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 마케팅팀의 탁정욱과장(34)은 2년전부터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전엔 아침 9시 출근시간에 맞춰 여의도 본사까지 가려면 늦어도 7시30분엔 일산의 집을 나서야 했다. 그래서귀여운 딸아이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 허다했다.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여의도 사옥으로 출근할 필요가없고 10시께까지 바로 영업현장으로 나가면 된다. 그만큼 아침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탁과장은 최근엔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의 방학숙제도 챙겨주고 조간신문도 훑어본 뒤 9시쯤 집을 나온다. 그래도 일엔 지장이 없다. 퇴근 시간도 자유로워져 저녁시간엔 골프 연습장에서 핸디를 줄이려고 땀을 빼기도 한다.이처럼 탁과장의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한국IBM이지난 95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모빌오피스(이동근무)제. 탁과장은모빌오피스제 시행으로 거의 똑같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쓸수 있는 시간을 하루에 3시간 이상 벌었다. 이 여유 시간을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일에 대한 집중도도 크게 향상됐다는게탁과장의 설명이다.「오전 9시 사무실 출근, 오후 6시 퇴근」. 이같은 샐러리맨의 고정된 생활 스케줄을 파괴하고 있는 곳은 한국IBM 뿐만 아니다. 최근 1~2년 사이 출퇴근 시간을 없애고 일 중심으로 근무형태를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부 사원들을 아예 집에서 근무토록 하는회사도 생겼다. 근무환경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성공한 한국IBM지난 95년7월부터 모빌오피스제를 본격 시행한 한국IBM은 현재 영업과 서비스 관련 직원 8백여명 전원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전체직원 1천5백여명중 절반 이상이 해당자다. 앞서 예로 든탁과장도 이중 한사람.모빌오피스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고정된 사무실이 있는게 아니고 어디든지 직원 자신이 있는 곳이 사무실이 된다는 의미다. 물론 직원들에겐 휴대용컴퓨터와 핸드폰 등이 지급되고이들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구체적으론 △집 자동차 사무실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종의가상사무실(버추얼 오피스) △지정된 자리없이 공용좌석이나 호텔처럼 체크인해 사용하는 호텔링 오피스 △집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재택근무 등을 합친 개념이 모빌오피스다.한국IBM은 2년전 모빌오피스를 구축하면서 전자우편 인프라를 구축하고 모빌직원을 위한 행정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등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특히 고객의 편의를 고려해 서울 강남과 강북에 지역센터를 설립하고 직원들이 수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강남 삼성동 무역센터옆 세화빌딩에는 30석의 이동사무실과 2개의 회의실,1개의 고객접대실을 마련했다. 시청 뒤 프레스센터 9층에 있는 강북센터에도 마찬가지로 공용좌석을 갖춰 영업사원들이 수시로 들러업무를 볼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한국IBM은 모빌오피스의 시행으로 연간 22억원 정도의 경비를 절감한 것으로 평가한다. 무엇보다 여의도 본사의 사무실을 대폭 줄임으로써 불필요한 임대료를 절약한 것. 이 회사는 여의도 본사의 경우 영업직 사원들의 고정책상을 대부분 치우고 최소한의 공용좌석만을 남겨 활용토록 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엔 20개층을 쓰던 사무실을 11개 층으로 줄였다. 노트북컴퓨터와 핸드폰 등의 지급을 위해 1인당 5백만원씩을 투자하고도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효과도 거뒀다. 우선 직원들의 호응이 높아 업무효율이 오르고 있는 것. 이 회사 조사에 따르면 모빌오피스제 실시로 직원들의 출퇴근 소요시간은 평균 2.4시간줄었다. 반면 고객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균 3.7시간 늘었다. 이로인해 직원들의 67%가 모빌오피스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해 하고 있으며 74%는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대답하고 있다.물론 모빌오피스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한국IBM은 설명한다.일부 직원들의 경우 영업현장에서 처리할 수 없는 잡무를 집에서해결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자기시간을 뺏긴다는 애로를 호소하고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IBM의 모빌오피스제는 누가 뭐라해도 성공 케이스중 하나다. 최근 국내 보험사나 광고기획사 제약회사 등이 한국IBM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모빌오피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한국IBM이 모빌오피스를 성공시킨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모빌오피스 체계를 확립한 이 회사의 이상호 상무는 이렇게 귀띔했다. 『모빌오피스제가 성공하려면 관리자들이 우선 직원들을 믿어야 합니다. 아침에 눈도장을 찍지 않으면 왠지 꺼림칙한 사무실 분위기를바꾸는 것이 모빌오피스의 성공 관건이지요.』제일모직도 작년 7월부터 모빌오피스제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범 운영상태다. 본격적인 확대적용은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빌오피스제의 효과에 대해 아직은회사측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다.제일모직의 모빌오피스제 대상은 화성사업부내 EPS영업팀 10여명.이들은 아침에 회사로 출근을 하지 않고 집이나 고객사 등에서 업무를 대부분 처리한다. 회사는 이를 위해 직원 1인당 5백만원 이상을 투자했다. 우선 이들 직원 집에 팩시밀리와 프린터, 회사 전용전화를 설치해 주었다. 개개인에겐 노트북컴퓨터와 핸드폰 등을 지급했다. 또 팀원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PC통신내에 대화방을개설, 매일 아침 팀회의를 갖도록 했다.제일모직은 그러나 당초 계획처럼 모빌오피스제의 전면 확대를 보류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아서다.이 회사 관계자는 『사옥이 자체 건물인데다 그동안 워낙 비좁게써왔던 터라 모빌오피스제를 도입하고도 사무실 면적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은게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제품성격상 영업맨들이 밖에서만 일을 처리할 수 없고 반드시 본사에들어와야 하는 특수성도 모빌오피스의 성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따라서 제일모직은 모빌오피스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부서의 특성을감안해 꼭 필요한 부문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정보기술의 재택근무현대정보기술은 프로그램 설계 제작팀원중 여성들을 모두 재택근무시키고 있다. 해당자는 모두 17명. 이중 기혼여성이 15명이고 나머지 2명은 미혼이다. 대부분 계약직인 이들은 현업부서로부터 수시로 업무를 받아 집에서 모든 작업을 한다. 일을 마친 결과는 재택근무 관리자에게 전달하고 일의 양과 질을 평가받아 적정 수준의임금을 받는다. 이들의 평균 월급여는 1백만원 정도. 많은 경우는2백만원을 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또 매월 4번 정도 회사로 출근해 현업부서와 업무를 협의하며 시간을 다투는 프로젝트의 경우회사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물론 별도의 출근수당을 받는다.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재택근무제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재택근무자들의 가정에 회사 통신망을설치해 문서를 주고받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