 고부가가치업무에서 얻은 수익을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평생동안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하는 고용제도지만 기업도 살기어렵고 근로자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채용과 해고의 탄력성 가져야반면에 플로(Flow)형 고용으로 바뀌면 정기채용 인원을 줄여 장래의 고부가가치업무에 종사할 핵심인재만을 채용해 이들을 스톡형고용으로 관리하고 나머지 필요인원은 중도채용이나 파견사원·임시고용 등의 플로형 인원으로 메운다는 것이다. 즉 기업의 인력구조를 핵심인력과 주변인력으로 이원화하자는 것이다. 플로형 인원에대해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지 않으며 회사에 있는 동안에도 실적만 올려주면 충분하다. 핵심인력(기간인력)은 42.195㎞를뛰어야 하는 마라톤형이어야 하고 주변인력은 단거리형으로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서구에서는 4백m만 뛰고 걸을 사람은 마라톤에서 빼고(해고), 단거리 경주용(신규고용창출)으로 써먹을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채용과 해고의 탄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용형태면에서 보면 1백m나 4백m를 달리는파트타이머, 8백m를 뛰어야 하는 촉탁고용, 1천m 이상 중거리를 뛰어야 하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곳에서 일해야 하는 계약고용제나 파견근로제 등이 있다. 물론 이러한 고용형태는 근본적으로고용불안문제를 야기시킨다. 정규직에 비해서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더 노출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마라톤선수(평생고용)로 기용하면서 세계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는 것은복권당첨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인사상의 과제는 기업은 단거리경주부터 마라톤까지 종합성적을 내야 하는데 근로자는 전부 마라톤선수가 되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뛸 자신도 없고 선두그룹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지만 기권(해고)은 싫다. 그래서 「걷고 있는 마라톤 선수」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걷고 있는 사람에게 연봉제라는 능력급제도를 띄워 「걷고 있는 한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달리기를 강요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로자의 구성에 있어서도 우리는 단거리, 중거리 선수는 없으면서 전부 마라톤선수로만 구성되어 있어 단거리경주 때도 마라톤선수를 내보내고 있을 뿐아니라 단거리경주에 알맞는 인센티브제도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환경변화에 따른 적응유연성이 부족하고 경직적인 인력운영을 하고있다는 증거다.이에 대한 인센티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라톤경기에 대비한 인센티브제도는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거리경주에맞는 인센티브제도는 없다. 보너스를 받아도 장거리선수가 6백%라면 단거리선수도 6백%다. 이 말은 이미 실적에 연동하는 변동급이아니라는 뜻이다. 단거리 반복형인 계층은 오히려 실적에 연동하는연봉제를 선호하는데도 말이다.그리고 또하나의 흐름은 근로자들의 경력유형이 다르다는 것이다.기업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업조직내에서 경영층까지 키워줄 인재가 있고 특수전문분야에서 단순한 과업만을 행하는 사원도있다. 흔히 군대에서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를 따로 교육하고 하사관과 사병훈련을 따로 시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경영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멘토(Mentor)시스템이다. 흔히 지도사원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고급간부까지 연결되면서 서로서로 뒤를 보아준다. 외관상으로는 「평등」을 부르짖고 실제는 「구분」하는 이중성격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은 내용을 「차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능력과 자신의선택에 따른 차별은 차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신분보장에서 고용보장으로문제는 사원들이 회사일에 임하는 유형에 따라 종업원을 구분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해서는 자기의생활을 즐기려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회사나 승진을 위해 정열을 바치는 유형도 존재하게 된다. 종전의 고도성장기에는 누구든 승진을 위해 똑같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회사일에 정열을 바치는 유형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팀제도입 리엔지니어링 등 조직혁신으로 최종골인지점말고는 중간포스트가 없어지고 경쟁상대도 많아졌다. 포스트부족현상이 심해지고 신세대의 사고방식도 달라져서 일에만 몰두하려는 유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기업상황도 변하고 종업원의 사고방식도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종업원에게 「승진시켜 줄테니 충성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는 말로는 유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관리자를꿈꾸고 있는 마라톤형은 일을 하고싶은대로 얼마든지 하게 해주는시스템을 설계하고, 근무하면서 약간의 취미를 즐기고 싶은 단거리경주자에게는 「근무시간인 8시간 동안만 착실하게 근무」하도록배려해 주면서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는 관여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근로자를 획일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따라 나타날 수있는 고용형태별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소호(SOHO)족의 신풍속도가 그것이다. 컴퓨터통신, 인터넷과 함께출현한 소호족들이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나타나는 소호직종은 수금, 배달, 장봐주기, 그래픽디자인, 차고세일프로모션, 희귀본브로커, 입사원서작성, 문서정리 등 단거리용 전문영역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모든 직종을 기업내의 정규직근로자가 수행한다는 것은 아웃소싱(outsourcing)측면에서 볼 때너무 비효율적이다. 물론 기업측에서도 효율성문제만 가지고 정규인력을 축소하고 비정규인력을 늘려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저수지에 갇힌 물을 썩게 할수는 없다. 인력구성에 있어서 퇴출이어느 정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직이나 퇴직 등의 출구를 막아놓고 새로운 직종의 신규인력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미 불러진 배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퇴출을자유롭게 하는 것이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이미 선진국에선 직장에 관련된 신분보장(Job Security)차원에서다음 일자리를 보장하는 고용보장(Employment Security)으로 초점이 이동되었다. 새로운 신규고용창출을 위해 첨단서비스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일자리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배분한다는 워크셰어링(Work Sharing)과 파견근로자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핵심 경쟁력인 인력의 구성을 환경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하도록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용시스템과 제반하부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