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기아사태 발생직후 자동차관련업계의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국내자동차업계가 언젠가는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들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과잉투자에 따른 초과공급, 대표적인고비용-저효율의 산업구조, 업체간 출혈경쟁과 그에 따른 경영수지악화, 내수부진과 수출경쟁력 취약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기아사태는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이 어떤 형태, 어떤 방법으로든 이뤄질 것을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올 것이 왔다』는 말은 곧상처 깊숙한 곳에 곪았던 고름이 터지면서 나온 신음소리와 같은것이었다.한국의 자동차업계가 맞은 이러한 위기상황은 이미 각 업체들의 연구기관에서 낸 보고서에 지적이 됐던 일. 지난 3월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국내자동차산업의 공급과잉과 구조개편」이란 보고서에서수익성악화·적자확대와 함께 내수규모에 비해 과다한 완성차업체등의 요인으로 구조개편이 촉진될 가능성이 많다며 구조조정이 될경우 향후 5년이내에 2∼3개사로 통합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기아경제연구소도 5월에 「자동차산업재편논의의 배경과 함의」라는 보고서에서 자동차가 공급과잉인 상태에서 특정기업이 부실징후를 보이면 채권은행단을 통해 부실기업을 정리한 후 3자에게 인수토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비슷한 시기에 외국의 유명언론들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기사를 내보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자동차시장은 연간 승용차 1백20만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2백20만대의 양산체제를 갖고 있으며 3년후 6백만대로 확장하는작업을 진행중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지도 이미 과포화상태의 한국자동차시장에 신규업체까지 끼여들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자동차업체들 사이에 적자생존과 자연도태가진행돼 향후 2∼3년안에 최소한 1개업체는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국 언론도 자동차시장 과포화 지적이처럼 각 연구기관이나 외국언론들이 지적한 한국자동차산업의 위기 중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바로 투자와 공급에서의 과잉이다.업체들의 계속된 설비증설로 오는 2000년에는 1백8만6천대, 2010년에는 1백80만대의 공급과잉이 생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국의 DRI나 영국의 EIU 같은 조사기관에서는 2000년에 한국의 자동차산업의 과잉생산능력이 4백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나친 설비투자는 자동차업체들의 재무구조도악화시켰다. 막대한 설비투자자금은 주로 단기성 차입자금을 사용한다. 그만큼 이율도 높다.완성차 5사의 차입금의존도는 지난해말 현재 43.1%로 95년말의38.64%보다 높아졌으며 평균이자율도 12.38%로 95년 제조업체의 차입금평균이자율인 11.68%보다 1%정도 높다. 금융비용의 증가로 결국 완성차업체들의 부채총액은 전체자산총액 26조6천6백60억원의84.1%인 22조4천3백58억원에 이르렀다. 덩달아 부채비율도5백30.37%로 95년말에 비해 1백14.58%나 높아졌다.자동차업계의 이러한 공급과잉은 비단 한국적인 상황에서 기인한,한국에만 국한된 상황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동차선진국인 미국·일본·서유럽의 생산은 모두 5천2백50만5천대. 그러나판매는 5천70만8천대로 약 1백80만대가 초과공급됐다. 올해도 약2백16만대가 초과생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수출이 주요판매활로인 국내 자동차업체들로서는 재고처분이라는 이들의 판매확대전략과 맞서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돼 그만큼 수출여건이 악화됐다.내수도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90년대 들어 계속된 경기불황에다가구당 자동차보급률이 45%를 넘어선 지난 94년을 고비로 내수까지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도 신규수요보다는 대체수요가 내수시장을 리드, 더 이상 내수시장에 있어 규모확대가 불가능해졌다는 지적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올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상반기에만 내수에서 소화해낸 물량은75만1천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1%나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수출과 내수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자동차시장을 부추겼으나최근에는 「동반침체」로 상황이 변한 것이다.◆ 94년 KIET 공급과잉 경고이러한 공급과잉에 대해 업계관계자들은 정부측에 원죄가 있다고지적하고 있다. 지난 94년에 이미 공급과잉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신규진입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예로산업연구원(KIET)의 보고서를 들고 있다. 당시 산업연구원은 삼성의 자동차사업허가가 논란을 빚자 상공부(현 통산부)의 용역을 받아 「21세기를 향한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전방향」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신규진입이 허용될 경우 이에 대응한 기존업체의 경쟁적 설비확장으로 중복과잉투자가 일어날 우려가 크다』고산업연구원은 밝혔다. 정확히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것이다.자동차의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재고누적은 업체들의 밀어내기식의과다한 출혈경쟁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업체들이 걸핏하면 시행하는무이자할부판매가 대표적인 예다. 업체들은 누적재고 소진, 시장점유율 제고, 경쟁업체 견제 등의 이유로 실시하지만 파는만큼 손해를 보는 장사가 무이자할부판매다. 과다한 판매경쟁으로 자동차업체들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완성차 5개사의 96년 경영지표를 보면전년도와 비교해 당기순익이 증가한 업체는 대우와 현대에 불과하다. 기아 아시아 쌍용 등 나머지 3개사는 줄어들었다.게다가 자동차업체들의 생산성은 한마디로 낙후돼 있다. 고비용-저효율의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산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아경제연구소에서 밝힌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근로자 1인당 생산성(연간 생산대수)을 보면 26.1대. 일본 5개사의 생산성은 39.9대. 생산직근로자의 연간근로시간은 2천5백시간. 일본은 1천9백73시간.MIT대학에서 조사한 차량 1대당 작업시간의 경우 한국은 26.5시간.일본은 16.6시간. 숫자로는 비교가 안된다. 반면에 노동비용은 선진국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높은 19% 증가.근로시간이 많다보니 그만큼 지출되는 인건비도 만만찮다. 그뿐인가. 매년 고질적인 노사분규로 생산현장의 라인은 수시로 멈춘다.이래서 보는 손실만도 5천억원에 이른다. 생산대수면에서 완성차5사가 모두 세계 30대기업(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들지만 생산성을보면 경쟁력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가진 이런저런 약점들로 기아사태가 터지자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말이여기저기서 나온 것이다.그러나 자동차업계의 공급과잉과 구조조정에 대해 반론도 만만찮다. 통상산업부 관계자는 『공급과잉은 흔히 가동률로 이야기하며현재 가동률을 보면 국내 자동차산업은 공급과잉이 아니다』라며반론을 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가동률은 지난해에 80.2%로 신차개발과 생산라인설치 등을 고려하면 정상으로 올해의 76%대의 가동률도 지난해의 80.2%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것으로 정상』이라는것이다.아울러 『삼성자동차의 내년도 8만대 생산도 전체내수 1백70만대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어 공급과잉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게관계자의 말이다. 또 EIU나 DRI 등 외국기관들의 공급과잉예상에대해서도 『국내업체들이 기업이미지나 경쟁우위를 과시하기 위해생산능력을 과장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동차업체들의 과장된 자료를 그대로 이용해 예상하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있다』고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