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지난 92년 대선을 앞둔 어느 날. 서울시내에서 가장용하다고 알려진 한 역술인에게 당시 김영삼후보진영에서 일하던유명 정치인 C,M씨가 찾아왔다. 용건은 대통령선거일을 어느 날로잡느냐 하는 문제. 그 자리에서 당시 김후보내외의 사주를 갖고 두개의 날짜를 잡아줬다. 두개의 날짜를 잡은 것은 그날의 날씨와 투표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다. 선거일로 잡아준 날은 김영삼후보내외의 기운이 오르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결과적으로 김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당선됐지만 『계약금만 받았으며 잔금은 아직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역술인의 여담이다.이야기 둘. 5공화국 말. 서울시내의 내로라하는 역술가 5명이 서울시 외곽의 모처로 모셔졌다. 각각 한명씩 방을 배정한 뒤 두명의사주를 보여주며 누가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뒤를 이을 제왕감인가하는 자문을 역술인들에게 구했다. 사주에 나온 한사람은 장세동씨이고 다른 한사람은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 이 자리에서 역학인들은 각자가 본 사주내용을 알려주었으며 사례비를 받고 집으로 귀가했다는 것이 한 역학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누가 더 좋거나나쁘다고 할 수 없을정도로 모두 사주가 좋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지역적인 배경이 대통령후보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역술인들에게 자문을 구한 곳에서 나왔다』는 것이 덧붙인 말이다.이야기 셋. 신한국당경선을 앞두고 이회창캠프에 참가한 인사들의부인들 사이에 한냥정도의 금이나 은으로 만든 돼지가 나돌았다는보도가 있었다. 이 돼지에는 대(大)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이는 대통령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돼지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약수동에산다는 역술인 김모씨. 이대표의 경선승리후 축하전화가 김씨에게몰렸다는 보도도 뒤따랐다.◆ ‘정치의 비근대성 표출’ 비판도이회창대표만이 아니다. 조순총재의 경우 주역에 일가견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청공보관이 소개한 베트남역술인(나중에 명상가로 해명됨)의 조언으로 출마를 결심했다는 한 언론의 기사가 나간 후 이를 괘씸히 여긴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공보관에 대한 시의회 본회의장 출입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정치인과 역술인들의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선거철=성수기」. 역술인들이 유난히 바빠지는 계절이 바로 선거를 앞둔 시점이다. 이곳저곳에서 「누가 될 것 같나」 「어느 당으로 가야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 「출마하면 당선이 가능하냐」등 갖가지 궁금증을 품은 사람들의 발길이 역술인집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정치권 인사치고 자신의 사주가 역술인에게 올라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돌 정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오는 12월18일로 예정된 대선이라는 굵직한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누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승천하는 「용」이냐는.그러나 역술가를 찾는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많더라도 본인이 직접 역술원을 찾아 사주를 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역술인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직접 찾아와 사주를 내놓고 보는 것은단골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드물며 대개 측근이나 부인 친척 등이사주를 들고 와 의뢰를 한다』는게 「천기누설 1997년 대통령」이란 책을 쓴 역학인 김찬동씨의 말이다.정·관·재계의 내노라하는 사람치고 들르지 않은 이가 없다고 알려진 유충엽씨도 『친숙한 사람들 외에는 대개 부인이나 측근 들이운세를 보러 온다』며 『대선후보인 모당총재의 경우 교수들이 사주를 들고 왔었다』고 말했다. 역술인에게 사주를 들고 온 사람이라도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역학인 김모씨에게 김대중총재의 보좌관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사주를 들고 온 사람이 있다는 말에 국민회의측에 직접 신원을문의했으나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확인했다.숨기기는 역술인들도 마찬가지. 역술인들도 누가 어떤 내용으로 찾아왔으며 어떤 내용의 말이 오갔는지에 대해서는 「천기누설」이라는 말을 들면서 확인해주거나 밝히길 꺼린다. 결국 역술인에게 갔다는 사실이나 역술인이 본 운세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확대재생산될 소지를 더욱 크게 만들어놓고 있는 셈이다. 설령 밝히는 경우가 있더라도 『장사속으로 누가 왔느니, 선거에 누가 된다고 했는데 적중했다는 둥 자신의 성가를 높이려는 경우』라는 것이 한역술인의 말이다.이렇게 정치권 인사들이 역술가를 찾는 현상에 대해 역학인 유래웅씨는 『앞날을 모르는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라며 『역학을 통한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앎으로 해서 길한 것을 취하고흉한 것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운명의 일기예보」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주역을 공부하고 동서양의 게임이론을 접목해 김일성의 사망을 예언했던 한림대 정치외교학과의 김재한교수는 『역술인들에게 정치인들의 발길이 몰리는 것은 정치의 비근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정치가 정책·제도·이념이나 분석·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판가름나거나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연고나 권위 등에 의해 더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돌발적인 사태에 좌우되는 예측불가능한 한국의 정치상황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것이 김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정치인이나 정책이념적인 측면보다 권력의 혜택에 더 집착하는 정치인의 경우 역술에 의존하고픈 마음이 더욱 클 것』이라며 『역술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미래에 대한 분석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한국의 정치인들이 유별나게 점에 집착한다는 것은 외국인들에게도익히 알려진 사실. 일본신문의 서울지사에 근무하는 한 일본인기자는 『정치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으로 이해한다』며 『그러나일본의 경우 역술인의 이야기가 섣불리 밖으로 나돌지 않는다』고말했다.남북경협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브린씨는 한 언론의 기고를 통해 우리사회에 퍼진 「희한한 관행과 믿음」을 나열하며 그가운데 하나로 「사주로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믿음」을 꼽았다.브린씨는 이러한 「희한한 믿음」을 「한국의 대통령선거후보지망자들」의 얘기라며 「황당한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당, 무속인 조직도 갖춰정치와 역술인의 관계는 비단 예언이나 조언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당에 직능조직으로 무속인조직을 갖고있는 경우도 있다. 신한국당 직능국소속의 「대한승공경신연합회」가 바로 그렇다. 지난71년에 조직돼 전국 1백95개지부에서 무당 역술인 등 약 8만여명의회원을 두고 있다. 회원성별로는 여성이 약 70%. 신한국당내의 한조직이지만 『직능국소속의 한 조직일 뿐 어떤 특별한 협력관계는없다』는 것이 최수진총무국장의 말이다.국민회의의 경우 『(무속인조직결성을)전에 많이 검토했지만 취소했다』는 것이 이재언특수조직국장의 말이다. 『여당이라면 몰라도야당의 경우 역술인들의 입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라는 것이 이국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역술인들 가운데국민회의측에 개인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역술인들이 많이 있으며 역학적으로 조언이나 참고사항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게이국장의 설명이다.자민련의 경우도 『아직 역술인이나 무속인들을 하나의 조직으로만들어놓지는 않았지만 종교국과 중앙위원회에서 그때그때 필요에따라 역술인이나 무속인들과 협력을 한다』는 것이 한 관계자의 말이다.한편 정치권인사들이 역술인들을 찾는 데에 대해 일부 역술인들은정치인들의 자세를 꼬집고 있다. 「역문관」을 운영하고 있는 원로역술인 유충엽씨는 『정치인들이 당선여부나 줄서기 등 개인적인영달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래웅씨는 『부동표의 상당수이자 역학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성들을 겨냥해 정치인이 역술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명리적인 해석을 자신의 경륜에 보탬이 되도록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아쉽다』고 말했다. 오주이론을 창안, 「명리학의 명인」이란 말을 듣는 박래옥씨의 경우역술인들을 겨냥해 『일부 역학인들이 경솔한 말을 많이 한다』며『냉철히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한다』고 충고했다.★ 역학인들이 본 97 대선'여의주'를 물 '용'은 누구인가?「말조심」.오는 12월 18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보여주는 역학인들의 몸가짐이다.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믿는 역학인들에게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또는 「누가 유력하다」와 같은 발설은 곧 천기누설이라는 것이다. 천기를 누설한다는 것은 적악(積惡) 즉 악덕을 쌓는 것으로 이를 발설한 역학인은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없어지거나 화를 입는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15대 대통령선거는 일반인이나 정치인은 물론 역학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대통령에 나온다는 사람들의 사주를 갖고 있으면서 대선운을 보지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역학인들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취재도중 접한 역학인들 가운데 대선후보로 확정된 4당 후보(8월말현재)들을 대상으로 자신있게 누구라고 꼭 집어 말하는 역학인은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2명이상의 후보를 놓고 유력한 후보라고 말하거나 우회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역학적 견해를 설명했다. 아울러많은 역학인들이 취재를 거부하거나 일부는 기사에 비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의 예언과 어긋났을 경우 역학인으로서 받게되는 치명적인 부담과 발설에 따른 뒷감당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는것이 역학인들의 설명이다 . 현재까지 드러난 대권후보들의사주(태어난 연월일시)에 대해 어느 것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도 취재도중 만난 역학인들의 일치된 말이었다. 또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의 것과는 다른 「군왕의 운세」를 갖고있다는 것도 모든 역학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었다.이런 바탕 위에서 사주나 관상 점성술 등 자신의 전공으로 대권주자들의 운을 보았다는 역학인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나마 김대중총재가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렸다. 양원석씨는 『김대중총재가 대통령으로 유력하다』고 밝혔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다소 문제가있겠지만 전례없이 공정한 선거가 될 것』이라는 양씨는 『야권에서 친여권인사가 출마, 여권표를 분산시켜 결국 야당출신 대통령이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모씨는 『책이나 언론매체 등에 나타난생년월일시, 또는 측근이거나 친족이라고 밝히면서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내민 후보들의 사주를 갖고 대선운을 봤다』며 『현재로서는 김대중총재가 가장 유력하며 조순총재는 다음으로 유력한 대통령감』이라고 말했다. 『후보들의 사주를 함께 놓고 봐서 누가 제일 좋다고 나와야 정확한데 여러 개의 사주가 나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DJ ‘대길’, “선거 연기된다”는 예언도아울러 DJP연합에 대해서도 『힘들다』며 『한쪽이 방해만 안하면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모씨는 『이회창씨의 경우 주변에 진심으로 의지할만한 참모가 없다』며 『전체적인 운세로 보면 김대중총재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조순총재에 대해서 유모씨는 『지금대권후보중 정확한 사주를 갖고있는 것은 조순총재의 것뿐』이라며『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대권후보들의 사주와관상은 거의 다 봤다』는 조모씨는 『관상학적으로 이회창대표는학체(鶴體), 김대중총재는 구체(龜體), 김종필총재는 우체(牛體),조순총재는 사자체로 조순총재의 관상이 최고이지만 모든 것을 알수 있는 눈빛의 경우 이회창대표가 가장 강렬한 군왕의 눈빛』이라고 말했다. 『김종필총재의 사주를 갖고있다』는 박모씨는 『올해운세가 전체적으로 상당히 좋다』고 말했다. 자미두수로 대권주자들의 운세를 보았다는 공모씨는 『김대중총재 조순총재 이인제지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의 경우 대권운이 시원찮아 보인다』고 말했다.이렇게 특정인이 유력하다는 역술가들의 예언과 달리 아예 대통령선거라는 정치판 자체에 대한 「경고」를 전달하는 역학인도 있다.홍정원씨는 『사주를 기본으로 하고 육임 하도낙서(하락이수) 기문등으로 보완하는 방법으로 개인들의 운을 보고 태을과 기문으로 국운을 보았을 때 지금 거론되는 4개 정당의 후보 가운데 대통령이될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권과 야권에 각각 커다란변수가 예상되는 데다 선거 자체가 연기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유발시킬 가능성으로 홍씨는 북한이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돌발변수와 정치판의 혼란,명리학상 2년정도 더 남은 것으로 보이는 김영삼대통령의 대운 등을 원인으로 들었다.